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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집엔 공작새가 산다. |
. 우락부락으로 놀다.
우락부락은 "아티스트와 놀다"를 기초에 두고 기획한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의 실험적인 장이다. 문화예술교육에서 특정 장르를 뛰어넘자고 수년간 외치고 있지만, 현실에서 장르를 넘나드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크로스오버 경험을 풍부하게 가지지 못한 우리사회 예술교육시스템에서 아티스트가 크로스오버 교육을 실행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락부락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놓인다. 장르를 앞세워 다양한 예술교육을 소개하는 여행식 교육프로그램 버전을 생산하거나 장르를 숨겨놓아 문화적 텍스트 안에 예술을 은근히 내려 놓는 방식의 두가지 선택지가 생겼다. 우락부락은 후자를 택했다. 클래식작곡가가 서점에서 전래놀이를 찾고, 사진작가는 가면을 만들고 그림자극을 연출했다. 회화작업을 하던 아티스트는 숲에서 몸의 움직임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일러스트작가는 각국의 식재료를 소개하고 요리를 한다. 막상 캠프의 현장에서는 아티스트의 예술적 기질과 장르적 손길이 적용되며 자연스럽게 놀이로 전환된다. 우락부락의 여섯번째는 이전 다섯번 캠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한다.
. 여섯번째 우락부락은 커뮤니티.
시즌 6는 삶의 터전인 우리 동네의 이야기다. 지역은 어린이에게 크게 느껴지는 거리와 공간의 개념이다. 쉽게 쓰는 말로 마을이 있겠으나 그보다는 동네가 더 친숙하다. 동네는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를 말한다. 특히 우리동네는 걸어 다니며 감각할 수 있는 개념이다. 동네에는 친구가 있고, 함께 해야 재미있는 놀이가 있다. 다소 위험해 보이는 후미진 곳을 친구와 찾아가며 놀이는 시작된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모험의 공간이다. 현재 아이들에게 동네는, 놀이와 모험을 공유하는 곳이 되긴 어려워보인다. 어린이는 부모와 사회로 부터 멸균상태를 최대한 유지하며 필요이상으로 안전하게 자라고, 놀이터는 CCTV가 감시한다. 더구나 골목길에서 만난 수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에서 나오기라고 한다면 내가 사는 동네가 온통 불안요소 가득한 공포로 바뀐다. 동네에서 뛰어놀며 스스로 몸의 면역체계를 만들고, 다양한 경험으로 위험한 상황에 대처할 능력을 만들며 성장할 수 없다. 이번 캠프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연결된 동네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누구와 어떻게 놀까를 고민했다. 살아있는 동네의 모습을 구현하고 싶었던 거다. 시즌6가 우리동네의 어린이들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갑자기 붐처럼 불어온 커뮤니티 아트에 대한 환기다. 공공기금을 들여 지역으로 아티스트나 문화작업자가 파견되고 그 지역사회의 구성원이 참여하여 예술행위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지역민이 참여하여 그리고/노래하고/춤추고/만들고/촬영하고/공연한다. 이런 행위가 커뮤니티아트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가장 아쉬운건 공공기금이 더 이상 지원되지 않으면 예술행위자체가 순식간에 사라지곤 한다. 그리고 참여한 사람들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다른 공공기금을 찾아보는 것은 그나마 긍정적인 문화행위라지만, 아무일 없었다는 듯 기억속에서 사라지는 걸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동네에는 예술가가 살지 않아? 진짜 없을까?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고,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예술행위가 실제로 동네에 있다. 더구나 어린이는 매일 그리고/노래하고/춤추고/만들고/촬영하고/공연한다. 매일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티스트다. 우리 동네에는 수 많은 아티스트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 동네의 수 많은 아티스트를 찾아내고 그들과 놀이를 시작해보자는 말이다.
. 공작새
간혹 공작새를 보면 깜짝 놀란다. 상상의 동물이거나, 어느 판타지소설에서 봤을 법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는 공작새같은 존재다. 언제나 현재를 사는 이 사회에 섞여 있으면서도 아주 오래된 과거를 말하고 있거나, 먼 미래를 현재로 끌어다 놓기도 하며,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남들처럼 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없을 것 같으면서도 우리 가운데 있고, 예술세계가 활짝 펼쳐질 때면 많은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기도 하는 존재다.
. 미성숙한 어른에게 말하는 어린이의 목소리
어느 나라는 착한일을 하면 키가 커지고, 나쁜일을 하면 키가 작아집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여러분 모두 착한일을 하세요"라고 말하셨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착한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얘들아. 나 어제 착한일을 했더니 키가 2cm나 컸다~ 좋겠지 좋겠지? 무슨 일을 했냐구? 응. 길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리고 물에 빠진 고양이를 구했거든!"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모두 부러워하며 "와 좋겠다. 나도 어서 착한일을 해야 할텐데..."라며 좋은 생각을 많이 하기 시작했습니다. 착한일을 하려면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여름방학이 되자 아이들은 착한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키가 쑥쑥 자랐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모두 부쩍 커있었습니다. 교실에 들어선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어! 다들 키가 많이 자랐네요? 착한일을 많이 했나봐요." 선생님을 보고 아이들이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어. 선생님은 왜 키가 그대로죠?" 방학이 끝나자 이 교실에서는 선생님이 키가 제일 작았습니다. 이야기 끝~ |
이 이야기는 어린이가 만든 단편애니메이션의 대사를 옮긴 것이다. 처음에 이 작품을 보고 귀엽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미성숙하게만 바라보는 우리 사회에서 이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야할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어린이들이 모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른들의 세계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때로는 모사하고 모방하며 배우고, 때로는 거부하고 저항하며 자기 세계를 만들기도 한다. 어린이를 바른길로 안내하는 것이 캠프의 몫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고 있는 아티스트의 존재 자체가 캠프에서 드러나면 된다. 그 모든 여백은 놀랍게도 어린이가 알아서 채운다. 그 힘을 믿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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