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3일 토요일

이상한 아이

1.
어려서 살던 골목길에 어울리지 않는 옷가게가 있었다.
이름이 [봄 의상실]이었는데 난 그걸 [봄의 상실]이라고 받아들였다.
대여섯살에 상실이란 단어를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좀 부담스럽고 어이없긴 하다.
하지만 의상이란 명사는 몰랐으나 상실이란 개념은 무엇인지 알았다.
그래서 [봄의 상실]이 옷가게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2.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 다들 가지고 다니는 신발주머니가 싫었다.
곤색의 태권브이 그림과 빨간색의 캔디 그림을 전교생이 들고 다녔다.
떼를 쓰긴 싫었다. 남는 천으로 신발 담을 자루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졸랐다.
어머니는 의아해 하시면서도 꽤 튼튼한 자루를 만들어주셨다.
난 그런게 공산품 보다 좋았다.

3.
중학생인 나를 생각해 보면 늘 혼자였다. 누가 따돌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옆자리에 붙어 앉았던 뚱보가 한명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 아이에게 난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번은 펜글씨 시간에 내가 잉크를 엎었다. 뚱보의 공책에 번져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때 뚱보가 말했다.
"이..씨...너 나한테 이겨?"
난 잠깐 그 뚱보의 상태를 구경하며 한심함을 전할 말을 생각했다.
"아니. 져. 그런데?"
당시 남자 중학생 아이들은 힘으로 싸워 무언가가 결정되었다는 걸 그때 뚱보의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

4.
고등학교를 졸업할 그 즈음에 버스의 여성 승무원 의무조항이 사라졌다.
차장누나의 시대가 끝난거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수치스러운 얼굴을 본것은 버스였다.
84년부터 순차적으로 승무원을 줄여나갔다. 다음 정류소안내는 방송이 대신하고, 요금은 버스기사 옆의 통에 직접 지불했다.
할일이 사라진 차장누나들이 멍하게 창밖을 내다 보며 있거나,
민망해져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기 어색해 하다 눈물을 흘리는 누나들도 많았다.
그 후로 버스는 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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