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식은 논리가 있어야 한다. 한 사회 구성원이 그렇게 판단하고 제 위치에서 행위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00때문에 00해야 한다. 그것이 상식에 해당한다. 상식의 근저에 있는 논리라는 것은 어떻게 수립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방향으로 튀기 때문에 한번 위치를 잘못잡을 때 상식은 억지가 되고 논리는 이해관계에 따른다. 간발의 차이지만 내재한 포악함이란 잔인하기 짝이없다.
2.
어제 몇 명의 학교 교사들과 만났다. 학교 밖에서 교사를 만나면 교육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로 대접받는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개방적인 교육을 지향하는 열린교사 코스프레하는 것을 즐겨하기 때문에 100%를 믿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것이 내 방식이다. 문화예술교육 지원체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속한 지역사회의 사례를 말했다. (이 이야기를 전한 교사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1년간 운영후 평가를 통해 하위 20%학교에는 지원금을 삭감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는 삭감되는 것이 두려워서 열심히 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 삭감된 금액을 상위20%에게 준다는 것. 우리 사회에서 인센티브가 상식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상식의 논리가 교육수혜자를 향해있지 않다. 문화예술교육의 지원은 학생이 대상이다. 하위 20%가 되었다는 것은 수혜받을 양질의 교육권으로 부터 박탈을 의미한다. 즉, 교사가 잘못하거나 행정적 오류로 인한 가장 큰 손해를 입은 사람은 지원대상인 학생이다. 상식은 그 박탈된 부족분을 채워주는 쪽으로 가야한다. 당근을 던져주어 경쟁우위에 서고 어르고 달래서 "말 잘듣고 열심히 하면 보상을 줄게..."의 방식이란게 교육이란 말인가. 이렇게 보상체계에 중독된 학생들은 보상없이는 그 무엇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게 길러지고, 그 체계를 만드는 교사 역시 수당/승진/고과점수 없는 교육에는 관심을 갖기 힘들어진다. 참 웃기고 질린다. 결국 교사가 잘못해서 양질의 교육혜택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평가 후 그나마도 못한 적은 예산으로 전문가결합이 어려워 지는 이 몰상식과 비논리적 상황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는 사람은 왜 항상 나밖엔 없는가. 이런 회의에서 늘 혼자 논리싸움을 하며 외로와지는지 의문이 멈추질 않는다. 교육계(사실 따지고 보면 크게는 한국사회)에 상식은 대체 무엇인가.
3.
위와 거의 흡사한 에피소드다. 10년도 훨씬 넘었다. 복지관이 어느순간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기관평가 후 하위에 속한 복지관은 지원금을 삭감하거나 위탁단체를 바꿨다. 위탁이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나가야 한다. 주민을 내보낼 수 없다. 그런데 지원금 삭감이란게 무슨 소린가 말이다.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밀집한 지역에 복지관이 세워진다. 거기서 복지사들이 일을 잘못하여 복지서비스가 엉망이었다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사이에서도 결핍을 생산해 냈다는 말이다. 만약 평가가 낮다면 전폭적 지원이 가능해야 한다. 평가위원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만 떠들지 말고 교수직 때려치우고 당장 그 복지관으로 들어가 소외속의 소외를 겪는 사람들의 복지지원체계를 복원시켜야 하는거 아니던가. 10여년전부터 이렇게 떠들고 다녔지만 현재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렇게 실행되면서 그건 이제 복지관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식이 되어 버렸다.
4.
10대를 위한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TFT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다. 일을 했다기 보다는 기획위원? 뭐 그 따위 이름으로 들어가서 감놔라 배놔라...하는 것. 개발해야 하는 프로그램을 몇 주에 걸쳐서 브레인스토밍으로 결정하고 최종 키워드를 뽑는 날이었다. 대부분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 언어들을 구체화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추상적인 평화, 인권, 평등...이런 단어들은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지라 실컷 개발하고 나서 실효성이 없다. 아무튼 마지막날 최종 결정을 내리는데 다수결로 하기로 했다. 다수결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민주시민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단어에 스티커를 붙인 후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키워드로 결정하려는 상황에 내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나의 상식은 다음과 같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을 개발하자면서요. 개발. 여기 전문가가 모인 이유는 쉽게 다룰 수 있는 주제가 아니고 접근이 어렵거나 구현이 애매한 것을 쉽게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뽑은 주제어에서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랜 시간 고민한 단어들입니다. 즉, 모두가 가치있어 보인다는 뜻입니다. 다루면 안되거나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는 전제로 살펴보면 가장 표가 적게 나온 키워드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야 상식적이죠. 돈들여서 늘 하던것을 또 만들면서 개발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요. 저는 이 투표를 하면서 가장 소수표가 나온 것이 개발대상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결과를 제가 받아들여야 하나요. 좀 어이없습니다. 만약 다수표로 개발한다면 저는 이 팀에서 빠지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난 그 개발 프로그램에서 빠져 나왔다. 이런 발언을 했을 때 정적이 흐르면서 논리적 저항을 할 순 없었을거다. 그런데 그들은 상식이었기 때문에 바뀌지 않았다.
5.
적당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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