2013년 12월 15일 일요일

피노키오

어려서 피노키오를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불편했었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니, 얼마나 무서운 저주인가.

'피노키오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는 거짓말을 하고 싶은 걸 거야...'

아마 어린나이에 그게 가장 갑갑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내 속마음을 다른 사람이 다 안다면 얼마나 힘들까.
피노키오가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는 자기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였던거다.
제페토 할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싶다고?
사람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싶지 않다고...? 그것도 이유겠지만 피노키오에게 가장 큰 장애는 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었을거라고 생각한거다.

집 나온 피노키오 깊은 생각에 빠지다

2013년 12월 4일 수요일

강요된 창의력과 무감각을 조장하는 교육

문화예술교육과 창의력

1. 
  예술은 창의력의 총아처럼 여겨졌다. 그로인해 예술가는 창의적인 생산을 하는 사람이며, 그 생산을 기초로 하여 다양한 문화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기도 한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고 보여진다. 예술이 창의력의 총아라는 것에 토를 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인간이 듣고 보고 만지는 모든것과 (또는 교감했던 사람들과)의사소통을 시도한다는 측면에서 예술가의 관점, 또는 탐미적 시선을 표현하고 나누고 싶어하는 의지로 부터 출발했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자연이 그러하고, 인간의식 또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순환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미 모든 창의적 순간은 발견에 가까운 것이라고 말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창의적 관점에서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 노력할 경우 창의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란 뜻이기도 하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창의력이란, 문화적/예술적 창의력에 국한 된 것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창의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유를 조합한 능력을 지칭하지도 않는다. 언어적 창의력을 가진 사람이 있고, 시각예술에서 창의력, 수리적 창의력을 가진 사람도 있다. 모든 인간은 창의적의 생각을 수시로 하면서 산다. 하지만 그것이 창의적이다라고 말하는 순간이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말할게 되는 것은 일탈에 불과하다. 인간의 역사를 볼 때 이미 창의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마치 그건 물이 끓는 점까지 도달하기 까지의 이야기와 흡사하다. 99도까지 액체가 열이 가해지면 잠시후 순간 기화된다. 그 1도의 온도에 박차를 가하는 힘. 그것을 창의력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99도까지의 열이 가해지는 "가열"이 없었다면 물이 기화될 순 없다. 가열이라는 에너지의 양적 축적이라는 측면이 무시된 채 기화는 말하기 어렵듯, 창의력을 갖게 된다는 것은 지속적인 관찰의 힘, 실천의 힘, 그리고 그것을 조합해 내는 능력까지를 가진 것이다. 

2. 
 발상을 전환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발상은 생각을 시작하는 지점이다. 개인의 문화와 역사, 사회의 문화와 역사에서 얻은 지식이나 논리와 추론들의 결합체가 발상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발상은 늘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이 자연스러움을 거슬러 뒤집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발상을 전환하시면..."으로 시작되는 강의를 듣거나 아티클을 읽으면 시쳇말로 '낚싯밥을 던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생각을 시작하는 것은 오늘 지금 여기서도 계속되는 인간의 행위인데 이것을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좋은 생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간혹 문화예술교육의 커리큘럼을 만날 때 전환된 발상으로 부터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에게 있지 않았는가? 기존에 하던 대로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무엇을 시작하지 않았는가? 자기가 하던 내용을 부러 부정하면서 이것을 새로운 발상이라고 강조하지 않았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대목이다. 

3.  

 집합적 무의식은 사람들로부터 그 시대가 최대로 필요로 하는 대상체들을 통해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순간이 올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집합적 현상이 생긴다는 점. 집합적 상상력이 가져온 결과를 한 개인의 특정한 능력으로 부각시키되 되는 계기가 된다. 창의력이 상품이 되기 위해서는 최대수의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창의력을 요구한다. 그것은 상상력을 벗어나는 창의력을 말한다. 내가 꿈꾸고 있는 것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을 실현했을 때 그것을 창의력이라고 말하는 오류는 반복되고 있다. N개의 창의력을 인류가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적시 적소에 그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힘은 인간의 집합적 무의식과 문화적 상상력이다. 창의성이 가진 힘을 구현해낼 때 사람들의 상상력에서 벗어 나면 변화가 어렵다. (논리에서 벗어나도 마찬가지다) 예술교육은 집단 상상력을 키우고 그에 걸 맞는 실현능력과 만나는 창의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곤 한다. 조건이 되는 몇 가지가 있다. 1) 자유를 넘어선 자율이 불편해 질 때(질서가 불편해 질 때 던지는 사회적 담론) 2) 통제를 넘어선 질서를 발견했을 때(교육이 통제될 수 있는 모듈안에 있다는 것을 버렸을때) 3) 충분한 모방으로 자기 스스로 지루해졌을 때 (양이 질을 변화시키게 되는 듯) 4) 교육은 상상력의 모티브로 존재하고, 창의력은 문화적 리터러시와 관찰력에서 작동되고 있다는 원리를 파악할 때가 그렇다. 세상의 모든 것은 조화(balance)를 전제로 한다. 정답이 없다. 조화와 균형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부족하거나 과잉했을 때 양쪽 다 균열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조화와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은 직관적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것과 차분한 설 득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조화와 균형을 말할 수 있다. 예술교육의 구현방식에서 “무리하게 자세한 설명은 진부하며, 맥락없는 이미지는 모호함을 준다” 각 조화와 균형에서 설명하는 것은 두 개의 단어쌍이 상대어지만 동시에 구현되어야 하는 작업방식을 지칭 한다.

기획자의 "썰"

[한문연 강의 원고 중에서 발췌]


 문화를 삶의 양식이라고 조작적 정의를 해 본다면 일상과 문화의 관찰을 통하여 사회적 관계 안에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것이 문화활동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문화적 행위를 포함한 문화활동이 문화시설을 근거로 발생한다고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모든 문화행위는 삶의 근거지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문화적 공간이 주어졌다고 해서 활발한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예를 들어 학교문화를 상상해 보자. 학교에서 문화의 발생은 교실과 교실을 이어주는 복도이고, 하교길의 골목이며, 어른들의 간섭이 최소화된 자율적 공간에서 시작한다. 일상으로 그 연결고리가 된 삶의 연장선에 있지 않은 문화는 타자에 의한 조직 또는 조작에서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문화공간은 문화환경의 연장선에서 시작한다. 문화예술교육의 근거지가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우선, 문화활동은 문화공간에서 일어나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이 필요하다. 문화공간이 충분하다면 급속하게 문화활동이 일어날까 라는 의문이다. “충분”이라고 하는 기준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문화적 환경과 문화공간은 연관성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문화예술회관, 문화원, 문화의집, 문화센터 등등. “문화”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는 문화공간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더구나 지역의 국공립도서관, 다양한 규모의 갤러러, 작은도서관, 평생교육센터, 예술창작센터등 여러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때 문화행위가 공간이 규정하는 것으로 출발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보아야 한다. 즉, 문화행위 기준이 되는 것이 공연을 보고, 예술콘텐트로 동아리를 만드는 것 등의 단순한 패턴이 우선 연상된다면 문화예술교육의 장을 협소하게 상상하는 것에 그치기 쉽다. 문화예술교육은 기존의 교육패러다임으로 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 왔다. 정책과 제도, 사업등으로 만들어지다 보니 철학과 그 노력이 변질되어 보이기는 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문화예술교육매개자인 교사가 있고, 이미 생산해 둔 교육 콘텐트를 커리큘럼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 콘텐트를 소비할 학생이 있다면 가능할 것이라는 단순한 발상은 일단 제외해 두자.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술이 모두에게 똑같은 내용과 형식의 문화/예술교육으로 일관성있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발상자체가 비문화적, 반예술적 행위이기 때문에 말하고 싶지 않은 테마다.  

 공연시설을 운영할 주체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일을 하는가에 따라 “문화공간”이 되는가 “대상을 만족시켜 실적을 만드는 공연시설”이 되는가로 구분된다. 문화가 형성되고 예술행위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곳은 요구에 의한 자생적 발생이고 문화예술교육은 스스로 재생산 구조를 끊임없이 생산해 낸다. 즉, 공간을 매개로 한다는 말은 그 자연스러움을 이해한 사람들로 부터 나오는 요구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지금의 문화예술교육이 발생하는 공간은 대부분 자연스럽다기 보다는 억지스러움에 더 가깝다. 더구나 지역문화가 담아낼 수 없는 (오히려 외면하는) 공간자체가 생겼다고 해서 새로운 문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런 예는 지역에서 쉽게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역에서 몇 몇 사람들이 의기투합하여 엄청난 예산규모를 끌어들여 문화시설을 지어 놓았으나, 적당한 콘텐트를 만나지 못해 정체성자체가 흔들리는 경우는 허다하다. 

더구나 대량생산하려는 의지는 문화예술교육의 공간적 개념으로 부터 점점 멀어지게 한다. 공연 및 그와 관련한 시설을 만든다고 가정해본다. 대단위 공연장을 중심으로 하거나, 전시실을 만드는 것에 주력한다.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진 불특정 다수의 개인과 집단이 함께 공연장을 사용하려고 하면 그 인원수가 가장 중요하다. 물론 큰 공연장이 때론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자생적 문화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유는 단순하다. 보통사람이 공연장에서 소비재로써의 예술콘텐트를 향유하면서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험재로써의 문화와 예술에 접근하면서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 것은 균형감 있는 문화예술교육 세팅의 태도다. 교육을 통한 자발적 공연 콘텐트가 생겨났을 때 대규모 시설에서 관객을 채우느라 급급해야 하는 이유는 없다. 더구나 소규모의 교육생집단이나 동아리들의 다종 장르를 모아 발표회 형식을 만들었을 때 그 맥락없는 나열밖에 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지 않은가. 문화시설이나 공연장, 예술활동이 가능한 시설을 만들 때 가급적인 소집단의 다종생산이 가능하도록 디자인 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그것이 문화예술교육공간 설계의 기본이다. 밴드연습실이 있다면 그 연습실을 무대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천명의 객석을 확보하는 공연장 하나를 만들려면 100-200명단위의 공연장 여러 개로 분할하는 것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적합하다. 예산이 항상 문제라고 말한다. 지금 현재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연장에 가보라. 초기 예산으로 각종 장비를 들여왔는데 전혀 사용하지 않아서 처분되는 장비들과, 보기에서 그럴싸 하게 포장하기 위해 준비된 것들이다. 사용자중심에 서서 공간이 확보되는 것에 주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2013년 11월 23일 토요일

happy

http://24hoursofhappy.com/
이런 멋진 뮤직비디오가 있다.
동일한 컨셉으로 달리샷을 계속 찍지만 시간대 별로 참여한 사람들이 나온다.
어느 시간으로 가도 끝없이 움직이며 춤추는 사람들이 나오고...
happy라는 노래를 계속 듣게 되는 뮤비.
쿨하다.

2013년 11월 19일 화요일

그의 영화가 그립다.


Kubrick // One-Point Perspective from kogonada on Vimeo.

Day Of The Fight (1951) 
Fear And Desire (1953)
The Seafarers (1953)
Killer's Kiss (1955)
Killing (1956)
Paths of Glory (1957)
Lolita (1962)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1964)
2001: A Space Odessey (1968)
A Clockwork Orange (1971)
Barry Lyndon (1975)
The Shining (1980)
Full Metal Jacket (1987)
Eyes Wide Shut (1999)

스팔타커스를 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들이다. 
누군가 원포인트 퍼스펙티브를 모아놓은 영상이 있다. 
그의 영화가 그립다. 
이제는 격조있는 영상언어를 그리 쉽게 만나지 못하는데...
그럴만한 작가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팔릴만한 영화만 남기 때문이란건 잘 알고 있다. 
소소한 일상의 감동(약간 이런건 닭살이다)...뭐 그런 영화들이 주는 잔재미는 있지만...
미학적 마성이랄까...테크니션과 아티스트의 경계랄까.. 
그런 품격있는 영화작가를 만나기 어려워 진다는 건 참 아쉬운 일이다. 

    프렌즈의 조이와 레이첼



    프렌즈는 거의 일어날 수 없는 6명의 이상적인 친구얘기다.
    조이는 레이첼에게 빠진다.
    그 마음을 들킬까봐 노심초사하다 결국 자백(?)을...
    연인은 그 따뜻했던 마음이 사라지지만 친구에 대한 마음은 그 보다 훨씬 크고 넓지 않은가.
    조이가 레이첼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자 레이첼이 제일 먼저 꺼낸 말은
    "조이...난 널 잃고 싶지 않아..."였다.
    참 인상적인 대사이며 가장 현실성 있는 말이다.
    시트콤인 프렌즈는 조이와 레이첼이 좋은 친구로 남게 하는 쿨한 선택을 했지만...
    인간관계에서 이 두명은 친구로 남는다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거다.
    만약 한국이라면 더 그렇다.
    친구를 사랑하게 된다면...더구나 그것이 외사랑이라면 서로에게 결말은 거의 뻔한데 그 선택을 할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그저 혼자 사랑하며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 그건 그리 나쁠것 같지 않다.
    이 장면이 참 좋다.
    임신한 레이첼에게 공포영화 쿠조(나도 어릴 때 좋아했었던 영화다)를 못봤냐고 하자 혼자 DVD를 빌려다 본다.
    그때 조이가 들어왔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조이에게 가까이 오라고...거기 앉지 말고 나를 지켜달라고 말한다.
    레이첼을 지켜주겠다고 어색하게 안아보는 장면이다.
    조금 모자라고 말초적이고 단순한 캐릭터인 조이가 프렌즈 전 시즌에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몇개의 에피소드 중 하나다.
    이 결말이 비극이 아니라서 좀 실망(?)했지만...코미디가 비극일리 없으니 용서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프렌즈 한참 보던 1999년이 생각나는군. .

    2013년 11월 15일 금요일

    Kissing a Fool


    오...
    이 캐내디언 친구 좀 매력있다. 느끼하지만.

    이혼

    사실 이혼은 결혼만큼이나 별일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살고 싶어서 결혼했다면, 사람이 싫어져서 이혼하는 것 정도라고 본다.
    여기에 의미부여해서 인생을 결부시키기 시작하면 참 피곤해진다.
    결혼은 축하받고 이혼은 몰래하는 것도 좀 웃기다.
    새로운 시작에 응원해주는 것이 결혼축하라면...
    이혼은 무엇이 다르냔 말이다.

    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ghost in this house



    Shenandoah의 곡보다 이곡이 더 좋다.
    스탠다드 재즈 보컬? 이지 리스닝...? 이런데 끌리진 않는 편인데 Landgren은 특별한 매력이 있는듯.

    2013년 11월 11일 월요일

    몸은 바쁘고 마음은 복잡하다.

    1. 이사는 잘 끝냈고...
    이제 동네도 적응 되는데 마음이 왜 이리 안착이 안되는걸까.

    2. 오늘 그래비티를 다시 봤다.
    타인에게 피해를 덜기 위해 나를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난 절대 그렇게 못할거다.
    단지 이기적이어서 그런게 아니라 겁이 많아서 그렇다.

    3.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루 이틀 늦춰 놓았던 일들이 이제 밀려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살려도라...

    4. 100명의 친구이름을 써봤다. 그 중 의미 있는 50명을 골랐다. 그 50명에서 그들도 나에게 의미있다고 느낄 것 같은 친구를 썼다. 별로 없다...
    인간관계 참 덧 없구나.

    5. 볼펜 똥이 나올 때 기분이 좋다. 그냥 확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글씨가 뭉게지는 느낌이 좋다고나 할까.
    다행이다. 밤에 볼펜똥이라도 날 기분좋게 하는구나.

    2013년 10월 28일 월요일

    나이후

    80년대에는 포크송악보집(?) 그런게 많았다. 일본에서 출판된 악보를 그냥 마구 가져온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팝송제목은 Rockwell의 Knife였는데 한글로 "나이후"라고 써 있던거..


    http://youtu.be/EVw7TohFTRE

    2013년 10월 22일 화요일

    Emmas Bliss



    드디어 이 영화의 제목을 알아냈다.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Emmas Glück Emma's Bliss

    극장에서 나오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해서 머리가 아팠다. 
    사랑은 이렇게 하는거다. 
    삶과 죽음은 이렇게 받아들이는거다...싶었던 것 기억. 





    2013년 10월 20일 일요일

    무브 투 창천 1021

    집 정리는 거의 끝났다.
    아직 적응은 안된다. 편안하게 이 공간을 누리는 것도 아직은 어렵다.
    왠지는 잘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대림동도 그랬던 기억이 있다.
    당시 대림동으로 이사 갔을 때 워낙 빨리 결정하고 움직인터라
    정신을 차렸을 때는 대림동에서 자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생각했다.

    '내가 여기 왜 있는걸까...'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왜 여기 있을까...를 궁금해 한다.
    이유는 없다.
    그냥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낯선 것 투성이다.


    2013년 10월 17일 목요일

    무브 투 창천 1017

    이사한지 나흘되었다.
    오늘 아침 7시 30분에 옆 건물 관리실 할아버지가 전화했다.
    자기가 청소해야 하는데 차가 며칠째 세워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 차뺄 때 지저분하면 내가 청소하마 걱정마라고...전했다.
    요지는 차를 계속 여기 세워둘거냐 하는 것인데 핑계를 찾으신 모양이다.
    청소하겠다고 했더니 별말은 없이 끊었지만, 앞으로도 주차로 이런 저런 기싸움이 예상된다.
    이런거 좀 피곤하겠다 싶다.

    2013년 10월 13일 일요일

    만물의 이치에 옳고 그름/좋고 나쁨은 없다.

    해충과 익충을 구분하는 것은 인간에게 해를주느냐 유익을 주느냐의 기준이다.
    좋고 나쁘고를 구분하는 게 아니다.
    세상의 이치에는 옳고 그른것이 없다. 더구나 좋고 나쁜것은 있을 수도 없다.
    어떤 입장에 서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각도 정도랄까.

    고로 잘 했다...잘 못했다...는 기준점은 그저 그 각도에 따른 결과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에 싫고 피하고 싶은 결과도 엇각으로 보게 되면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경우도 있다.

    2013년 10월 12일 토요일

    Faye Wong_Dream Person



    중경삼림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장면이다.
    그를 위해 그녀는 빈집에 들어가 청소를 하고, 금붕어를 채워 넣는다.
    그는 새 비누를 보며 수척해진 모습을 버리고 다시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며 상처를 극복했냐고 묻는다.
    관점에 따라 이것은 호러와 스릴러물에 나올법한 끔찍한 일이지만,
    중경삼림에서는 미치거나 로맨틱하거나...라는 코드로 다룬다.
    말그대로 몽중인이다.
    "꿈속의 그녀"란 말은 그가 말하는 것이라면,
    "꿈에도 그리던 그"라는 말은 그녀가 현실로 데려온 꿈이어서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무브 투 창천 1013

    미루고 벼르던 쓰레기를 모두 가져다 버렸다. 
    재활용 쓰레기여서 부피는 나가지만 가벼웠다. 

    빨래를 마무리하고 널었다. 
    이틀이면 마를 이불들과 괜히 쓸데 없이 먼지만 쌓이는 담요들이다. 
    몇 장은 그냥 버렸다. 덮지도 않을 이불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이층침대를 계속 웹에서 뒤지는 것으로 보아 
    나는 이층침대를 구매하게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1인용 소파를 하나 사서 들여놓을 생각이다. 
    이층의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에 놓고 혼자 시간을 충분히 즐겼으면 좋겠다.  

    2013년 10월 11일 금요일

    상식과 논리

    1.
    상식은 논리가 있어야 한다. 한 사회 구성원이 그렇게 판단하고 제 위치에서 행위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00때문에 00해야 한다. 그것이 상식에 해당한다. 상식의 근저에 있는 논리라는 것은 어떻게 수립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방향으로 튀기 때문에 한번 위치를 잘못잡을 때 상식은 억지가 되고 논리는 이해관계에 따른다. 간발의 차이지만 내재한 포악함이란 잔인하기 짝이없다.

    2.
    어제 몇 명의 학교 교사들과 만났다. 학교 밖에서 교사를 만나면 교육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로 대접받는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개방적인 교육을 지향하는 열린교사 코스프레하는 것을 즐겨하기 때문에 100%를 믿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것이 내 방식이다. 문화예술교육 지원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속한 지역사회의 사례를 말했다. (이 이야기를 전한 교사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1년간 운영후 평가를 통해 하위 20%학교에는 지원금을 삭감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는 삭감되는 것이 두려워서 열심히 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삭감된 금액을 상위20%에게 준다는 것. 우리 사회에서 인센티브가 상식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상식의 논리가 교육수혜자를 향해있지 않다. 문화예술교육의 지원은 학생이 대상이다. 하위 20%가 되었다는 것은 수혜받을 양질의 교육권으로 부터 박탈을 의미한다. 즉, 교사가 잘못하거나 행정적 오류로 인한 가장 큰 손해를 입은 사람은 지원대상인 학생이다. 상식은 그 박탈된 부족분을 채워주는 쪽으로 가야한다. 당근을 던져주어 경쟁우위에 서고 어르고 달래서 "말 잘듣고 열심히 하면 보상을 줄게..."의 방식이란게 교육이란 말인가. 이렇게 보상체계에 중독된 학생들은 보상없이는 그 무엇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게 길러지고, 그 체계를 만드는 교사 역시 수당/승진/고과점수 없는 교육에는 관심을 갖기 힘들어진다. 참 웃기고 질린다. 결국 교사가 잘못해서 양질의 교육혜택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평가 후 그나마도 못한 적은 예산으로 전문가결합이 어려워 지는 이 몰상식과 비논리적 상황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는 사람은 왜 항상 나밖엔 없는가. 이런 회의에서 늘 혼자 논리싸움을 하며 외로와지는지 의문이 멈추질 않는다. 교육계(사실 따지고 보면 크게는 한국사회)에 상식은 대체 무엇인가.

    3.
    위와 거의 흡사한 에피소드다. 10년도 훨씬 넘었다. 복지관이 어느순간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기관평가 후 하위에 속한 복지관은 지원금을 삭감하거나 위탁단체를 바꿨다. 위탁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나가야 한다. 주민을 내보낼 수 없다. 그런데 지원금 삭감이란게 무슨 소린가 말이다.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밀집한 지역에 복지관이 세워진다. 거기서 복지사들이 일을 잘못하여 복지서비스가 엉망이었다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사이에서도 결핍을 생산해 냈다는 말이다. 만약 평가가 낮다면 전폭적 지원이 가능해야 한다. 평가위원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만 떠들지 말고 교수직 때려치우고 당장 그 복지관으로 들어가 소외속의 소외를 겪는 사람들의 복지지원체계를 복원시켜야 하는거 아니던가. 10여년전부터 이렇게 떠들고 다녔지만 현재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실행되면서 그건 이제 복지관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식이 되어 버렸다.

    4.
    10대를 위한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TFT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다. 일을 했다기 보다는 기획위원? 뭐 그 따위 이름으로 들어가서 감놔라 배놔라...하는 것. 개발해야 하는 프로그램을 몇 주에 걸쳐서 브레인스토밍으로 결정하고 최종 키워드를 뽑는 날이었다. 대부분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 언어들을 구체화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추상적인 평화, 인권, 평등...이런 단어들은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지라 실컷 개발하고 나서 실효성이 없다. 아무튼 마지막날 최종 결정을 내리는데 다수결로 하기로 했다. 다수결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민주시민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단어에 스티커를 붙인 후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키워드로 결정하려는 상황에 내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나의 상식은 다음과 같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을 개발하자면서요. 개발. 여기 전문가가 모인 이유는 쉽게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니고 접근이 어렵거나 구현이 애매한 것을 쉽게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뽑은 주제어에서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랜 시간 고민한 단어들입니다. 즉, 모두가 가치있어 보인다는 뜻입니다. 다루면 안되거나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는 전제로 살펴보면 가장 표가 적게 나온 키워드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야 상식적이죠. 돈들여서 늘 하던것을 또 만들면서 개발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요. 저는 이 투표를 하면서 가장 소수표가 나온 것이 개발대상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결과를 제가 받아들여야 하나요. 좀 어이없습니다. 만약 다수표로 개발한다면 저는 이 팀에서 빠지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난 그 개발 프로그램에서 빠져 나왔다. 이런 발언을 했을 때 정적이 흐르면서 논리적 저항을 할 순 없었을거다. 그런데 그들은 상식이었기 때문에 바뀌지 않았다.

    5.
    적당히 하자.

    2013년 10월 10일 목요일

    Darwin Award

    다윈어워드 웹사이트 링크

    다윈어워드는 멍청하게 죽어서 인류의 열성유전자 하나를 줄였다는데서 시작된 비상식적인 죽음 또는 자살행위가 수상한다.




    2013년 10월 9일 수요일

    무브 투 창천 1010

    자꾸 온라인에서 가구세일점을 뒤진다.
    물질적인간이라고 이미 선언하고 살지만 집안에 들여놓고 싶은 게 너무 많다.
    필요없는 걸 쇼핑몰을 뒤져가며 필요를 생산하는 것 같다.
    넓은 테이블, 
    온수매트,
    이층침대,
    협탁,
    조명,
    푹신한 1인용 소파...
    마치 지금 안 사면 바보될것 처럼 홍보하는 글귀에 혹해서 시간을 낭비한다.
    여태 혼자 잘 살았는데...더 필요한건 없었는데...
    라고 생각하며 참곤한다.

    대림동 이사 첫날 좌불안석...
    밤엔 쓸쓸하게 잠들었던 기억이 난다.
    창천동의 첫날밤도 혼자 쓸쓸하게 잠들걸 생각하니 긴장도 되고 무섭기도 하다.

    2013년 10월 8일 화요일

    Journey



    Separate Ways는 Journey의 대표곡이라고 생각한다.
    수 많은 R&B가수들이 Open Arms를 리메이크해서 더 많이 불려진다고 해도...
    저니하면 생각나는 곡은 역시 이곡!
    잠깐 밴드할 때 나는 이곡을 우리 팀이 꼭 같이 연주했으면 했었다.
    그때 포기했던 이유는 보컬이 못따라간다.
    가늘고 높은 음색이 문제가 아니라 저 느낌이 안났다.
    합주실에서 한번 맞춰보고 포기한 곡 중에 하나.

    2013년 10월 5일 토요일

    무부 투 창천 1005

    오늘 세입자가 부인될 사람과 같이 오겠다고 한다. 
    남자가 아직도 집을 구해야하고...
    여자가 아직도 새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놀랍다.
    요샌 그렇게 살만한 경제구조가 아닌데 말이다...

    2013년 10월 2일 수요일

    무브 투 창천 1003


    이사짐센터와 계약했다.
    이사가는 느낌이 물씬 난다. 
    버릴것과 가져갈것을 고르라는데 너무 고민이 많아졌다. 
    대림동에서 흔적을 지우는 것 같기도 하고,
    왠지 다음 사람들이 잘 쓸것 같은 것은 남겨두고 싶기도 했다.

    부동산도 그렇고 이사짐센터도 비슷한 말을 한다.
    "전세 놓고 이사가시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다시 안돌아 오시더라구요..."



    2013년 9월 29일 일요일

    무브 투 창천 0928

    오늘 대림우성아파트 계약완료했다.
    기분이 진짜 묘하다.
    나는 이 집에서 나가면서 그 동안 내가 불편했던 모든 것을 알려주려고 노력했다.
    살면서 겪게 될 것을 미리 준비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랬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이사가 실감난다.

    2013년 9월 27일 금요일

    뭔가 써 놓아야겠다.

    항상 난 개인의 삶에 대한 신뢰와 존중감 없는 인간관계를 거부한다. 특히 개인 감정이나 마음의 변화를 스스로 사회적 룰이나 도덕 따위로 묶어 버리는 경우를 보면 참을 수 없다. 한국사회의 도덕적 프레임안에서 지금까지 고통받고 살아온 것 만으로도 충분한데 더 이상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살고 싶진 않다. 늘 그래왔다. 친구들은 나의 이런 일관된 태도나 지향하는 바를 신뢰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나와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 아닌가. 나의 생각을 인용해 마치 내가 한통속(이런 말 진짜 거북하고 불편하다)이라고 말하는걸 최근 경험하고 있다. 어이없는 경우다.

    결혼은 사회적 제도다. 모든 사회적 제도가 그렇듯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만 모든 사회구성원을 만족시킬 수 없다. 더구나 그것이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고착될 경우 한 개인의 온전한 삶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기는 힘들다. 한번 제도와 시스템이 되면 그 결함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와 시스템이 겹겹이 쌓일 뿐이다. 그래서 난 결혼을 그저 잠재적 오류를 탑재한 사회적 제도 정도로 받아들인다. 그 결혼제도란 것이 사람의 마음을 좌지우지해야 한다고 보거나 통제의 기술이 적용될 경우 바로 끝내면 된다. 모든 사람이 당시의 상황에서 옳은 판단만을 하고 사는 것도 아닐테고,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것이 아니던가. 마치 결혼제도가 당사자들의 영원불멸할 것 같은 마음을 제도로 묶어 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결혼관의 문제이며 더 심각하게는 인간관에 대한 심각한 오산이다. "마음은 변하는게 아니야. 사랑도 변해선 안된다. 한 사람과 평생 섹스하며 살겠다는 약속을 했으니 그걸 깨는 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건 무시무시한 배신이며 사회적으로 매장당해야 할 짓이야" 이런 식의 사고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말고 하는 것이 어찌 약속으로 해결될까. 간통죄라는 것이 성립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결혼제도를 보호하기 위한 또 하나의 시스템일 뿐이다. 사랑은 식는다. 그건 그저 인간이 동물이기 때문에 당연한것 아닌가. 대부분 기능이 정상적인 사람의 도파민의 분비기간은 길어야 30개월이다. 즉, 3년안에 눈에 씌워진 콩깍지는 사라진다는 말이다. 눈이 뒤집혀 결혼했다 하더라도 3년이 유효기간이다. 그 이후 결혼생활이 유지되는 건 다른 이유에서다. 자식이 생기거나, 정이 쌓이거나, 부부간의 의리가 생긴거다. 이유야 더 많겠다. 그런 많은 이유로 사람들이 결혼생활을 유지하는거다. 그런데 그 결혼이 깨지는 것은 서로간의 상처가 된다. 그래서 이혼이 쉬운 결정이 될 리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혼한 사람들은 모두 몹쓸 인간들이고 사람에게 상처주는 부도덕한 인간말종인가. 결혼제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로 결혼하는 커플, 서로 해결해야 하는 많은 오해를 그대로 안고 결혼한 커플, 서로를 소유할 수 있다고 이상적인 욕망과 욕심에 사로잡혀 결혼한 커플, 막상 결혼 후에서야 그 사람과 내가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되는 커플. 등등등등등... 얼마나 많은 이유가 있겠는가 말이다. 둘이 함께 사는 동안 서로에게 지옥같은 일상을 안겨주고 있다면 그 제도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생각이 이혼을 종용하는 말인가. 난 한치의 양보도 공감도 할 수 없다. 절대 이혼종용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건 그저 보편적인 인간감정에 대한 이야기이며, 다양한 인간의 삶의 형식에 대한 나의 견해다. 세상의 모든 헤어진 부부가 모두 죽어 마땅한 범죄를 저질렀을리 만무하고, 세상의 모든 부부가 행복에 겨우 살며 단 한사람만 평생 사랑하고 흔들림 없이 둘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도 억지다. 말그대로 건by건이다. 어떤 부부에게서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다. 그 시도에서 의사소통의 오류나 소유욕이 강해져서 문제가 해결방향이 아니라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그건 사랑의 문제가 아니라 결혼관의 문제이거나, 부부간에 합의할 수 있는 건강한 의사소통이 부재함으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니냔 말이다. 

    2013년 봄 부터 가을 사이 이런 부부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나의 이런 생각을 부부사이에서 레퍼런스로 사용하면서 온갖 이해관계속에 내가 등장하게 되었다. 당사자인 나에게 확인한 바도 없으면서 내가 왜 다른 사람들의 천한 가십거리에 등장해야 하는지 도통 이해도 안되고 재수없다. 피곤하지만 친구들이라 봐준다. 하지만 친구관계에서는 바로 out이다. 

    2013년 9월 25일 수요일

    명심하라.

    관계에서 가장 무서운 일이며, 천박한 마음은 의심이다. 
    그것이 의심으로 끝나지 않고 확신으로 이어질 경우 범죄가 된다. 
    알겠는가 당신!!!

    2013년 9월 19일 목요일

    바베트의 만찬



    내가 본 영화 중에서 10편의 추천작을 뽑으라면 좀 고민 좀 되겠다.
    아마 그 중에 들어갈 것 같다.
    바베트의 만찬.

    무브 투 창천 0920

    추석연휴가 끝나간다.
    이제 본격적으로 짐을 싸야 하는데 나는 내일 도쿄로 간다.
    주말을 지내고 나면 다시 지금 사는 집 계약을 마치지 않으면 이사날짜를 잡기 힘들어질거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큰일이다...싶어 걱정이 된다.
    집을 스캔하면서 느낀건데...
    10년간 사라진 것이 더 많다.

    2013년 9월 18일 수요일

    잊지 않을 수 있을까

    침실로 돌아온 웬디는 피터에게 말했다.
    우리 다시 볼 수 있겠지?
    파터는 말했다.
    물론, 네가 날 잊지 않는다면 언제든.

    2013년 9월 16일 월요일

    무브 투 창천 0917

    오늘 계약서에 도장 찍고 계약금을 보냈다.
    기분이 이상하다...
    주거환경이 내 삶을 완전히 바꾸게 될텐데 그럴 준비는 되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항상 옳은 선택만 있는 것은 아닐테니...
    잘 받아들이자.

    2013년 9월 15일 일요일

    무브 투 창천 0916-1

    돈이 부족하다고 하니...
    쪽지와 전화로 많지는 않지만 빌려주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돈 없다고 말해 놓고 내 얘기를 듣는 것과는 많이 다른 태도다.
    그건 액수와 무관했다.
    딱 현실적인 상황이 되니 나에게 보이는 태도들이 다르게 읽힌다.
    이 경험은 참 좋다.

    갑자기 셀카

    이제 곧 떠나게 될 내 방 내 책상 앞인데...
    왠지 사진 한장 정도는 남겨놓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친구들하고 포토부스 앞에서 장난 삼아 찍어놓은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다 지운것 같더라.

    이사 하려니 기분이 묘하다.
    이 방...이 자리를 9년이나 썼다는게...

    무브 투 창천 0916

    지난 9월 14일 창천동에 집보러 갔다가 마음에 쏙 드는 전세를 발견했다.
    일단 가계약금 200만원을 덜컥 보내고 홀딩.
    9월 15일(일)에 동네 부동산 문 연데를 찾아갔다.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내 놨다.
    어제 일요일인데도 6명이 다녀갔다.
    전세비용이 6천만원이 모자란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하루만에 구했다.
    어머니의 지인에게 구했다. 다행히 은행이자정도만 낼 수 있게 되었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면 담보나 보증같은 것이 필요한데 그렇게 되면 복잡해 지기도 하고,
    현재 살고 있는 집 전세 내는데도 무리가 따른다는 이유다.

    이때 느껴지는 거 하나...
    내가 이 나이 먹도록  6천만원을 빌릴 사람이 없다는거.
    경제력이 정말 없는 친구들 사이에서만 사는구나 싶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아무튼 창천동으로 간다.

    가을은 가을이다



    가을은 가을인가보다.
    하늘이 좀 달라보인다.
    아이폰으로 찍고 보정없는 상태의 구름이 이 정도니...

    어제 이사갈 집을 결정하고 집을 내 놓았다.
    집 보겠다고 사람들이 찾아온다. 
    기분이 이상하다.
    슬픈건 아닌데 이 동네 떠나는게 왠지 나에게 어울리는 걸까 고민하게 된다.

    2013년 9월 12일 목요일

    쉬운방법이 싫다

    고속도로로 시간을 단축해서 목적지로 달리는 사람은,
    마을 사이의 풍경을 볼 수 없다. 하물며 오솔길은 어림 없다.
    오솔길을 걷겠다며 고속도로로 달려간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려고 하는 것일까.

    요약본이 널려 있다는 이유로 통독을 하지 않는 사람이 지식을 얻을 리 없고,
    대화가 있어야 하는 곳에서 대화법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은 한심하다.
    안건을 처리해야 하는 회의에서 대화가 시도되거나,
    대화를 통해 인식의 폭이 넓혀 져야 하는 상황에서 효율적 시간관리가 화두가 되는 경우를 볼 때면 말문이 막히곤 한다.

    사람들이 쉬운 방법을 자꾸 찾으려 한다.
    그 쉬운 방법을 찾아낸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어려운 방법을 통해서 알아낸것 아닌가 말이다.

    난 "사회"가 싫다.
    특히 쉬운방법을 찾는 사회에 이제는 어떤 말도 건네고 싶어지지 않는다.

    2013년 9월 6일 금요일

    Basic Instinct

    원초적 본능이란 제목으로 개봉했던 영화고,
    섹시한 스릴러란 걸로 더 잘 알려졌다.
    특히 그녀의 다리꼬는 장면에서 음모가 노출되면서 포르노와 차원이 다른 자극이 압권이다.
    이런 장면들이 워낙 잘 알려지다 보니 실제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원초적 본능은 과잉욕망을 심도있게 다룬다.
    극중이름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샤론스톤을 흠숭하던 한 여인의 이야기다.

    2013년 7월 27일 토요일

    좌뇌와 우뇌


    좌뇌와 우뇌의 월페이퍼...
    http://img692.imageshack.us/img692/543/wallpaper1206472.jpg
    이거 좀 멋진듯.

    2013년 7월 25일 목요일

    2013년 7월 23일 화요일

    Peter Gabriel - Come Talk To Me



    최근까지 왕성한 작품활동과 공연을 하는 피터 게이브리엘을 보면 존경스럽다.
    80년대의 피터는 파격적인 영상언어와 꽤 정교한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였다.
    지금은 풀문페스티벌을 기획하면서 밤에 사람들을 끌어모아 함께 즐기며 산다.
    한동안 그가 아프리칸 드럼이나 스캣송등을 자기 음악에 접목하는 시도는 그리 달갑진 않은 장사치 처럼 보였었다.
    근데 지금 들으니 꽤 좋다.

    As Good As It Gets



    이 대사를 멜빈(?)역의 잭 니콜슨이 얼마나 잘 살렸는지 알수 있다.
    간지럽고..입밖으로 꺼내는 순간 자존감을 잃는 말을 해 줘야 여자들이 후련해 하는 것을 알고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이라고 쐐기를 박는다.
    사랑을 항상 증명해 달라는 애정결핍 또는 중독자들이 지구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생각하면 좀 끔찍하지만...
    뭐 그런걸 어쩌랴. 대충 응해주며 사는 방법밖엔...
    create compliment는 연애를 위한 필수요소란 말인가...헐.
    아무튼 연기는 최고임.

    2013년 7월 22일 월요일

    'Que Sera Sera' in "The Man Who Knew Too Much"



    히치콕 영화중에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에 나오는 도리스 데이.
    이 영화를 못봤는데 한번 봐야겠다.
    히치콕을 좋아하는데 왜 기회가 없었을까 싶기도 하고,
    이 노래가 등장하는 씬이 갑자기 너무 궁금해졌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가사가 쥑인다.

    루모레 RVMORE

    "아주 건장한 남자가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고 긴장한 채 울퉁불퉁한 바닥 위에 서 있다. 그는 뭔가 대기 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의 정체는 "루모레"로 밝혀지는데 무장한 남자, 즉 "후오모 아르마토"에 관해 이야기 해준다. 이 남자는 17세기 초 체자레 리파의 도상학의 상이한 판본에서, 그러니까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저술가와 조각가들이 "웅변가, 시인, 화가, 조각가 그리고 다른 연구들"에 유익하도록 고대신화의 보고를 모아둔 저 위대한 개요들 중의 하나에서 등장한다" 
    때론 비밀이 거짓말을 생산한다. 거짓말의 완성은 풍부한 상상력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반면 상상력은 자신이 처해진 현실에 기반한다.
    따라서 "실재하고 있는 현실 속의 나"에 대한 몰이해나 왜곡은 거짓말/비밀/루머의 씨앗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소설과 영화 모두가 좋았다. 
    난 어려서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성냥 황을 먹는 것이었는데, 모두가 의아해 한다. 
    어른들이 못먹게 하자 몰래 숨어서 훔쳐먹곤 했다. 
    팔각성냥은 나에겐 훌륭한 간식이었다. 
    소설은 1월부터 12월까지 하나씩 요리를 소개해 가며 티타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판타지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성냥을 넣은 요리를 먹고 몸에서 불이난다.
    멕시코에는 성냥황을 넣은 요리가 있다는게 사실 더 흥미로왔다.
    가끔 조카들에게 어머니께서 "너희 삼촌은 어려서 성냥황을 간식으로 먹었다"라고 말하시는데 킬킬대며 웃거나 믿지 않는 눈치다.

    요리와 사랑의 비극이 담긴 에로틱 판타지.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읽어보고 싶다. 묘사가 탁월해서 엄청난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원작소설은 라우라 에스키벨이란 여인이 쓰고, 영화는 그녀의 남편이 감독이다.







    2013년 7월 20일 토요일

    설거지

    설거지 후 그릇을 뒤집어 놓는다.
    그릇을 말리기 위한거다.
    바로 놓으면 어떤가.
    오래걸리긴 하지만 여전히 마른다.
    다만 오염된 물이라면 그릇엔 어떤 이물질이 남겠지.
    뒤집든 바로 놓든 그릇은 마른다.
    그게 설거지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큰 차이는 없다.

    2013년 7월 19일 금요일

    밥은?

    혼자 산다는 말을 하면 기혼 성인 여자들의 많은 수가 밥은 어떻게 해먹는가를 궁금해 한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사실 굉장히 기분이 상한다.
    노인이거나 장애를 가진 것도 아닌 성인이 된 사람이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인가 말이다.
    내가 그래 보이냐고 대뜸 화를 버럭내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남자는 밥을 해 줘야 먹는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긴한데...
    그건 당신의 문제다.
    밥을 해 가져다 바치니까 밥을 구해먹어야 할 이유를 못찾는 것 뿐이다.
    그렇게 길들여 놓고, 밥도 못찾아먹는다고 구박하는 것도 많이 봤다.
    다 쥐어 박고 싶다.

    대응능력


    소년은 길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딘가로 가던 중인가 돌아오는 중인가...

    아마 겁을 잔뜩 집어 먹었을게다.
    하늘에서는 웅웅 소리가 났다.
    결정해야 했다.
    가던 방향으로 계속 걸음을 옮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돌아설 용기는 없다.
    앞으로 가는 것보다 돌아가야 하는 길에 느낄 상실감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몇 시간이고 그 자리에서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도 소년을 도와줄 사람은 없다.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우리옆집엔 공작새가 살아_본능액션동네



    우락부락은 어린이도 어린이라지만, 아티스트에게 의미있는 프로젝트임에 분명하다.
    어떤 기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방향에 대한 스스로의 점검차원에서 그렇다.
    누군가에게 작업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회의가 밀려오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아티스트다.

    본능액션 키넥트 프로젝트는 작곡가 김범기선생님이 캠프에서 쓰려고 프로그래밍한 작업이자 작품이다.
    사실 키넥트를 이용한다는 건 그리 낯설고 먼 얘긴 아니다.
    누가 어떻게 쓸것이냐에 달렸을 뿐이지.
    캠프 전날까지 코딩하고 가져왔다면서 노트북을 꺼내놓고 어린이들하고 신나게 즐겼다.
    테크놀로지의 환상적인 경험?
    글쎄다.
    이 작업은 그것 이상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작화의 과정에서 자기캐릭터가 분명해 지지 않으면 움직임은 의미가 휘발성을 갖고 만다.
    살아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비트에 맞춰 춤을 추기 때문이다.
    이 미묘한 차이가 예술교육이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
    이소라가 작사한 곡인데 노랫말이 예사롭진 않다.
    이런 감성을 가진 여가수가 80년대에 예능프로그램으로 알려졌다는게 좀 웃기다.
    가수는 가수였으면 좋겠다.
    칭얼거리는 무대 뒷편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게 싫다. 

    2013년 7월 13일 토요일

    이상한 아이

    1.
    어려서 살던 골목길에 어울리지 않는 옷가게가 있었다.
    이름이 [봄 의상실]이었는데 난 그걸 [봄의 상실]이라고 받아들였다.
    대여섯살에 상실이란 단어를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좀 부담스럽고 어이없긴 하다.
    하지만 의상이란 명사는 몰랐으나 상실이란 개념은 무엇인지 알았다.
    그래서 [봄의 상실]이 옷가게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2.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 다들 가지고 다니는 신발주머니가 싫었다.
    곤색의 태권브이 그림과 빨간색의 캔디 그림을 전교생이 들고 다녔다.
    떼를 쓰긴 싫었다. 남는 천으로 신발 담을 자루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
    어머니는 의아해 하시면서도 꽤 튼튼한 자루를 만들어주셨다.
    난 그런게 공산품 보다 좋았다.

    3.
    중학생인 나를 생각해 보면 늘 혼자였다. 누가 따돌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옆자리에 붙어 앉았던 뚱보가 한명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아이에게 난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번은 펜글씨 시간에 내가 잉크를 엎었다. 뚱보의 공책에 번져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때 뚱보가 말했다.
    "이..씨...너 나한테 이겨?"
    난 잠깐 그 뚱보의 상태를 구경하며 한심함을 전할 말을 생각했다.
    "아니. 져. 그런데?"
    당시 남자 중학생 아이들은 힘으로 싸워 무언가가 결정되었다는 걸 그때 뚱보의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

    4.
    고등학교를 졸업할 그 즈음에 버스의 여성 승무원 의무조항이 사라졌다.
    차장누나의 시대가 끝난거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얼굴을 본것은 버스였다.
    84년부터 순차적으로 승무원을 줄여나갔다. 다음 정류소안내는 방송이 대신하고, 요금은 버스기사 옆의 통에 직접 지불했다.
    할일이 사라진 차장누나들이 멍하게 창밖을 내다 보며 있거나,
    민망해져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기 어색해 하다 눈물을 흘리는 누나들도 많았다.
    그 후로 버스는 탈 수 없었다. 

    2013년 7월 8일 월요일

    가족영화

    가족영화는 가족이 같이 보는 영화를 말하는 것 같긴 하지만,
    나의 정의는 가족이 주제가 되는 영화더라.
    이런 영화들 재미나다.

    1. 4Some

    쓰리섬도 아니고 무려 포섬이다. 국내 개봉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영화는 유쾌하고 가볍게 가족이야기를 다룬다.
    imdb링크
    http://www.imdb.com/title/tt2358514/?ref_=sr_1

    2. 가족의 탄생

    가족의 탄생이란 제목 그대로 끊임 없이 대안가정에 대한 모색을 담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꽤 후련하다. 
    다음영화링크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41400

    3.  Jules and Jim

    프랑소와 트뤼포감독의 1962년작. 
    이 영화보면서 얼마나 심리적으로 요동쳤는지 지금도 기억난다. 
    영화속에 가족이란 단어가 한마디도 등장하지 않지만 유사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imdb링크
    http://www.imdb.com/title/tt0055032/?ref_=fn_al_tt_1

    4. 아내가 결혼했다.


    동명소설이 많이 읽혔고, 나도 소설을 먼저 읽었다. 결혼이 그렇게 좋은 것인데 왜 한번만 해야 하냐는 아내의 질문. 그래서 또 하나의 가정을 교집합으로 삼으면서 가족관이 리셋되는 남자의 이야기다.
    다음영화 링크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44854

    5. L'enfant

    국내 개봉제목은 더 차일드였다. 한국에서 10대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고난의 연속이다. 그건 한국사회의 특징인줄 알았다. 그런데 왠걸...이 영활 보면서 10대가 가족을 만드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제니주노같은류의 어른스러운 10대 부모는 이상적이고 계몽적인 발상이다. 현실에 가장 근접한 스토리는 랑팡이 최고다.
    imdb링크
    http://www.imdb.com/title/tt0456396/?ref_=fn_al_tt_3

    2013년 7월 6일 토요일

    핵심문제를 직면하라


    책상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노트를 열어보게되었다.
    프로젝트 팀 헤모를 하면서 미디어교육에서 조직 커뮤니케이션을 일부 다루게 되었고, 그때 한참 조직문제진단 및 솔루션찾기에 흥미가 있었다.
    비영리조직의 컨설팅을 위한 감마모델이나 영리조직의 코칭프로그램도 가리지 않고 배워 나갔다. 꽤 많은 비용을 투자해가며(당시 대학등록금보다 훨씬 비쌌다) 답을 찾아나섰던 것 같다.
    2003년에 조직컨설팅 워크숍에서 강의를 위해 썼던 노트를 들여다 보게 된다.
    조직 내부와 외부의 의사소통관견한 이슈였다.

    핵심문제는 O다.
    핵심을 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은 ☆인데,
     - 핵심적인 문제로 오해하는 something
     - 전혀 다른 대상체로 회피
     - 무관한 사안. 이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외부요인과 원인은 정사각□이고
    해결된 과제는 직사각☐이다.

    대부분 의사소통문제가 커지는 경우는
    1. 핵심문제를 피해가거나
    2. 핵심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3. 외부요인이나 파생문제를 우선 해결하려고 에너지를 낭비하는 경우다.

    핵심을 인식하면, 돌아가지 않고 직선으로 향해야 한다.
    아니면 겉잡을 수 없이 문제가 커져서 핵심문제 자체가 관계 안에 고착된다.
    이때 문제를 문제로 느낄 수 없고 그저 문화로 받아들이게 된다.

    --------------------------
    오...
    03년에 나는 이런 노트를 했었구나...
    좀 새롭다.

    우락부락 시즌7 오피셜 로고


    2013년 7월 3일 수요일

    Channel 4 Paralympics - Meet the Superhumans



    2013년 패럴림픽 캠페인(이걸 뭐라고 해야하나...?)이 화이트라이언 디렉션부문광고대상을 탔다.
    유튜브에서 보면 개인 종목까지 친절하게 자막처리해준다.
    감각적인 카메라워킹도 인상적이지만, 픽션느낌이 삽입되어 볼 맛이 난다.

    물론 올해 가장 많은 부문의 수상은 dumb ways to die였다.
    근데 수퍼휴먼을 만나는 이 영상이 가장 눈에 쏙 들어온다.

    짝사랑

    Untitled by zoinno
    Untitled, a photo by zoinno on Flickr.

    사랑은 수백만가지의 유형이 있다.
    사랑은 주고 받는 인간관계로 본다면 짝사랑 또는 외사랑은 쓸모없고 비능률적인 관념처럼 보일거다.
    하지만 감정의 뒤 섞임이나, 본능과 마음의 교감이라고 본다면 짝사랑처럼 효율적인 시스템은 없다.
    짝사랑은 혼자 이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언제든 차버릴 수 있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자유로움까지 있다.
    치명적인 매력. 매력이되 치명적인 것을 배제할 수 없다면 짝사랑은 진짜 치명적인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계도 없고, 철저히 사적이며 이별 이후 스스로 치유하는 성장의 과정도 겪게 된다.

    습한 공기가 전선을 형성하여 비를 내리는 것을 장마라고 하는데 마른장마라는 말을 한다.
    마치 짝사랑은 마른장마 같아서 모순 투성이지만 단지 말이 아니라 현상 처럼 나타난다.
    지하철에서 만난 여인을 보고 두근거리는 따위를 말하는게 아니긴 하겠으나...
    아무튼 짝사랑은 매력적인 사랑 같아 보인다.

    2013년 6월 23일 일요일

    슈퍼문이 뜨는 밤, 골목길

    오늘 달이 하도 멋있길래 찍으려고 카메라를 꺼냈는데, 사실 골목이 더 멋졌다.

    새로운 나의 모습을 하나 알았다.

    남을 도와주거나 위해줄 때 아무 조건없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더구나 어떤 심적/물적 감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건 좋은 관계일때의 얘기다.
    관계가 틀어지게 되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손익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걸 알게 된 이상 이젠 누굴 도와주거나, 베푸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신 티나게 도와주고 충분한 감사를 받으면 된다.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게 하던 도네이션을 우선 정리해야겠다.
    가족, 일, 친구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관계가 댓가로 지불되지 않아야 한다.
    나 쓸데없는 오지라퍼라는 것은 알곤 있었지만, 정말 어떤 땡큐도 바라지 않는다는 착각을 하고 살았었다.
    오늘 큰 깨달음이 하나 있구나...
    참 기쁘다.

    2013년 6월 5일 수요일

    벤자민

    벤자민 by zoinno
    벤자민, a photo by zoinno on Flickr.

    일단 무지하게 잘 자란다.
    가지치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있던 화분에 찐득한 진액을 뿜어내던 벤자민이었는데 지금은 생명력이 넘쳐 보인다.
    모든 잎이 건강하다.

    2013년 5월 27일 월요일

    김주호 선생님과 맥주 두 잔에 대한 생각

    김주호선생님을 만난건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생기고 난 후였다.
    원장이라는 직책/직함의 무거움과는 좀 어울리지 않을 법한 화법을 구사했던 분이다.
    외부에서 직원들을 우리식구라고 했다.
    어떤 분이 진흥원 직원중에 김주호원장님의 직계가족이 있다고 말해서 파안대소했던 기억도 있다.
    안에서야 어땠는지 모르지만, 외부에서는 그런 분이 좋은 리더처럼 보였던 건 사실이다.

    나는 개인적인 친분이야 없었지만, 공식석상에서 만나게 되는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김주호선생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다를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분을 생각하면 맥주 두 잔이 생각난다.

    어느날 뜬금없이 자기는 술을 입에도 대기 힘들다고 말했다.
    무슨 맛으로 먹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술을 마시면 몸이 말을 안듣고 너무 힘이 든다는 거다.
    애주가가 "난 술 안마시고도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라는 말을 듣는게 싫다고 했다.
    그건 마치 술안마시는 널 동정해서 내가 안마셔주마...라는 태도라는 거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대답을 하고는 물었다.
    "근데 원장님은 술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긴 하세요?"
    궁금하다. 취했을 때 혀가 꼬이고 헛소리하는 것도 궁금하긴 하다...고 했다.
    체내에서 알콜을 분해하는 효소를 술에 첨가해서 먹으면 간에 부담없이 알콜이 분해된다고 전했더니 그거 구하면 우선 자기에게 가져다 달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알겠어요. 손에 넣으면 실험체 1순위에 넣어드리죠. 흐흐"라고 난 말했다.
    난 술마시는 게 많이 궁금하시구나...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다.

    또 다른 어느날 무슨 워크숍이 있어서 참가했다가 저녁식사 후 차를 한잔 마셨다.
    참가자들은 마지막날 저녁이라 음주가 시작되려던 시점이다.
    슬쩍 빠져나와 커피숍에 갔다. 부담없는 식사자리라서도 그렇고 굳이 원장이 있어야 하는 자리가 아니기도 했을 것 같다.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술 얘기가 다시 나왔다.
    맥주 두 잔 얘기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국사회의 음주문화가 얼마나 더럽고 치사한 서열의식으로 물들어 있는지 왜 모르겠는가.
    음주가 힘을 과시하고 왜곡된 동료의식을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소외되고 있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 김주호선생님은 그런데는 이미 관심없어 보였다.
    단,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생맥주를 시원하게 벌컥 벌컥 마시고 그냥 멀쩡한 정신으로 집에가고 다음날 무사히 출근할 수 만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딱 두잔만 마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잔...
    왜 두 잔이었을까.

    난 그냥 알것 같아서 더 묻지 않았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첫잔은 건배를 제안하고 벌컥 벌컥 마시고 내려놓은 잔이다.
    그리고 큰소리로 "한잔 더"라고 말하고 두번째 잔을 시키고 싶은 마음.
    그 말이 두 잔이라는 말로 나왔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시원하게 맥주 두 잔을 마시는 날이 오길 기다렸다.
    26일. 김주호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갑작스런 부고에 놀라기도 했지만 아무 부담 없이 맥주 두 잔을 못한것이 서운하고 미안하다.

    Rest in peace...

    2013년 5월 18일 토요일

    5월 18일


    80년 나는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유독 신문을 많이 보시던 할아버지와 한방을 쓰면서 자연스레 신문을 많이 읽으며 자랐다.
    그때는 신문은 한자도 많고 세로쓰기를 했을 때다.
    기사가 워낙 어려운 말로 작성되다 보니 어린이인 내가 읽기는 무척 어려웠다.
    그저 신문이 신기했다.
    난 오타를 찾아내거나, 똑같은 글씨인데 조판에 따라 변형되어 보이거나 오래써서 닳아버린 식자판을 상상하는 좋았다.
    뉴스에는 나쁜 놈들이 일으킨 폭동이 연일 보도 되었고 그렇게만 믿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봤던 80년 5월의 사진은,
    무장한 군인이 피투성이가 된 비무장 상태의 한 청년을 때리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이 사진은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다.
    언론이 무엇인지도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알았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관망하는 내가 한심하다는 것도 알았다.
    생각해 보면 80년 광주가 아니라, 88년 5월은 각성하여 다시 태어난 달이구나.

    2013년 4월 22일 월요일

    포스코의 윤리규범



    ‘업무에서 잘못한 직원은 용서할 수 있지만 윤리적 문제가 있는 직원과는 함께 갈 수 없다’


    포스코의 윤리규범이다.
    http://www.posco.co.kr/homepage/docs/kor3/html/company/ethics/s91a3000040c.jsp
    지금까지 포스코가 이러 저런 이유로 기업윤리에 대한 자랑질이 우리사회에 먹혔다.
    솔직히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다들 속아 준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에서 기업하면서 윤리라는 말이 얼마나 속된 표현인가.

    포스코에너지 임원이 대한항공 승무원에게 라면을 세번이나 다시 끓이라고 시키고,
    잡지로 얼굴을 때렸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 입국을 포기하거나 구속수사를 받아야 했다.
    당근 포스코에너지 임원인 왕머시기는 출장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윤리적인가?
    포스코에서 주장하는 업무를 잘못한 직원은 용서하고 윤리적 문제를 가진 직원은 함께 갈 수 없다고 천명(?)한 것이 사실이냔 말이다.
    포스코에서 공식사과하고 진화하고 나섰다. 계열사라고 해도 왠지 연대 책임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다.
    보직해임했다고 그들의 블로그에 썼다. 
    http://cl.ly/image/1I3U2O3x3j2e
    다시 확인해 봤더니 결국 사직서 내고 지발로 나갔댄다.
    내가 못찾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직원이 강제로라도 그 승무원에게 찾아가 사과했다는 말이 없다.
    물의를 일으켰다.
    보직해임과 인사위원회를 열어 해고를 결정할 것이다....라는 말이 반복된다.

    가장 먼저해야할 일이 지켜지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들의 조치는 그저 쌩쑈로만 보이는건 당연하지 않을까한다.
    포스코(또는 에너지)에게 실망했다는 수 많은 비아냥과 욕설은 그저 네티즌의 배설에 가깝다.
    그건 며칠지나 사라지고 잊혀질 것 같다.
    정작 비행기에서 라면을 세번이나 끓이다 잡지로 얼굴을 맞은 스튜어디스의 수치심은 어떻게 할거냐. 그게 윤리적경영이라는 포스코가 뻘 주장을 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이상 야릇한 임원구성기사를 본게 엊그제다. 이상 야릇한 인사와 이 사건이 무관해 보이진 않는다.


    관련기사링크

    한겨레 :

    갑작스런 포스코 인사발표 뒷말 무성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77134.html

    포스코가 라면사업?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83955.html

    2013년 3월 27일 수요일

    igoogle도 굿빠이

    From Evernote:

    나의 구글 초기화면



    igoogle은 2013년 11월에 종료된다. 
    구글에서 만든 내가 좋아하는 서비스는 하나 둘씩 사라졌다. 
    핀터레스트에서는 구글묘지를 개설하는 사람도 있구만.
    아무튼 igoogle을 버리기로 나도 결심. 극단적으로 구글이 아예 안보이게 하는 것을 결정.
    쳇 드러운 인간들. 구글이나 애플이나 뭐가 달라. 다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을 뿐인것을 말이지. 
    아무튼 그래서 구글 초기 화면을 아이언맨만 두고 싹 지웠더니 속이 후련하다.  

    2013년 3월 13일 수요일

    안드로이드용 다음메일 앱이 나왔다.


    안드로이드에서 다음메일 앱이 나왔다.
    아이콘은 무성의하게 만든것 같진 않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두둥...
    허나 진짜 문제는 메일이 열리지 않는다것.
    멀쩡한 네트워크에서도 내 메일함을 들여다 볼 수 없고,
    보내기 테스트를 해보려해도 바람개비가 계속 돌다 또 똑같은 메시지를 보여준다.
    혹시 메일서버를 점검?
    그래서 크롬으로 접속했더니 멀쩡하게 잘 열린다.

    안드로이드에 출시할 때만 대충한걸까?
    늘 모든 것에 대충하는데 내 눈엔 안드로이드 앱에서만 눈에 보인걸까...

    2013년 3월 6일 수요일

    다음에선 검색창을 없애는 편이 최소한의 덕후라도 확보하는 길이다.

    정치적인 이슈야 말할 것도 없고,
    검색의 기본도 되지 못하는 국내 포털사이트들을 보면서 한숨이 나온다.
    이런 비교...남들이 해 놓은게 이미 손으로 셀 수도 없이 많지만...
    양들의 침묵 원작 소설과 영화정보를 보려고 일단 구글링 했다.
    내가 찾는 건 위키에 들어 있었다.
    바로 밑에 다음영화가 뜨길래 클릭해서 영화DB를 일단 들여다 봤다.

    다음에 한 일은 영문 위키로 들어가서 silence of lambs를 검색했고,
    imdb에서 사진을 찾아봤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다음과 네이버에서 검색해 볼까...?

    일단, 구글은 설명한 순서대로 검색된다.



    그런데 한국인이 맹신하고 중독에 가까운 검색 네이버는
    양들의 침묵을 검색하는데 왜 한니발 라이징을 보여주냐?
    그 다음에 쓸데없이 별점이 나오고...블로그와 뻘소리천국인 지식인을 들이민다.



    가장 웃긴건 다음이다.
    다음이 정말 이렇게 까지 망가져야 하는가 싶다.
    네이버는 그나마 양들의 침묵의 아류(?)작이거나 스핀오프(?)격의 영화정보라도 보여준다.
    최소한 연관성은 있단 말이다.
    다음은 아래와 같다. "뭥미"는 이럴때 쓰라고 만든말 같다.


    다음 참 안타깝다.
    대중을 놓치면 든든한 팬이라도 확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둘다 놓친것 같다.
    정보접근에 대한 강의할 때 구글링으로 해결 못한건 다음검색을 사용하라고 사람들에게 얘기하곤 했는데...
    그거 허망한 뻥이 되고 말았구나. 슬프다.

    2013년 2월 18일 월요일

    Borderline

    1984년에 마돈나가 데뷰했구나.
    지금은 마녀포스가 나지만...
    그때는 막나가는 날라리? 암튼 쿨한 이미지였다.
    보더라인이 거의 데뷰곡인데 별로 알려지진 않은 곡인듯.
    별 동작이 없는데 댄서랑 완벽한 조화를 만든다.
    80년대는 재즈댄스에 기반을 둔 춤이 좀 보기 좋았군.

    2013년 2월 16일 토요일

    친구에게 배운 것

    From Evernote:


    한 겨울 맥주를 마시고 화장실에 갔다. 
    친구가 따라 들어왔다. 
    내가 먼저 손을 씻는데 뒤에서 물었다. 
    "따뜻한 물 나와?"
    "아니. 찬물이다"
    "나 찬물에 손 안씻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난 물었다. 
    "찬물에 손 왜 안씻어?"
    친구가 대답했다. 

    "손 시려서"

    나의 의사소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답이 뻔하고 당연한 것을 물어서 확인하는 버릇을 고쳐야겠다. 

    2013년 2월 13일 수요일

    좋아요?

    겨울나무

    실로 오랜만에 네이버를 들여다보다 문득 본 사진인데 좋다.
    좋아요 버튼이 있길래 찍고 나오려니까 로긴해야 한다.
    페이스북에서도 공개된 사진에 본인이 좋아요버튼을 친구가 아니면 찍을 수 없게 하는 것도 사실 좀 웃겼는데...(좋아요 버튼을 아예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아니면 대중적 공개를 하지 말아야 하고...)네이버도 그런다.

    불특정 다수가 좋다고 하는 것이 싫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로긴을 유도하는 방식이 현재 온라인 생태라는게 좀 하찮게 느껴진 아침이었다.
    아무튼 사진이 좀 좋다.

    2013년 2월 10일 일요일

    넥서스7을 며칠간 쓰다.

    From Evernote:

    넥서스7을 며칠간 쓰다.

    매킨토시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즐거움의 요소들이다. 
    때론 한심하게 비효율적이지만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가득한 앱이라거나, 
    애플제품끼리 환상적으로 궁합이 맞는 것을 발견하면서 느끼는 희열같은거다. 

    넥서스7을 쓰면서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롬북 테스터를 하면서 왜 삼성과 손잡아서 이런 쓸데없는 흉내를 방관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었다. 
    그걸로 이미 10년은 후퇴했다. 
    넥서스를 막상 손에 넣자 느껴지는 것은 애플의 그 쫀득한 터치감이야 금방 따라가겠지만...
    이 엉성한 디자인들은 어떻게 할거냐. 
    아이패드는 꺼내놓으면 자랑할게 넘쳐나는데...넥서스7은 슬그머니 내려놓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2013년 2월 6일 수요일

    지하철의 자폐아

    자폐아 한명이 지하철에 탔다.
    내리면서 큰 소리로 "안녕히 계세요"라고 했다.
    꽤 많은 사람은 그를 놀란 후 경계하는 얼굴이고,
    소수의 몇 명은 피식하고 웃으며 힐끔거리며 쳐다본다.

    먼저 내리면서 인사하는 사람이 웃음거리가 되는 사회가 정상인가.

    2013년 2월 3일 일요일

    우리 옆집엔 공작새가 산다.

    From Evernote:

    우리 옆집엔 공작새가 산다.

    . 우락부락으로 놀다. 

    우락부락은 "아티스트와 놀다"를 기초에 두고 기획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의 실험적인 장이다. 문화예술교육에서 특정 장르를 뛰어넘자고 수년간 외치고 있지만, 현실에서 장르를 넘나드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크로스오버 경험을 풍부하게 가지지 못한 우리사회 예술교육시스템에서 아티스트가 크로스오버 교육을 실행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락부락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놓인다. 장르를 앞세워 다양한 예술교육을 소개하는 여행식 교육프로그램 버전을 생산하거나 장르를 숨겨놓아 문화적 텍스트 안에 예술을 은근히 내려 놓는 방식의 두가지 선택지가 생겼다. 우락부락은 후자를 택했다. 클래식작곡가가 서점에서 전래놀이를 찾고, 사진작가는 가면을 만들고 그림자극을 연출했다. 회화작업을 하던 아티스트는 숲에서 몸의 움직임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일러스트작가는 각국의 식재료를 소개하고 요리를 한다. 막상 캠프의 현장에서는 아티스트의 예술적 기질과 장르적 손길이 적용되며 자연스럽게 놀이로 전환된다. 우락부락의 여섯번째는 이전 다섯번 캠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 여섯번째 우락부락은 커뮤니티.

    시즌 6는 삶의 터전인 우리 동네의 이야기다. 지역은 어린이에게 크게 느껴지는 거리와 공간의 개념이다. 쉽게 쓰는 말로 마을이 있겠으나 그보다는 동네가 더 친숙하다. 동네는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특히 우리동네는 걸어 다니며 감각할 수 있는 개념이다. 동네에는 친구가 있고, 함께 해야 재미있는 놀이가 있다. 다소 위험해 보이는 후미진 곳을 친구와 찾아가며 놀이는 시작된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모험의 공간이다. 현재 아이들에게 동네는, 놀이와 모험을 공유하는 곳이 되긴 어려워보인다. 어린이는 부모와 사회로 부터 멸균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며 필요이상으로 안전하게 자라고, 놀이터는 CCTV가 감시한다. 더구나 골목길에서 만난 수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에서 나오기라고 한다면 내가 사는 동네가 온통 불안요소 가득한 공포로 바뀐다. 동네에서 뛰어놀며 스스로 몸의 면역체계를 만들고, 다양한 경험으로 위험한 상황에 대처할 능력을 만들며 성장할 수 없다. 이번 캠프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 동네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누구와 어떻게 놀까를 고민했다. 살아있는 동네의 모습을 구현하고 싶었던 거다. 시즌6가 우리동네의 어린이들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갑자기 붐처럼 불어온 커뮤니티 아트에 대한 환기다. 공공기금을 들여 지역으로 아티스트나 문화작업자가 파견되고 그 지역사회의 구성원이 참여하여 예술행위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지역민이 참여하여 그리고/노래하고/춤추고/만들고/촬영하고/공연한다. 이런 행위가 커뮤니티아트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가장 아쉬운건 공공기금이 더 이상 지원되지 않으면 예술행위자체가 순식간에 사라지곤 한다. 그리고 참여한 사람들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다른 공공기금을 찾아보는 것은 그나마 긍정적인 문화행위라지만, 아무일 없었다는 듯 기억속에서 사라지는 걸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동네에는 예술가가 살지 않아? 진짜 없을까?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고,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예술행위가 실제로 동네에 있다. 더구나 어린이는 매일 그리고/노래하고/춤추고/만들고/촬영하고/공연한다. 매일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티스트다. 우리 동네에는 수 많은 아티스트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 동네의 수 많은 아티스트를 찾아내고 그들과 놀이를 시작해보자는 말이다. 

    . 공작새

    간혹 공작새를 보면 깜짝 놀란다. 상상의 동물이거나, 어느 판타지소설에서 봤을 법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는 공작새같은 존재다. 언제나 현재를 사는 이 사회에 섞여 있으면서도 아주 오래된 과거를 말하고 있거나, 먼 미래를 현재로 끌어다 놓기도 하며,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남들처럼 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없을 것 같으면서도 우리 가운데 있고, 예술세계가 활짝 펼쳐질 때면 많은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하는 존재다. 

    . 미성숙한 어른에게 말하는 어린이의 목소리

    어느 나라는 착한일을 하면 키가 커지고, 나쁜일을 하면 키가 작아집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여러분 모두 착한일을 하세요"라고 말하셨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착한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얘들아. 나 어제 착한일을 했더니 키가 2cm나 컸다~ 좋겠지 좋겠지? 무슨 일을 했냐구? 응. 길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리고 물에 빠진 고양이를 구했거든!"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모두 부러워하며 "와 좋겠다. 나도 어서 착한일을 해야 할텐데..."라며 좋은 생각을 많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착한일을 하려면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여름방학이 되자 아이들은 착한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키가 쑥쑥 자랐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모두 부쩍 커있었습니다.   
    교실에 들어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 다들 키가 많이 자랐네요? 착한일을 많이 했나봐요."
    선생님을 보고 아이들이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어. 선생님은 왜 키가 그대로죠?"
    방학이 끝나자 이 교실에서는 선생님이 키가 제일 작았습니다.  이야기 끝~

    이 이야기는 어린이가 만든 단편애니메이션의 대사를 옮긴 것이다. 처음에 이 작품을 보고 귀엽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미성숙하게만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서 이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야할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어린이들이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른들의 세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때로는 모사하고 모방하며 배우고, 때로는 거부하고 저항하며 자기 세계를 만들기도 한다. 어린이를 바른길로 안내하는 것이 캠프의 몫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고 있는 아티스트의 존재 자체가 캠프에서 드러나면 된다. 그 모든 여백은 놀랍게도 어린이가 알아서 채운다. 그 힘을 믿으면 된다. 

    2013년 2월 2일 토요일

    철도예약 앱 글로리의 멍청한 검색

    From Evernote:

    철도예약 앱 글로리의 멍청한 검색

    철도예약을 아이폰에서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앱이 있다. 글로리다. 
    그런데 여행목적지를 검색하면서 참 한심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없는 검색이다. 
    예를 들어 내가 천안에 가려한다. 
    당연히 "천"을 검색하면 천자로 시작하는 역명이 나올거라 기대하는데 가나다순으로 소트되어 천자가 들어간 모든 역이 뜬다. 
    정작 천안역은 한참 아래에 있다. 
    주안역으로 가려해도 마찬가지다. 정작 주안역은 한참 아래에 있다. 
    김천역을 가고 싶은 사람은 김자를 먼저 검색할테고, 남춘천역을 가려한다면 남자를 먼저 쓴다. 
    "천"을 먼저 입력하거나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있기는 할테지만, 그건 보편적인 검색이 아니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만들걸까.

    2013년 1월 31일 목요일

    복제불가능성을 카피하는 사람들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대해서 발표해 달라고 했다.
    우선 강의하는것이 직업인데도 불구하고 대규모집단을 무서워하는 탓에 일단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체인지온에서 한번정도는 발표하는게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참에 내 생각을 짧게 정리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무려 300명(500명이라고 했나? 잘 모름...암튼 엄청 많았다)도 넘는 사람들 앞에서 객석불을 꺼달라고 하고 발표했다.

    내 생각에 아날로그는 단 하나 밖에 없는 자기 감각에 대한 인식이다.
    그래서 귀하게 여겨지고, 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더 가치를 찾게 하는 법이다.
    반면 디지털은 그 시작부터가 무한한 복제를 전제하고 있다.
    원본과 복제본은 그 어떤 차이도 없다.

    드로잉, 아코디언, 콘트라베이스...요새 내가 꽂혀 있는 매체다.
    이 모든 것은 아날로그 감성을 극대화하게 만든다.
    유일무이며, 연주하고 그리는 동안에 생기는 현장성의 생생함은 잠든 감각을 깨운다.
    그 복제불가능성을 매체를 점핑하여 디지털로 카피하면서 생기는 또 다른 아날로그 감성이 있다.
    현재 우리가 사는 온라인 감성이 바로 그런거다.
    영상이 올라와서 다시 봤다.
    30분간의 발표다 보니 여러가지 생략되긴 했지만 그래도 핵심은 말하고 내려왔다.
    지나고 나니 300명 앞에서 얘기하는 것도 할만했다 싶기도 하고...
    다시 누가 대중연설을 부탁하면 분명 거절하겠지만 이런 주제라면 다시 해볼만 할 것 같기도 하다.


    [2012 체인지온] 복제 불가능성을 카피하는 몇 가지 관찰 - 김탕 from Daum Foundation on Vimeo.

    2013년 1월 30일 수요일

    Pizz Lee's Brithday.

    From Evernote:

    Pizz Lee's Brithday.

    친구의 생일을 기뻐할 수 있는 연령은 참 짧겠다 싶다. 아마 늙어가며 얻는 지혜에 대한 찬미는 있으나 생일을 기뻐하게 되진 않더란거지. 오늘이 친구의 생일인데 아직 기쁜걸 보니 많이 늙진 않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from イノさん

    부리나케 달려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 앨범은 한국에 수입금지된 레코드였다.
    흔히 말하는 빽판으로만 들을 수 있었다.
    15살에 처음으로 Run like hell와 Goodbye Blue Sky를 들었을 때 너무 벅찼다.
    이후90년대들어서 정식 음반으로 나왔을 때
    Run like hell밑에 우리말로 굳이 해석해 놓은 곡의 제목이 인쇄되어 있었다.
    부리나케 달려.

    그 음반을 다시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빽판으로 들을 때가 더 좋아졌던 제목이다.

    2013년 1월 29일 화요일

    안개출장

    장시간 차로 이동하는 건 체력소모와 스트레스가 생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타 지역엔 안가려고 한다. 내가 하는 일이 굳이 지역까지 가서 관여해야할 일도 없다. 요 며칠 출장을 다니니까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도 아깝고 죽을 맛이다. 오늘은 안개가 자욱해서 멋진 창밖풍경과 스릴넘치는 기사양반의 드라이빙센스에 스릴감이 있어 좋아라하곤 있다. 근데 여긴 어디냐? 2013년이 된것도 어제 알았는데 내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출장 후 외상성 스트레스 신드롬이다.

    시네이드 오코너


    이 영상을 다시봤다.
    시네이드 오코너다.

    아일랜드인을 비하하는 미국인들을 자주 봤다.
    합리적인 척 하지만 모두가 손해봐야 만족하는 근본없는 기형적인 나라 미국.
    아일랜드는 400년간의 영국과의 독립운동의 역사를 가진 내공을 가진 나라다.
    그래서 더 미국인들이 경계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겠지...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가수를 하면서 자기가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말할 때는 언제일까.
    원하지 않는 곡이 선곡되었을 때가 아닐까?
    미국의 국가를 부르지 않겠다고 말했고, 공공연한 인종차별과 여성비하 방송을 나무랐다.
    외국인이 미국에서 노래하면서 미국인의 눈에 났던 사건들이 연속으로 일어났다.
    밥 딜런 트리뷰트에 참가했을 땐 이미 미국인들은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콘서트에 온 사람들은....
    밥 딜런의 진짜 팬이 맞는가 싶었다. 그가 무엇을 노랫말로 썼고, 무엇을 노래하고 싶었는지 과연 알고 있는 사람들이 공연에 왔을까?
    만약 밥 딜런의 노래와 그 안에 담긴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시네이드 오코너는 이 노래를 멋지게 불렀을거다.

    멋있다.

    직업에 왜 귀천이 없겠는가.

    왜 이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건 동의하기 어렵다.
    역사에서 철저하게 귀천으로 구분되는 것이 직업 아니던가.
    이런 말 퍼뜨려서 어려운일 하는 노동자 등골을 빼먹겠다는 수작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2013년 1월 27일 일요일

    미니멀한 디자인의 캘린더 앱 grid

    아이콘이 하도 후져서 무시했었으나,
    캘린더 앱 중에서 가장 미니멀 하고 편리하다.
    아이폰 캘린더 앱의 스킨을 바꾼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고,
    캘린더에서 잘 보이지 않는 구독정보가 상단에 딱 보인다.
    또한 하루 일정이 직관적으로 보이는 것도 강점이다.
    https://itunes.apple.com/us/app/the-grid-calendar/id578246316?mt=8


    돌핀 브라우져

    Dolphin Browser는 모바일환경에서 단연 최고다.
    http://www.dolphin-browser.com/
    안드로이드를 중심에 놓고 개발된 모바일 브라우져라지만
    ios에서도 몇개의 기능-예를들어 SD카드로 문서를 다운로드 한다거나 하는것 정도다. 그런게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다-을 제외하곤 거의 같다.
    iPhone : https://itunes.apple.com/us/app/dolphin-browser/id452204407?mt=8
    iPad : https://itunes.apple.com/us/app/dolphin-browser-for-ipad/id460812023?mt=8
    andriod : http://goo.gl/0nYOP
    ios나 android를 가리지 않고 모든 디바이스에서 싱크된다.
    즉, 넥서스7과 아이폰5를 쓰고, 회사에서는 맥 집에서는 윈도우즈를 사용한다해도 모든 것이 다 동기화 된다고 보면 된다.

    에버노트 사용자가 모바일 환경에서 웹서핑중 크리핑을 원한다면 돌핀브라우저는 정말 유용하게 사용된다.
    Evernote clipping을 그 동안 이메일로 썼었는데 탭 한번으로 해결되었다.
    Facebook, Twit은 기본적이고 box.net사용자라면 환상적인 궁합이다.
    데스트탑이나 랩탑에서 크롬을 사용한다면
    https://chrome.google.com/webstore/detail/dolphin-connect/pajecklcmiegagoelbbjldmfcbcpdpll?utm_source=plus
    위 주소 익스텐션을 사용하면 거의 완벽하게 싱크된다.
    물론 파이어폭스 익스텐션도 있다.
    사파리는 없다.
    IE에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아래 동영상을 보면 ios용 사용성을 보여주는것인데
    진짜 저렇게 된다.
    제스쳐 기능이 오싹할 정도로 잘 구동하다. 사용자평가를 보니까 갤럭시따위의 이름을 가진 폰의 경우 제스쳐 오류가 많다는 지적들이 보인다.

    2013년 1월 25일 금요일

    우락부락 캠프

    아트캠프 우락부락. 

    시즌1. 상상마을 창작놀이터
    시즌2. 지구에 남기로 결정하다
    시즌3. 열두개의 아틀리에
    시즌4. 비밀의 방
    시즌5. 숲풍
    시즌 6. 우리 옆집엔 공작새가 살아.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오랜만에 어린이캠프를 기획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반이고, 새로운 경험이 또 한 켜 쌓이겠다는 생각에 즐거움이 반이었다. 
    시즌6까지 마치고 나니 부족하고 모자랐던 기억은 사라지고 즐겁고 벅찬 기억만 남았다. 
    그냥 잊고 싶었을게다.

    픽사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우락부락과 오버랩 된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은 아티스트우선이다.
    최종적인 내용을 생산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배려해야 한다는 것.
    캠프는 그랬다. 그래서 간혹 과분하여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아티스트도 있었다.

    기획과정에서 예술/어린이가 키워드였지만 그 매개가 되는 아티스트를 찾아내면서, 결과적으로는 내가 가장 많은 학습과 실험의 기회가 되었다는 건 참 재밌는 일이다. 교육과정에서 피교육자보다 교육자가 더 많은 지식을 얻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였지만 말이다.

    괜히 수상소감인양...
    사람들 이름을 생각해 봤다. 떠오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밤늦게 찾아와 다음달에 캠프해야 한다며 졸라대던 김태연.
    팀워크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 김자현.
    담당자라며 쑥스럽게 인사하던 이정훈.
    전 시즌 모든 기획에서 가장 깊은 영감을 준 나의 아이돌 박찬응.
    무리한 부탁에도 선뜻 오케이해준 고무신.
    한국에 돌아왔다며 우락부락 생각이 났다고 연락해준 양민호.
    실제 대부분의 일을 군말없이 떠맡아준 친구 한바다.
    애매할 때 가장 많이 도움을 준 씰팬.
    가장 섭외하기 어려운 친구 공.
    내가 말좀 붙여보려고 캠프에 와달라고 졸랐던 강군.
    최근 가장 힘이 되는 친구 피터.
    대림동으로 이사올 친구 술래.
    어느날 불쑥 성장한 표.
    가장 순수한 어린이여서 초대한 노마.
    뭘 해도 믿음이 가는 이혜린.
    우락부락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응원해준 염짱.
    가깝지도 멀지도 않아서 부담없는 김결.
    가장 우락부락에 어울리는 아티스트 홍학순.
    우락부락의 대표적인 예가 된 김범기.
    영상보다 캠프를 재미있어하던 고투.
    캠프 뒷골목 담배친구 짱가.
    생각보다 교육자 자질이 넘치던 TKO.
    제가 할게요...라고 말해주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일우.
    제일 잘할거면서 가장 자신없어하던 세히.
    새로 바톤을 이어가는 제리와 지인.
    은근 힘을 실어주는 토시루.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 친구 걍산.
    우락부락이 가장 우락부락 답게 해준 찐빵.

    갑자기 떠오른 이름들이다.

    시즌6 -우리 옆집엔 공작새가 살아-는 아티스트의 삶을 공작새에 비유하고 옆집은 커뮤니티 아트의 시뮬레이션이었다. 
    어느날 보니 옆집만이 아니라 우리집에 살고 있는 공작새를 발견하게 될 기쁨이 있기를...




    2013년 1월 19일 토요일

    나무사이로

    나무사이로 by zoinno
    나무사이로, a photo by zoinno on Flickr.

    오랜만에 카페 나무사이로에 갔다.
    커피향도 맛도 좀 떨어지고,
    에스프레소에 물탄 커피는 1000원에 드립한 커피는 3000원에 리필해 준단다.
    헉...여기 안오는 사이 이렇게 후져졌구나.

    조마리와 강군.
    얘들 둘다 올해 한국을 뜬다.
    좋은 일이고 응원이야 열심히 하지만 마음은 허전하다.

    2013년 1월 1일 화요일

    2013년 눈오는 밤

    주차를 하자마자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이다.

    검은 눈.


    대림동_눈 from Zoinno on Vim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