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이 비아냥거림을 포함하니 귀에 거슬리지만, 보통사람으로 산다는건 속물일 수 밖엔 없다. 보통사람이 아닌 지위를 얻었거나 명예를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마땅치 않은 행동을 할때 속물이었다라는 표현을 쓸 때 적합한거다. 보통사람이면서 보통사람 아닌 척 하고 살면 그게 속물이다.
2014년 12월 24일 수요일
2014년 12월 23일 화요일
7월 16일
2006년 7월 16일이니 8년전이다. 매년 7월 16일은 휴일이다. 매년 그날 하루는 일하지 않고 놀기로 했다. 친구들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휴가내고 함께 갔던 강화도의 여름이 기억난다. 비가 무지막지하게 내려서 강화도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만약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래 기억날 만큼 즐거운 여행은 아니었을거라고 생각한다.
자기만을 위한 휴일은 나라가 지정해 줄 수 없다. 똑같이 정해놓고 쉬는 국경일을 기뻐하는건 나에겐 별 의미가 없다. 사실 공휴일에 대한 감각이 없이 살았던건 93년이후 거의 없었다. 남들이 일할 때 쉬어야 쉬는 참맛이 났고, 남들이 놀때 일해야 한가롭게 내 일을 잘 처리했다. 남다르게 살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냥 피곤해서다. 혼자 또는 몇 명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야 쉼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나 할까. 공휴일엔 어딜가든 사람이 많아 줄서고 기다리다 시간을 다 써버리는 나라에서 살려면 어쩔 수 없다. 나는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인건 분명하다.
문득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때가 간혹 있는데, 이런 여행에 함께 해주는 것...편식에 따라와주는 것...대놓고 싫은 소리해도 받아들여주는 것. 이 세가지 정도는 평생 고마와하며 살게 될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만약 나에게도 나처럼 까다롭게 구는 사람이 있으면 피곤해서 단번에 끊어버렸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2014년 12월 22일 월요일
2014년.
2014년은 그냥 없었던 해 같다. 뭔가 건질게 없었다.
하나 건진건 "건질게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것 정도.
살다보면 이런 실속없는 해도 있구만.
돈이야 있다가도 없는 것이니 이건 돈문제는 아닌 것 같다.
하나 건진건 "건질게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것 정도.
살다보면 이런 실속없는 해도 있구만.
돈이야 있다가도 없는 것이니 이건 돈문제는 아닌 것 같다.
2014년 11월 16일 일요일
창녀에게 꽃을 사온 남자
벌써 20년이 된 기억. 94년인가 95년인가. 매매춘여성을 연구한다며 당사자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연구팀에 들어갔었다. 전역하고 얼마 안된 시점이므로 94년이 맞을 것 같다. 인터뷰는 남자가 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매매춘현장을 찾아가야 하는데 일종의 보디가드 차원에서 남자가 필요했었다. 그 중 두 세명은 상관없으니 같이 인터뷰하자고 했다. 그때 만난 어떤 30대 창녀가 기억난다. 당시에도 창녀라는 표현은 금기시되는 단어였지만 그녀는 자연스럽게 스스로 창녀라고 말했다.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하나 밝히면서 더듬 더듬 손님에 대해 말했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떤 손님은 창녀인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고 했다. 대체로 한번의 섹스상대로 대하는 다수의 손님 들 중에는 온화하고 젠틀한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간혹 진짜 사랑하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단골이 되어서는 사랑을 고백한단다. 하지만 얼마 안가서 시들해 지곤 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오랜 시간동안 그녀의 곁을 맴돌았단다. 어느날 꽃다발을 안고 찾아왔는데 예약된 손님이 밀려서 복도에서 그가 기다렸다고. 섹스소리를 들으면서 기다리고 있을 그 사람을 생각하니 미안함이 밀려왔다고 했다. 한시간 넘게 서서 기다리던 남자가 들어왔는데 꽃다발을 주며 청혼을 했단다.
당시 난 그럴 순 있겠다 싶었지만, 그 남자가 좀 이상한 사람이려니 하고 넘어갔다. 최근들어 다시 생각해 보면 그 남자가 많은 부분 이해가 된다. 성매매여성이 아니더라도 돈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정을 파는 사람이 한 두명이겠는가. 지불과 피지불의 관계속에서 마음을 파는 것 보다야 몸이 훨씬 더 솔직한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바질 페스토
바질 페스토
아주 간단하다. 바질잎을 따서 잘 씻고, 마늘과 잣을 적당량 섞은 후 올리브유를 넣고 그라인더로 갈면 된다.
적당량이라는 것이 얼만큼인지는 해보면 안다. 질게 해도 되고, 되게 해도 되기 때문이다.
고소한 맛이 좋으면 잣을 많이 넣는다.
톡쏘는 매운 느낌과 향을 즐긴다면 마늘을 많이...
빵에 발라서 구워먹으려면 올리브를 조금 더 넣으면 된다.
바질 페스토를 만들어 두면 스파게티나 감자와 함께 볶아 먹어도 맛있다.
바질 페스토 만드는 것이 워낙 쉬워서 집에서 키운 바질을 갈아 만들었다.
굳이 레시피가 필요없기 때문에 생략했고,
선물로 친구들에게 나눠 주면서 바질페스토를 이용한 스파게티를 써서 주었다.
2014년 11월 11일 화요일
일단 페이스북을 비활성화했다.
페이스북을 너무 자주 들여다 본다. "너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부터 이미 과한거다. 페이스북은 내가 쓴글을 다시 볼 수도 없을 만큼 엄청난 속도와 과한 정보의 양으로 인한 공해처럼 느껴졌다. 신문 읽듯 읽어내려갔던 페이스북에는 지친일상을 포장하려는 순진한 유저들과 적당히 스스로 다독이면서 잘난체하는 빈약한 자아상만 비춰 보인다. 심심해서 했던 놀이였는데 그 놀이가 그닥 즐겁지 않다면 멈추면 되는 법이다.
2014년 11월 8일 토요일
Lost stars
그는 이 노래가 좋아서 반복해서 계속 듣는다고 했다.
영화는 어땠냐고 묻는 것으로 보아 영화를 보진 못한 것 같다.
난 별로라고 답했다.
그것도 아주 별로 였다고 말했다.
노래만 좋아하라고 말했다.
반복해서 들어봐도 이 곡이 왜 좋은지는 모르겠다.
익숙해지려고 해도 몸이 거부하는 것이 어디 한 둘인가.
2014년 10월 11일 토요일
아침
요즘은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 보통 일곱시에서 여덟시 사이. 해가 뜨고 지구의 생명체들이 활동을 시작했을 때다. 그러고 보면 일찍 일어난 건 아니다. 텐트를 걷고 나와 기지개를 켠 후 오늘 하루도 상쾌하길 기원한다. 일어나면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아이폰을 들여다 본다. 좋은 버릇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눈도 시리다. 침대에서 베갯잇을 벗겨낸 후 새걸로 교체한다. 일어나서는 2층에서 냉장고에 들어있는 물을 한잔 마신다. 그리고 1층으로 가서 커피머신을 예열하고는 청소기를 켜고 오늘은 어딜 청소시킬까 찾는다. 청소기를 동작시키고나면 커피가 준비된다. 냉장고를 괜히 열어 씹을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면 입에 넣고 커피를 마시면서 창문을 열어 환기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피우는 담배 한 모금이 좋다. 달콤한 라떼의 끝맛에 담배는 잘 어울린다. (오후에 즐겨마시는 룽고와는 딴판이다. 쓴맛을 내는 룽고를 마실 때는 담배가 어울리지 않는다) 다시 2층에 올라가서는 오늘의 일정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를 닦고 세수 또는 샤워. 아침에 샤워는 물로 충분하다. 비누거품을 내거나 하지 않는다. 겨울이 오기전까진 샤워후에 물기는 저절로 마를 때까지 기다린다. 머리만 수건으로 물기를 걷어내고는 물이 마를때의 그 시원한 기운을 즐긴다. 가을이 되자 몸이 건조해져서 며칠 전 부터는 기름기 있는 로션 같은걸 바른다. 써놓으니 긴 시간이지만, 실제론 30분 정도의 시간이다. 그냥 후다닥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
2014년 10월 3일 금요일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기원전의 구전하는 이야기는 소설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키케로의 이런 이야기들은 어떤 지혜로운 사람들의 귀와 입으로 전해저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흔한 가르침 같은 문장으로 구성되고, 마치 그것이 옛 사람들의 말인양 "그랬다네" "따라서 그러한 것들이 아니네"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식으로 번역되었다는 건 읽을 때 무한 피로감을 가져다 주었다.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번역이랄까. 밑의 인용은 내가 서술어를 교체해서 나라도 읽기 편하게 쓴거다. 선조의 지혜...? 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한번은 생각해 볼만하다고나 할까.
노년에 관하여
. 노년에게는 감각적 쾌락이 없다. 세월이 정말로 젊은 시절의 가장 위험한 약점에서 우리를 해방해 준다면, 그것은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중략)
.욕망이 지배하는 곳에서 자제력은 설 자리가 없고, 쾌락의 영역에서는 미덕이 졸립할 수 없다. 이 점을 더 명확하게 이해하가 위해 어떤 사람이 가능한 한 가장 강한 육체적 괘락을 즐기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의 주장은 쾌락에 빠져 있는 동안은 이성과 사고를 요구하는 일은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쾌락만큼 혐오스러운 것은 그 무엇도 없다. 쾌락이 강하고 오래 지속되면 정신의 빛을 완전히 꺼버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성과 지혜로도 쾌락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가 해서는 안되는 것에 욕망을 품지 않게 해주는 노년에게야말로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쾌락은 심사숙고를 방해하고, 이성에 적대적이고, 말하자면 마음의 눈을 멀게 하고, 미덕과는 함께 하지 않는다.
우정에 관하여
.우정을 나눌 만한 새 친구들이 옛 친구들보다 때로는 더 선호되어야 하는 것인가. 마치 우리가 늙은 말보다 젊은 말을 더 선호하듯 말이다. 사람이라면 물어서는 안될 질문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쉬이 물릴 수 있는 것이 많지만 우정은 거기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오래될 수록 더 좋아지는 와인처럼 우정도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유쾌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면 여러 말의 소금을 함께 먹어보아야 한다는 속담에 일리가 있는 셈이다.
2014년 8월 24일 일요일
2014년 8월 19일 화요일
ㅇㄹㅂㄹ 키노트에 사용한...
시즌1 ㅇㄹㅂㄹ
http://www.youtube.com/watch?v=eYKY2lpxMg8
http://www.youtube.com/watch?v=C_CDLBTJD4M
시즌2 지구에 남기로 결정하다
https://vimeo.com/21672026
시즌3 12개의 아틀리에
https://vimeo.com/25239728
시즌4 비밀의 방
https://vimeo.com/4064836
시즌5 숲풍
http://www.youtube.com/watch?v=pHa4pvspCqc
시즌6 우리 옆집엔 공작새가 살아
http://www.youtube.com/watch?v=VAOAjEi0A0k
시즌7 노란잠수함
http://www.youtube.com/watch?v=vefJAtG-ZKI
시즌8 두 번째 호기심
http://www.youtube.com/watch?v=Uwj1wh5k5PY
http://www.youtube.com/watch?v=eYKY2lpxMg8
http://www.youtube.com/watch?v=C_CDLBTJD4M
시즌2 지구에 남기로 결정하다
https://vimeo.com/21672026
시즌3 12개의 아틀리에
https://vimeo.com/25239728
시즌4 비밀의 방
https://vimeo.com/4064836
시즌5 숲풍
http://www.youtube.com/watch?v=pHa4pvspCqc
시즌6 우리 옆집엔 공작새가 살아
http://www.youtube.com/watch?v=VAOAjEi0A0k
시즌7 노란잠수함
http://www.youtube.com/watch?v=vefJAtG-ZKI
시즌8 두 번째 호기심
http://www.youtube.com/watch?v=Uwj1wh5k5PY
2014년 7월 15일 화요일
사일런스
존 케이지의 워터 워크 연주를 보면서, 작곡가이자 퍼포머가 어떤 "청각상징의 상황"을 만들고 있는지 보며 문화적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누군가는 현대음악을 접하면서 나도 할 수 있는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한다. 이것은 마치 모든 예술에 던지는 비예술적 지향으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에게서 나오는 뻔한 질문이다. 그 대답은 분명해진다. 그럼 너도 예술을 해. 그럼 너도 작곡을 해. 그럼 너도...연주를 하라. 이것이 답이다. 그것을 하는 사람이 예술가고, 그 행위가 예술이기 때문에 그렇다. 존 케이지의 사일런스가 한국에 드디어 출간되었다. 책 자체가 놀라운 행위이기 때문에 꼼꼼히 읽는 다는 것 자체가 그에 대한 숭배가 될 것 같아 조심스럽다. 행위와 비행위, 의도와 비의도를 구분하지 않거나 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말이다. 그걸 어떻게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만약, 오늘 점심 메뉴와 동일한 것을 저녁에 또 먹겠냐고 묻는다면 한번쯤 고민해 본다. 하지만 며칠 지난 후 지난 번 그 메뉴가 좋았다면 다시 선택하게 된다. 이건 마치 선택적으로 듣는 음악과 같다. 모짜르트냐 말러냐를 선택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비정형화되었지만 선형성에 기반을 둔 현대음악을 듣는 다는 것은 오늘 점심에 먹은 짜장면을 저녁과 야식으로 선택한다고 해도 배를 채우는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갖거나, 기억을 깨끗하게 비워내는 가상의 상황속에서 선택한 짜장면을 먹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이라는 말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위치가 정해지면 운동량의 불확정성이 커진다. 사일런스를 읽으면서 계속 머리속을 맴돈다. 인간이 지구에 살고 있으며, 청력이 살아 있는 한 단 한순간도 침묵상태를 무음의 상태로 만들 순 없다. 그렇게 노이즈를 개념화한다면, 노이즈는 듣고 싶지 않은데 존재하는 썸띵으로 밖엔 설명할 수 없겠다. 하지만 자연상태에서 선택적 청취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이 연극적 요소로써 음악이 된다는 건 놀라운거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이라는 말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위치가 정해지면 운동량의 불확정성이 커진다. 사일런스를 읽으면서 계속 머리속을 맴돈다. 인간이 지구에 살고 있으며, 청력이 살아 있는 한 단 한순간도 침묵상태를 무음의 상태로 만들 순 없다. 그렇게 노이즈를 개념화한다면, 노이즈는 듣고 싶지 않은데 존재하는 썸띵으로 밖엔 설명할 수 없겠다. 하지만 자연상태에서 선택적 청취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이 연극적 요소로써 음악이 된다는 건 놀라운거다.
2014년 6월 30일 월요일
후쿠오카
letter from Fukuoka from Zoinno on Vimeo.
아마 아이폰3Gs였던 것 같다. 그냥 가방하나 메고 훌쩍 다녀온 후쿠오카...
그 여름 시원한 바람이 생각난다.
2014년 6월 28일 토요일
바질페스토
물을 끓이는 동안 마당에서 바질을 땄다.
바질 잎을 따서 들어오니 물이 끓고 있다.
스파게티 면을 물어 넣고 타이머 7분.
나에겐 7분의 시간이 있다.
바질을 물에 씼고, 야채탈수기로 물기를 뺀 후
마늘, 잣, 치즈가루, 바질을 넣고 왱 하고 갈았다.
7분이 지났다.
팬을 달구는 동안 토마토를 갈았다.
약한 불 위에 다 삶아진 면을 넣고, 바질 페스토를 한 스푼 넣었다.
살살 볶으면서 면 삶은 물을 몇 숟가락 얹고 다시 밭에서 루꼴라를 땄다.
부엌으로 돌아와 스파게티에 불을 끄고 루꼴라를 씻어서 물을 털어낸 후 스파게티위에 올려놓았다.
하...맛있다.
남은 바질페스토는 냉장고에 넣었다.
별
별자리를 읽으면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
모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연쇄적이다.
모든 것은 반복된다. 하지만 같은 발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움직임은 패턴이 있다. 즉, 하나의 패턴을 인식하면 반복적으로 연결된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예측이 아니라 인식이다.
별자리 워크숍을 마치고 나오는데 사마리아가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어긋나 있어요...명심하세요."
멋있는 말 아닌가.
이 모든 것이 살짝 빗겨가고,
별이 영향을 주듯 내가 별에 영향을 주면서 운명이 개척되어 간다는 것 말이다.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듯,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이 애매한 해석.
진짜 좋다.
모두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연쇄적이다.
모든 것은 반복된다. 하지만 같은 발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모든 움직임은 패턴이 있다. 즉, 하나의 패턴을 인식하면 반복적으로 연결된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예측이 아니라 인식이다.
별자리 워크숍을 마치고 나오는데 사마리아가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어긋나 있어요...명심하세요."
멋있는 말 아닌가.
이 모든 것이 살짝 빗겨가고,
별이 영향을 주듯 내가 별에 영향을 주면서 운명이 개척되어 간다는 것 말이다.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듯,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이 애매한 해석.
진짜 좋다.
크리넥스
크리넥스를 보면 볼 수록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다. 전쟁으로 인해 목화생산량이 줄어들자 의료용으로 시작했다고 말한다. 한 장씩 쓸 수 있는 손수건으로 상류층이 사용하기 시작하다 대중화되었는데 그 회사의 설립자 이름이 존 킴벌리와 ??(기억안나는데 검색은 귀찮음) 클라크다. 그래서 킴벌리 클라크라는 회사 이름이 되었다. 한명이 더 있었는데 회사 이름에서 빠졌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이렇게 된 이상 되돌 릴 순 없는 상황인듯 하다. 모든 것을 물로 씻어내거나 빨아서 써야 한다면 지금은 막막할 뿐이다. 물이며 세제며 오염을 정화하는 비용과 맞먹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한다. 그 비용이 맞먹으려면 당연히 쓸데 없이 사용하는 휴지는 줄여야 마땅하다. 만약 크리넥스가 없었다면 참 여러모로 불편함이 많을 듯 하다. 여자들이야 화장을 지우는데 쓴다고들 하는데 그건 화장을 안해봐서 모르겠고, 그런 휴지는 진짜 환경오염이라고 생각한다. 피부를 보호하기 보다는 피부를 숨막히게 만들어 놓고 노화가 어쩌구 말하는 것 같다. 반면 상처나기 쉬운 부위의 오염물을 닦거나 섹스 후에 크리넥스가 없다고 생각하면 번잡스러움과 민망한 상황이 상상되곤 한다.
2014년 6월 26일 목요일
유니버설, 크리넥스, 교환
1.
소방호스를 보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건 매뉴얼이었다. 그들만의 용어로 써 갈겨놓은 매뉴얼 말이다. 누구든 급할 때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설명하는 단어에서 막힌다. 관창? 노즐? 이런 말을 해독하면서 비상시에 어떤 대처를 할 수 있을까.
2.
크리넥스를 보면 볼 수록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다. 전쟁으로 인해 목화생산량이 줄어들자 의료용으로 시작했다고 말한다. 한 장씩 쓸 수 있는 손수건으로 상류층이 사용하기 시작하다 대중화되었는데 그 회사의 설립자 이름이 존 킴벌리와 ??(기억안나는데 검색은 귀찮음) 클라크다. 그래서 킴벌리 클라크라는 회사 이름이 되었다. 한명이 더 있었는데 회사 이름에서 빠졌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이렇게 된 이상 되돌 릴 순 없는 상황인듯 하다. 모든 것을 물로 씻어내거나 빨아서 써야 한다면 지금은 막막할 뿐이다. 물이며 세제며 오염을 정화하는 비용과 맞먹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한다. 그 비용이 맞먹으려면 당연히 쓸데 없이 사용하는 휴지는 줄여야 마땅하다. 만약 크리넥스가 없었다면 참 여러모로 불편함이 많을 듯 하다. 여자들이야 화장을 지우는데 쓴다고들 하는데 그건 화장을 안해봐서 모르겠고, 그런 휴지는 진짜 환경오염이라고 생각한다. 피부를 보호하기 보다는 피부를 숨막히게 만들어 놓고 노화가 어쩌구 말하는 것 같다. 반면 상처나기 쉬운 부위의 오염물을 닦거나 섹스 후에 크리넥스가 없다고 생각하면 번잡스러움과 민망한 상황이 상상되곤 한다.
3.
교환은 단지 물리량은 아니라고 믿었는데, 살면 살 수록 물리량으로 측정가능하더라. 뭔가 쓸 말이 많았는데 일해야 해서 일단은 요기까징.
4.
잠깐 쉬던 리조이노 블로그가 오랜만에 생각나서 끄적인것임.
소방호스를 보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건 매뉴얼이었다. 그들만의 용어로 써 갈겨놓은 매뉴얼 말이다. 누구든 급할 때 쓸 수 있어야 하는데 설명하는 단어에서 막힌다. 관창? 노즐? 이런 말을 해독하면서 비상시에 어떤 대처를 할 수 있을까.
2.
크리넥스를 보면 볼 수록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다. 전쟁으로 인해 목화생산량이 줄어들자 의료용으로 시작했다고 말한다. 한 장씩 쓸 수 있는 손수건으로 상류층이 사용하기 시작하다 대중화되었는데 그 회사의 설립자 이름이 존 킴벌리와 ??(기억안나는데 검색은 귀찮음) 클라크다. 그래서 킴벌리 클라크라는 회사 이름이 되었다. 한명이 더 있었는데 회사 이름에서 빠졌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이렇게 된 이상 되돌 릴 순 없는 상황인듯 하다. 모든 것을 물로 씻어내거나 빨아서 써야 한다면 지금은 막막할 뿐이다. 물이며 세제며 오염을 정화하는 비용과 맞먹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곤 한다. 그 비용이 맞먹으려면 당연히 쓸데 없이 사용하는 휴지는 줄여야 마땅하다. 만약 크리넥스가 없었다면 참 여러모로 불편함이 많을 듯 하다. 여자들이야 화장을 지우는데 쓴다고들 하는데 그건 화장을 안해봐서 모르겠고, 그런 휴지는 진짜 환경오염이라고 생각한다. 피부를 보호하기 보다는 피부를 숨막히게 만들어 놓고 노화가 어쩌구 말하는 것 같다. 반면 상처나기 쉬운 부위의 오염물을 닦거나 섹스 후에 크리넥스가 없다고 생각하면 번잡스러움과 민망한 상황이 상상되곤 한다.
3.
교환은 단지 물리량은 아니라고 믿었는데, 살면 살 수록 물리량으로 측정가능하더라. 뭔가 쓸 말이 많았는데 일해야 해서 일단은 요기까징.
4.
잠깐 쉬던 리조이노 블로그가 오랜만에 생각나서 끄적인것임.
코스모스
마당에 힘없이 이리 저리 휘고 있는 코스모스를 정리했다. 개체수를 스스로 조절한다지만 흙 물 바람 햇빛이 충분한지라 무턱대고 꽃을 피워대고 있더라.
이런 여유가 좋다.
들판(지금은 마당이지만...)에서 꽃 꺾어 꽃병에 꽂는.
화혜농장에서 시한부로 자라는 꽃 말고...말이지.
2014년 6월 24일 화요일
하늘을 보다
친구들과 하루에 한장씩 하늘사진을 모으고 있다.
어제로 한달이 되었는데 꽤 모였다.
각자의 위치에서 정해진 시간에 reminder를 설정해 놓고, 알람이 오면 그 곳에서 바로 위에 보이는 하늘을 직앙각으로 찍는다.
실내에 있을 때는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일하고 있을 때는 시간을 어기기도 해서 밤 하늘이 찍히거나,
간혹 블로그앱의 버그로 인해 사진이 업로드가 안된 상태로 있다가 나중에 찍기도 한다.
아무튼 하루에 한장씩.
생각보다 하늘만 보이는 때가 별로 없다.
서울은 특히 그렇다. 어디서든 전깃줄이나 건물이 걸린다.
반면 샌디에고의 친구는 늘 맑은 사진이 올라온다.
하루에 딱 한장씩 아이폰 카메라롤에 남지 않게 앱을 열어서 블로그에서만 친구들과 공유중이다. 하늘을 이렇게 열심히 본것도 참 오랜만이다.
매형
이종사촌 매형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주인데 장례식에 오라는 연락이 나에게 까지 닿지 않았다. 그냥 어머니만 다녀오신 모양이다. 왜 연락을 안했을까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무척 싫어하는 분이셔서 그랬을것이다. 알콣릭. 그냥 그 말 그대로 술로 평생을 살았고 거의 매일 행패를 일삼았다. 누나를 때리는 것은 말할것도 없었고, 자신을 우습게 생각한다면서 펜치로 자기 이를 뽑기도 했다. 얼마나 공포스런 상황이었을까. 그런데 누나는 결혼생활을 지속시켰다. 한번은 누나가 운영하는 방앗간에서 목을 메고 죽기 직전인 것을 누나가 발견했다. 대롱대롱 매달린 줄을 칼로 긁어서 끊었더니 다시 살았다. 병원비가 들기는 했지만 그 질긴 목숨 쉬이 끊기지 않았다. 가족에게 가해지는 자해의 공포. 간혹 멀쩡한 정신에 만나면 가족들 사이에서는 늘 미안한 표정으로 구석에 앉아만 있었다. 병원에 갈 생각은 아예 안한것은 지키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매형만의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자살을 수차례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매번 가족들이 구해냈다. 지난 주 여전히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서 엎드려 누웠는데 심장발작으로 돌아가셨다. 장례식에서 누나는 그렇게 많이 울더란다. 누나는 매형을 진심으로 사랑했을것이다. 어른들끼리 결정한 결혼을 따를 수 밖에 없었던 누나는 그렇게 맺어진 인연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서 그를 사랑했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그를 섹시하게 받아들였고, 때리고 자해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그와 함께 사는 것을 좋아했다. 받아들이기 힘든 타인의 삶에 대해 나는 너무 함부로 말하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스트레스가 전이될까 두려워 그저 외면하는 것에 그치곤 한다. 매형의 죽음은 또 한명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고나 할까. 누나가 잘 극복해 냈으면 좋겠지만, 매형에게 중독된 누나의 삶은 그리 평탄친 못할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진 않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 수 있었다는 건 행복이지 않을까.
2014년 6월 7일 토요일
2014년 6월 3일 화요일
나도 그래
어려서 부터 그랬다. 고민이 있으면 나에게 오는 사람이 많았다. 해답보다는 나의 시니컬하고 냉정한 반응 + 몇 마디 던지지 않아도 공감하는(척하는) 능력 때문 같다. 단지 화술인가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으나 그건 아닌 듯 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기 시작하자 나는 상담실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 진로는 그렇게 결정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피곤한 직업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맥락없이 인생의 사건과 사고를 털어놓기 시작하는건 기분 좋은 턱이 있는가. 직업을 바꾸겠다고 결심했던 이유다. 상담실에서 나의 모습은 행복한 기운 보다는 다른 사람의 비밀을 많이 알게 된다는 이유로 인간은 뻔하게 산다는 걸 알게 되어 더욱 냉랭한 기운을 뿜었다. 언젠가 가까운 사람이 말했다. 탕 같은 친구가 있다는 건 다행이다. 헐. 무슨 소리냐. 나도 "탕"이 필요하단 말이다.
2014년 5월 31일 토요일
H
가을바람 피하는 이유를 설명하던 H는
말을 멈추고 소주 한잔을 꼴깍 삼켰다.
딱 한잔의 취기가 올라오는 그 시간만 기다렸어도
H가 어떤 사람이란걸 알게 되었을게다.
친구는 천정에 붙어있는 닥트 얘기를 꺼냈다.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위한 계획부터
발기에 좋다는 어떤 짐승의 고기를 먹었는지까지.
말을 멈추고 소주 한잔을 꼴깍 삼켰다.
딱 한잔의 취기가 올라오는 그 시간만 기다렸어도
H가 어떤 사람이란걸 알게 되었을게다.
친구는 천정에 붙어있는 닥트 얘기를 꺼냈다.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위한 계획부터
발기에 좋다는 어떤 짐승의 고기를 먹었는지까지.
2014년 5월 18일 일요일
이율배반
내가 만나는 수 많은-정말 수 많은- 학부모들은 절대 다수가 말한다.
1. 공부(내 생각엔 공부가 아니라 성적이 오르는 것을 말하는 듯)를 강요하지 않아요. 자기 좋은 걸 시키려고 노력해요.
2. 사교육비 감당하기 힘들어요.
3. 아이의 진로와 적성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4. 학교교육은 정말 문제가 많아요. (무슨 문제요...? 라고 물으면 아주 개인적인 불만에 그치는 것이 대다수다)
5. (고등학생인)우리 아이 자율학습시키기 싫어요.
6. 외국어(역시 외국어라기 보다는 영어를 지칭)를 위해서 어학연수 보내는 건 남들이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보내요.
7. 학교 선생님들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작년에(혹은 올해) 그 선생님은 좋았는데...(라며 교사를 늘 비교한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교사와의 면담에서는 성적에 대한 상담이 주를 이루고, 어느 대학에 보내는 부모가 능력있는지 비교하고, 진로는 살면서 정하지 않고 정해놓고 살게 한다. 심지어, 얼마전에 본 3-4세 자녀를 데리고 나온 어떤 엄마는 가관이었다. 아이는 우리말로 말하는데 엄마가 서툰 영어로 아이에게 말을 시키고 지시했다. 아이는 "엄마, 엄마 저쪽가자, 싫어..."라고 하는데 엄마는 절대 우리말로 대꾸하지 않았다. 전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모자의 대화를 목격하기도 했다. 학습놀이에 관심을 가지던 엄마들은 이젠 모든 놀이는 짜여진 틀안에서 학습과정으로 만들어져야 "놀게"한다. 그렇게 어린이들을 가둬키우고 자율성을 가진 성장을 기대하다니...
절대다수가 이렇게 말하지만...
절대다수가 이렇게 말하지만...
절대다수가 문제의식만 가지고 있고, 행동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진법을 펼쳐 놓는다.
2014년 5월 9일 금요일
나쁘지 않아.
쓸데없는 짓하는게 친구다. 이런거 찍으면서 그들의 한 낮은 얼마나 살맛이 나겠는가. 잉여롭다라는 신조어는 단지 돈많고 시간 남는 사람들을 위한 표현이 아니다. 그냥 멍하게 하루 종일 산책 하고, 담벼락에 매달린 고양이를 바라보고, 봄이되면 싹이 트는 하루하루를 지켜보고, 향기 좋은 홍차 한잔을 오후에 마시며 책 읽고, 비오는 날 후둑후둑하는 소릴 듣기 위해 우산을 들고 밖에 서 있고...참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사는게 인간이고 거기서 사는 맛을 느끼는것도 인간이다.
NotBad - Intro Scene (One-shot @ 600fps) from Anthill Films on Vimeo.
NotBad - Intro Scene (One-shot @ 600fps) from Anthill Films on Vimeo.
2014년 5월 6일 화요일
수퍼비전
2048이라는 게임이 있다. 게임을 시작할땐 만만하게 보인다. 가로든 세로든 같은 수를 더할 수 있고, 더해진 수가 2048이 되면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그렇다. 대충 어디로 보내든 512까지는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이후로 다른 512를 하나 더 만들어서 더하는건 쉽지 않다. 물론 1024를 두번 더해 2048을 만든다는 것은 더 힘들게 뻔하다. 이 게임을 하면서 루빅스 큐브 생각이 났다. 16면체의 한면을 맞추고 나면 다른 색이 흩어져 버리니 한면 한면을 맞추는 건 사실 의미가 없고 전체 메카니즘을 이해하거나 패턴을 외우는 것이 방법이다. 그런데 뭔가 다르다...그게 뭘까가 궁금해서 계속 한듯하다. 1024까지 가는데 성공하고 나면 아주 만만하게 이 게임이 보인다. 그런데 거기서 한계가 보였다. 패턴인지에 실패했다. 이때 내가 게임하는 걸 친구에게 보여주고 난 이렇게 한다고 말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더니 "높은 수를 위로 보내고 내려보내지 말고 더하라"는 한마디. 지금까지 내가 이 게임을 풀던 방식에서 잘못되었던 오류가 한마디로 수정된다. 그 동안 그게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1024를 만들려는 시도였다는 것. 마치 큐브의 한면을 맞추는 것과 같다. 그 보다 더 큰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기존의 패턴을 무시했어야 하는데 거기서 빠져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란 뜻이다. 그 한마디로 2048을 쉽게 만들었다. 참 쉬웠다.
인간은 자기 행동에 과잉 몰입하여 객관적 상황을 보지 못하며 사는 때가 많지 않던가. 간혹 나는 지나친 자기확신을 경계하라는 조언을 듣곤 한다. 그런 조언을 들을 때면 늘 어떤 상황을 두고 팔짱끼고 지켜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내 직업이 교육 수퍼바이저라지만 나 역시 한 쪽 방면을 들여다 보고 있을 때가 많을 수 밖엔 없다. 즉, 수퍼비전을 받곤 한다. 내 수퍼비전에 대한 수퍼비전인 셈이다. 간혹 나로 인해 어떤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건 -내가 훈련된 수퍼바이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당사자로 부터 한 걸음만 벗어나게 되면 보이는게 있다는 걸 말한다. 즉, 수퍼바이저는 역할이지 더 많은 능력과 경험을 가진 것이 아니다.
수퍼비전의 중요성을 이 게임하나로 완전히(이게 왠 오버냐...) 이해했다. 더구나 이 게임을 하면 겸손을 배우게 되더라. 랭킹을 보면서 그랬던 것 같다. 이제는 2048은 언제든 만들 수 있고 더 갈 수도 있다. 이 패턴을 인지하고 나서는 나에겐 그냥 시간죽이기가 되었다. (이것이 겸손을 배운자의 태도냐...) 그래서 앱을 지웠다.
2048
http://gabrielecirulli.github.io/2048/ 여기로 들어가면 게임을 할 수 있다.
https://itunes.apple.com/us/app/2048/id840919914?mt=8 이 링크는 아이튠즈 아이폰앱주소.
2014년 5월 4일 일요일
언론
미디어교육계에서 일하면서 언론에 대해 다루지 않을 순 없다. 그런데 난 그냥 무시하고 이렇게 단언하고 이야기를 접곤 한다. 언론은 그냥 광고회사라고 보면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향을 받는 건 어쩌냐며 무책임한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냥 그렇다고 말한다. 내가 아무리 영향을 받지 말라고 외쳐도 현재의 미디어환경에서 어쩔 도리가 없다. 그냥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고 믿지 말아야 할 1순위의 사기꾼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침몰에서 언론의 횡포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단지 왜곡이 문제가 아니다. 심하게 확대해석한다면 jtbc는 마케팅같다는 느낌도 사라지지 않는다. 걔네들의 본색은 금방 나올것임에 그렇다. 평생 고발뉴스나 뉴스타파등에 관심도 한번 가지지 않던 유가족들은 정말 새로운 세상을 봤을것이 분명하다. 다른 말로는 그들이 관심없을 만큼 영향력도 없었던 보도들 아니었던가. 그리고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은 주요언론의 이야기를 믿기 마련이다. 작은 노력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말하는 건 가진자들이 던지는 동정 섞인 위안이 아니더냐. 물론 주류언론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발뉴스와 뉴스타파가 주류언론이 된다면 달라질것 같은가. 쳇. 안속는다.
회상
20년이 넘게 사회교육현장에서 일하면서 요즘처럼 회의감이 생기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개인적으론 2002년을 기점으로 제도교육에 토나올 정도의 배신감과 한계를 느낀 후 초중고생과 학교에서 만나진 않았다. 간혹 생계형 알바로 학부모나 교사를 위한 특강 같은데는 불려 다녔으나 정작 학교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믿었고, 변화를 위한 노력은 누군가의 손에서 만들어질 것이라는 불확실한 믿음 같은 것으로 학교를 밀어냈다. 하지만 사회교육의 장에서 만난 소위 신분상의 "학생"들은 늘 나를 만날 때면 제도교육에 의해 희생되어 상처 투성이인 상태로 왔다.
1.
교사에게 두들겨 맞아서 눈에 멍이 시퍼렇게 든 여중생은 나에게 담배 한개만 달라고 말했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이어서 두대째를 피우면서 내가 뭔가 이유를 듣고 싶어한다는건 알지만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그 아이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있었다. 말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입을 열었다. 말 안해도 된다고 다시 한번 내가 얘길 했지만 나에게 털어놓았다. 에피소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가장 두려워했던건 지금 자기 모습을 본 부모님이 받을 충격이라고 했다. 신고하고 보상받고...등등으로도 학교와 얽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이유야 무엇이든 14세의 중학생 소녀가 팅팅부어 있는 눈두덩을 하고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을 상황은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었다.
2.
그리 왜소하지도 않은 체구의 17세 남자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공식적인 따돌림을 당했다. 교사의 문제였다. 같은반 여자아이들이 악의적인 소문(시작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대놓고 씹었다는 것에서 시작이란다...헐...)을 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넓은 대인관계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문제가 터졌다. 어느 여학생과 교사의 면담. 우리반에 왕따가 누구냐...라는 교사의 직접적인 질문. 그 여학생은 없다고 말했지만 캐묻는 통에 그 친구가 지목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종례시간에 아이들은 책상위에 무릎꿇게 하고 우리반에 왕따가 있다는 건 용서 할 수 없다며 벌세웠다. 그리고 왕따시켰던 아이들을 색출해낸다며 난리를 쳤단다. 졸지에 자신은 교사가 지정한 공식왕따가 되었고...그 이후 자신과 엮이면 피곤하다는 인식으로 고2가 되도록 혼자라고 말했다. 그도 학교를 그만두었다.
3.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청소년들도 많았다. 인문계학교가 아니라 상업고 학생들이었다. 상업계 학생들에게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왜 안좋은지를 담고 싶어했다. 제작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관심이 높아졌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직접 나서서 했고, 교사가 약간의 도움을 줬다. 촬영에 협조하거나 인터뷰에 응했다. 사실상 도움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도움이다. 문제는 거기서 생겼다. 아이들이 영화를 완성했다. 감독시사를 할 때 나도 함께 있었다. 주장이나 이야기의 짜임새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할만큼 했다. 정작 상고학생들 스스로 상업계고등학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거다. 재밌는 작품이었다. 완성작이 나오고 난 뒤 공식상영회에 제출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영화를 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학교에서 검열을 당했다. 이 장면은 학교의 이미지상 좋지 않으니 빼고, 어떤 인터뷰를 더 넣고...등등. 영화의 완성본은 학교 홍보처럼 되었다.
4.
대학생은 다를까? 이렇게 제도교육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대학에 온다.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협업이 서툴기에 팀워크를 중심으로 과제를 내면 그 안에서 잡아먹을 듯 경쟁하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과제가 훌륭한 것을 잘 들여다 보면 한명이 한 경우가 더 많았다. 신중하게 검토해서 학점을 주어도 일단 학점 올려달라는 시도들을 했다. 저는 결석이 한번도 없고 과제도 다 냈는데 82점입니다. 그런데 00이의 경우는 결석을 두번이나 했는데도 85점이네요....이런 식이다. 그래서 자기도 85점으로 올려달라는거. 과제와 시험을 다시 들여다 보면 엄청난 차이가 보였지만, 내가 기가 막혀 하는건 그런게 아니다. 학점에 대한 근거는 이미 수업시간에 말해 주었기 때문에 더 설명할건 없지만, 과제나 시험에 대한 재 평가를 말하는것 보다 "나보다 쟤가 왜 더 성적이 좋은가요"를 궁금해 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졌다. 난 궁금해졌다. 왜들이럴까 싶어서 언젠가 진지하게 한 클래스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12년간 그렇게 해왔다는거다.
휴...
1.
교사에게 두들겨 맞아서 눈에 멍이 시퍼렇게 든 여중생은 나에게 담배 한개만 달라고 말했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이어서 두대째를 피우면서 내가 뭔가 이유를 듣고 싶어한다는건 알지만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그 아이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있었다. 말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입을 열었다. 말 안해도 된다고 다시 한번 내가 얘길 했지만 나에게 털어놓았다. 에피소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가장 두려워했던건 지금 자기 모습을 본 부모님이 받을 충격이라고 했다. 신고하고 보상받고...등등으로도 학교와 얽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이유야 무엇이든 14세의 중학생 소녀가 팅팅부어 있는 눈두덩을 하고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을 상황은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었다.
2.
그리 왜소하지도 않은 체구의 17세 남자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공식적인 따돌림을 당했다. 교사의 문제였다. 같은반 여자아이들이 악의적인 소문(시작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대놓고 씹었다는 것에서 시작이란다...헐...)을 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넓은 대인관계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문제가 터졌다. 어느 여학생과 교사의 면담. 우리반에 왕따가 누구냐...라는 교사의 직접적인 질문. 그 여학생은 없다고 말했지만 캐묻는 통에 그 친구가 지목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종례시간에 아이들은 책상위에 무릎꿇게 하고 우리반에 왕따가 있다는 건 용서 할 수 없다며 벌세웠다. 그리고 왕따시켰던 아이들을 색출해낸다며 난리를 쳤단다. 졸지에 자신은 교사가 지정한 공식왕따가 되었고...그 이후 자신과 엮이면 피곤하다는 인식으로 고2가 되도록 혼자라고 말했다. 그도 학교를 그만두었다.
3.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청소년들도 많았다. 인문계학교가 아니라 상업고 학생들이었다. 상업계 학생들에게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왜 안좋은지를 담고 싶어했다. 제작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관심이 높아졌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직접 나서서 했고, 교사가 약간의 도움을 줬다. 촬영에 협조하거나 인터뷰에 응했다. 사실상 도움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도움이다. 문제는 거기서 생겼다. 아이들이 영화를 완성했다. 감독시사를 할 때 나도 함께 있었다. 주장이나 이야기의 짜임새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할만큼 했다. 정작 상고학생들 스스로 상업계고등학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거다. 재밌는 작품이었다. 완성작이 나오고 난 뒤 공식상영회에 제출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영화를 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학교에서 검열을 당했다. 이 장면은 학교의 이미지상 좋지 않으니 빼고, 어떤 인터뷰를 더 넣고...등등. 영화의 완성본은 학교 홍보처럼 되었다.
4.
대학생은 다를까? 이렇게 제도교육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대학에 온다.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협업이 서툴기에 팀워크를 중심으로 과제를 내면 그 안에서 잡아먹을 듯 경쟁하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과제가 훌륭한 것을 잘 들여다 보면 한명이 한 경우가 더 많았다. 신중하게 검토해서 학점을 주어도 일단 학점 올려달라는 시도들을 했다. 저는 결석이 한번도 없고 과제도 다 냈는데 82점입니다. 그런데 00이의 경우는 결석을 두번이나 했는데도 85점이네요....이런 식이다. 그래서 자기도 85점으로 올려달라는거. 과제와 시험을 다시 들여다 보면 엄청난 차이가 보였지만, 내가 기가 막혀 하는건 그런게 아니다. 학점에 대한 근거는 이미 수업시간에 말해 주었기 때문에 더 설명할건 없지만, 과제나 시험에 대한 재 평가를 말하는것 보다 "나보다 쟤가 왜 더 성적이 좋은가요"를 궁금해 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졌다. 난 궁금해졌다. 왜들이럴까 싶어서 언젠가 진지하게 한 클래스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12년간 그렇게 해왔다는거다.
휴...
2014년 5월 2일 금요일
수미쌍관법
중학교 국어시간이었다. 누구의 시였는지 모르겠는데 선생님이 읊었다. 교과서를 들고 천천히 읽었다. 그 풍경을 잊을 순 없을것 같다. 아주 천천히 읽었다. 교실엔 아이들이 70여명이 앉아 있었고, 당시만해도 수업시간에 딴짓하는건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교사의 낭송을 듣기만 하고 있었다. 시를 다 읊고나서 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설명하다 그래서 이게 수미쌍관법이란거야...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교과서에 받아적기 시작했다. 맨 앞줄의 아이가 받아적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더니 깊에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건 수미쌍관이 아니야. 그런데 너희들은 그것만 관심있구나"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건 수미쌍관이 아니야. 그런데 너희들은 그것만 관심있구나"
2014년 4월 27일 일요일
시간에 대한 잡설
"시간"에 대한 객관적 정의는 없으나 조작적 정의나 약속의 개념이 있다. 시간에 대해 가장 오랜 관심을 가진 학문은 역시 천문학이지만, 아인슈타인 이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상대적 시간을 증명해내면서 (굳이 표현하자면)뒤틀렸다. 표준시간이란 그래서 천체를 중심으로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맞춰놓은 것이거나 약속의 개념이된다. 그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가 궁금하다면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는건 분명하다. 봉건제 해체 이후 농민계급이었던 노동자에게 더 많은 생산을 요구하기 위해선, 더 효율적 관리 대상으로 시간개념이 확보되어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져야 했던 표준시각은 인간을 시스템으로 몰아갔다. 표준이 된 시간은 생활의 편리를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생각한다면 참 무서운 결과를만들어낸다. 가장 비정상적인 생태계를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 170만년전 두발로 걷기 시작한 인류는 신화로 존재하는 아이테르를 바라보며 지구에 적응하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에너지원이 되는 태양을 중심으로 살아왔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자연의 시스템으로 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은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명의 핵심은 그 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는가로 부터 출발했다고 본다. 문제는 소유다. 초기인류의 생존을 위한 투쟁적 관점이 아니라 소유를 위한 전쟁이 되었다 . 굳이 설명하자면 (토인비가 말한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시간을 누가 소유할 것인가의 개념이 되었단 뜻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시간을 소유하려고 한다. 그 시간은 생산량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이 체감하는 시간이란, 물리적 사건의 연속선의 한 지점이거나 독립적 물리량을 갖는 비연속적 객체라고 보기 보다는 재화와 교환되며 소비를 가능케하는 화폐와 유사하다. (물론 이 관점은 생산주체인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의 쓰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긴 싸움이 계속된다) "나는 내 시간의 주인이다"라고 역설하는 자기계발서를 보면 한심한 이유기도 하다. 오히려 "나는 타인의 시간 노예다"로 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2014년 4월. 한국사회는 기능이 정지된 정부로 인해 무력감을 갖는다. 세월호의 침몰로 인해 시작된 무력감이다. 이 글은 세월이라는 시간개념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의 조각 중 하나다. 왜...라는 질문이 자꾸 생기지만 결국 기능상실의 가장 큰 원인은 모두가 타인시간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거다. 매뉴얼이 없어서 문제라고 말할까봐 나는 더 무섭다. 매뉴얼은 이미 있다. 엉성한 것이 문제다. 그럼 완벽한 매뉴얼은 존재할까? 그건 사건이 잘 수습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지키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시키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간을 사는 것이 당연해진 사회에서 그 무엇도 각성할 수 없이 마비된 인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2014년 4월. 한국사회는 기능이 정지된 정부로 인해 무력감을 갖는다. 세월호의 침몰로 인해 시작된 무력감이다. 이 글은 세월이라는 시간개념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의 조각 중 하나다. 왜...라는 질문이 자꾸 생기지만 결국 기능상실의 가장 큰 원인은 모두가 타인시간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거다. 매뉴얼이 없어서 문제라고 말할까봐 나는 더 무섭다. 매뉴얼은 이미 있다. 엉성한 것이 문제다. 그럼 완벽한 매뉴얼은 존재할까? 그건 사건이 잘 수습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지키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시키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간을 사는 것이 당연해진 사회에서 그 무엇도 각성할 수 없이 마비된 인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2014년 4월 25일 금요일
뻘짓거리
1.
공무원 미친 뻘짓들은 대부분 잘해보려고 하려다 망하는 짓거리다. 장관님이 납신다고 귀뜸하여 못난 대중이 준비하고 맞이하게 만들라는 명령은 그들의 매뉴얼이다. 잘 모시려고 똥꾸멍 빨던 버릇 그대로 하다 세월호에서 죽은 한 고등학생의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에게 욕 쳐먹은거다.
2.
어느날 회의에 갔는데 회의 중에 담당자가 사진을 찍었다. 뭐하는거냐고 묻자 오늘 먹은것도 영수증과 함께 사진으로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커피값은 대략 만원정도였다. 그냥 내가 낼테니 사진 찍지 말라고 말했다. 그런데 농담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녀는 결국 사진을 찍었다. 어딘가의 서류에 영수증과 더불어 내가 커피 마시며 회의하는 사진이 첨부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게 대한민국 정부 공무원의 발상이다. 물증 없으면 아무 일도 안했다는 생각하는 공무원의 발상은 세월호 상황실 앞에서 사진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게 즐거운 기념사진이었을거라고는 상상하지 않는다. 그냥 그게 공무원들 하는 짓들이고 그렇게 배워왔고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거라고 본다. 그들이 이 상황에서 유가족 놀리려고 한 게 아닐게다.
3.
뷰티풀 민트 라이프 콘서트가 취소통보를 받았다. 줄줄이 공무원들의 뻘짓들이 보도되고 비웃음을 사자 몸사리는 또 다른 공무원들이 우리는 추모하기 위해 공연을 취소해야 한다고 결정한거다.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고, 그 동안 준비하던 사람들의 삶에 스트레스를 불어넣었다. 뷰티풀 민트 라이프가 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 과정이 정말 공무원 스럽다는 건 분명하다. 앞뒤가 없는 개뻘짓. 무조건 우리가 다치면 곤란하니 책임회피. 그들의 모토다. 어떻게 하면 일을 안할지 연구하는게 그들의 일이며, 시킨것만 하고 증거만 확보한다는 원칙은 하나도 변한게 없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원생동물과 동급의 지능인것은 알고 있지만 품종상 인간의 껍질을 하고 있기에 일부러 그랬을리는 없다. 진짜 잘해보려고 하다 그런거다. 그게 문제란걸 그들만 모르고 세상은 다 안다. 제발 뻘짓 좀 그만하고 자기자리에서 일상을 잘 살아내자.
공무원 미친 뻘짓들은 대부분 잘해보려고 하려다 망하는 짓거리다. 장관님이 납신다고 귀뜸하여 못난 대중이 준비하고 맞이하게 만들라는 명령은 그들의 매뉴얼이다. 잘 모시려고 똥꾸멍 빨던 버릇 그대로 하다 세월호에서 죽은 한 고등학생의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에게 욕 쳐먹은거다.
2.
어느날 회의에 갔는데 회의 중에 담당자가 사진을 찍었다. 뭐하는거냐고 묻자 오늘 먹은것도 영수증과 함께 사진으로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커피값은 대략 만원정도였다. 그냥 내가 낼테니 사진 찍지 말라고 말했다. 그런데 농담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녀는 결국 사진을 찍었다. 어딘가의 서류에 영수증과 더불어 내가 커피 마시며 회의하는 사진이 첨부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게 대한민국 정부 공무원의 발상이다. 물증 없으면 아무 일도 안했다는 생각하는 공무원의 발상은 세월호 상황실 앞에서 사진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게 즐거운 기념사진이었을거라고는 상상하지 않는다. 그냥 그게 공무원들 하는 짓들이고 그렇게 배워왔고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거라고 본다. 그들이 이 상황에서 유가족 놀리려고 한 게 아닐게다.
3.
뷰티풀 민트 라이프 콘서트가 취소통보를 받았다. 줄줄이 공무원들의 뻘짓들이 보도되고 비웃음을 사자 몸사리는 또 다른 공무원들이 우리는 추모하기 위해 공연을 취소해야 한다고 결정한거다.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고, 그 동안 준비하던 사람들의 삶에 스트레스를 불어넣었다. 뷰티풀 민트 라이프가 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 과정이 정말 공무원 스럽다는 건 분명하다. 앞뒤가 없는 개뻘짓. 무조건 우리가 다치면 곤란하니 책임회피. 그들의 모토다. 어떻게 하면 일을 안할지 연구하는게 그들의 일이며, 시킨것만 하고 증거만 확보한다는 원칙은 하나도 변한게 없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원생동물과 동급의 지능인것은 알고 있지만 품종상 인간의 껍질을 하고 있기에 일부러 그랬을리는 없다. 진짜 잘해보려고 하다 그런거다. 그게 문제란걸 그들만 모르고 세상은 다 안다. 제발 뻘짓 좀 그만하고 자기자리에서 일상을 잘 살아내자.
2014년 4월 22일 화요일
나는 왜 교육자가 되었는가.
나는 왜 교육자가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처음에 시작할 때 난 분명히 잘난척을 하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20대에 사회의 변혁을 꿈꾸었지만 처절히...철저히...실패하고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막살고 싶어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보상은 나를 향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욕망을 들여다 봤다.
난 알아버린거다. 난 사람들 앞에서 "니네 수준은 나와 달라...그러니 나에게 배워"라고 말하고 싶었던거다.
가장 잘난척을 잘해도 욕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직업은 교육자가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상담실에서 근무하면서도 항상 교육세팅을 만들어갔다.
나는 왜 미디어교육자가 되었는가에 대한 두번째 질문.
그것도 대체로 단순한 욕망에서 출발했다.
있어보였다.
최신 미디어들은 항상 고가의 장비였고, 아무나 함부로 접근할 수 있는 건 잘난척을 팍팍 밀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첫번째 질문에 연장된 답이다. 잘난척을 배가시키기 위한 것이라고나 할까...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당시는 분명히 그랬다.
어떤 삶의 철학도, 교육자가 되어 세상을 향한 어떤 변화를 말하고 싶은 마음도 사실은 거의 없었다.
지금이야 깨달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을 꺼내진 않지만...
내 시작은 분명히 그랬다.
2014년 3월 7일 금요일
기획회의의 단상
올해 문화예술교육주간의 주제는 "삶을 재생하다"
물리적 거점의 중심부는 문화역서울284다.
서울역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를 지인 몇명에게 물으면 두명 중 한명은 꼭 홈리스를 연상한다.
터미널의 역할이며, 정주적 형태의 물리적 공간도 아니며, 최소한을 머물다 떠나는 곳이 서울역이다.
어찌 보면 서울 또는 도시 삶의 이미지와 닮아있기도 하다.
그런데 서울역 홈리스는 떠나지 않고 정주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서울역의 문화에서 묘하게 언밸런스하게 공간을 점유한다.
오늘 기획회의에 참여하면서 가장 불편했던건,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야 하는 행사에서
홈리스가 오면 어쩌지...그들이 오는건 싫어...라는 말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 가는 것이었다.
그래 냄새나고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도 그들이 가까이 있는 것이 기쁘다는게 아니다.
하지만 공공적 성격을 가진 행사...더구나 그 주요 거점이며 환경이 서울역이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회의에서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얘기했어야 하는 홈리스가 다가오면 어떻게 맞이할까...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다면 주최측에서는 어떤 장치로 그걸 해소해야 하는가로 부터 이야기가 출발하지 못했다. 회의의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가 중요하겠지만 홈리스는 불특정 다수 조차 되지 못했다는 건 집에 오는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누구는 되고...누구는 안되는...공공성. 앞날이 캄캄하다. 이 작은 규모의 집단에서도 이런데 우리사회는 어떨까 싶기도 하고...
결국 그렇게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게토는 홈리스가 만들어낸건 분명 아닐거다.
90년대 중반 마로니에 공원에 작은 야외공연장이 있었다. (그 후에 SK가 이상하게 디자인 한 무대로 바뀐 후 댄스팀만 줄창왔다. 댄스팀이 나쁘단게 아니라 다양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공연도 꽤 자주 있었고, 그 공간을 어떻게 쓸것인가를 많은이들이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 갔었던 기억이 난다. 매번 그 공간에는 홈리스가 함께 있었다. 몇명은 눈살을 찌프리고 냄새난다고 피하기도 했지만 공존했다. 난 거의 매주 그 곳에 갔다. 공연을 기획해서 열기도 했다. 내가 기획한 공연이 없던 날 그냥 편안히 앉아서 기타 연주 리허설을 보고 있었다. 어떤 사회자가 나와서 말했다. 거의 매일 이곳에서 보던 홈리스를 보고는
"아저씨...오늘 시작을 알리는 멘트는 아저씨가 해주세요"
아저씨를 불러내자 많은이들이 박수를 쳤다. 그 아저씨가 무대로 올라왔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라고...?라고 한번 되묻고 행사 이름을 외웠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힘차게 시작을 알렸다.
난 대학로에서 본 거리공연 중에서 그날의 시작이 가장 기쁘고 좋았다.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이 홈리스를 대상으로 발레를 가르치고,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문화예술교육의 이름으로 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당연한 권리라는 항변을 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정작 대중속에 섞이는 건 거론되는 것 조차 두려워하는 현실.
갈길이 참 멀구나...
물리적 거점의 중심부는 문화역서울284다.
서울역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를 지인 몇명에게 물으면 두명 중 한명은 꼭 홈리스를 연상한다.
터미널의 역할이며, 정주적 형태의 물리적 공간도 아니며, 최소한을 머물다 떠나는 곳이 서울역이다.
어찌 보면 서울 또는 도시 삶의 이미지와 닮아있기도 하다.
그런데 서울역 홈리스는 떠나지 않고 정주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서울역의 문화에서 묘하게 언밸런스하게 공간을 점유한다.
오늘 기획회의에 참여하면서 가장 불편했던건,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야 하는 행사에서
홈리스가 오면 어쩌지...그들이 오는건 싫어...라는 말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 가는 것이었다.
그래 냄새나고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도 그들이 가까이 있는 것이 기쁘다는게 아니다.
하지만 공공적 성격을 가진 행사...더구나 그 주요 거점이며 환경이 서울역이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회의에서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얘기했어야 하는 홈리스가 다가오면 어떻게 맞이할까...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다면 주최측에서는 어떤 장치로 그걸 해소해야 하는가로 부터 이야기가 출발하지 못했다. 회의의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가 중요하겠지만 홈리스는 불특정 다수 조차 되지 못했다는 건 집에 오는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누구는 되고...누구는 안되는...공공성. 앞날이 캄캄하다. 이 작은 규모의 집단에서도 이런데 우리사회는 어떨까 싶기도 하고...
결국 그렇게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게토는 홈리스가 만들어낸건 분명 아닐거다.
90년대 중반 마로니에 공원에 작은 야외공연장이 있었다. (그 후에 SK가 이상하게 디자인 한 무대로 바뀐 후 댄스팀만 줄창왔다. 댄스팀이 나쁘단게 아니라 다양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공연도 꽤 자주 있었고, 그 공간을 어떻게 쓸것인가를 많은이들이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 갔었던 기억이 난다. 매번 그 공간에는 홈리스가 함께 있었다. 몇명은 눈살을 찌프리고 냄새난다고 피하기도 했지만 공존했다. 난 거의 매주 그 곳에 갔다. 공연을 기획해서 열기도 했다. 내가 기획한 공연이 없던 날 그냥 편안히 앉아서 기타 연주 리허설을 보고 있었다. 어떤 사회자가 나와서 말했다. 거의 매일 이곳에서 보던 홈리스를 보고는
"아저씨...오늘 시작을 알리는 멘트는 아저씨가 해주세요"
아저씨를 불러내자 많은이들이 박수를 쳤다. 그 아저씨가 무대로 올라왔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라고...?라고 한번 되묻고 행사 이름을 외웠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힘차게 시작을 알렸다.
난 대학로에서 본 거리공연 중에서 그날의 시작이 가장 기쁘고 좋았다.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이 홈리스를 대상으로 발레를 가르치고,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문화예술교육의 이름으로 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당연한 권리라는 항변을 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정작 대중속에 섞이는 건 거론되는 것 조차 두려워하는 현실.
갈길이 참 멀구나...
2014년 2월 21일 금요일
유머시리즈가 나오지 않는 이유
참새가 전깃줄에 앉아 있다.
블라 블라 블라...
더 이상 이런 시리즈 농담이 나오지 않는 이유?
사람들이 카페나 술집에서 그런 유머를 구전으로 공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웹이나 메신저가 대신하고 있고...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공유된다. 말로 전하면서 이리 저리 변형 조합되는 유머가 사라진 이유다.
그건 마치 성냥개비로 탁자위에 놓으면서 놀았던 수수께끼와 같다.
성냥문화도...카페에서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던 문화도...사라져간다.
골목 안쪽의 다방이나 젊은 이들이 파르페(?)를 마시면서 비 생산적으로 시간을 때우며 즐거운 젊은 날을 만끽하는 그런 문화는 없다.
카페의 한쪽에 놓여있던 팔각성냥을 볼 수 없다. 그 성냥개비 수수께끼는 스타벅스에서 재현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블라 블라 블라...
더 이상 이런 시리즈 농담이 나오지 않는 이유?
사람들이 카페나 술집에서 그런 유머를 구전으로 공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웹이나 메신저가 대신하고 있고...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듣는 순간 공유된다. 말로 전하면서 이리 저리 변형 조합되는 유머가 사라진 이유다.
그건 마치 성냥개비로 탁자위에 놓으면서 놀았던 수수께끼와 같다.
성냥문화도...카페에서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던 문화도...사라져간다.
골목 안쪽의 다방이나 젊은 이들이 파르페(?)를 마시면서 비 생산적으로 시간을 때우며 즐거운 젊은 날을 만끽하는 그런 문화는 없다.
카페의 한쪽에 놓여있던 팔각성냥을 볼 수 없다. 그 성냥개비 수수께끼는 스타벅스에서 재현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2014년 2월 15일 토요일
2014년 2월 10일 월요일
도구 사용의 유연성
난 어려서 부터 도구 사용에 대해서는 매우 유연한 편이었다. 손/얼굴/발수건을 따로 쓰는 집안의 문화에서도 그냥 과감하게 혼자 구분없이 쓰며 살았다. 아마 이 사실을 우리 가족들이 안다면 엄청난 배신감이 들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라면서 이 유연성은 더 커졌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서양애들이 담배피우다 자기가 먹던 커피잔에 던져 넣어 끈다거나 하는 걸 보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먹는 것에 담배재를...이라며 경악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그런다. 별 문제없다. 어차피 설거지로 깨끗하게 해결될 것이고 오히려 먹다남은 음식보다는 담배꽁초가 더 깨끗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컵은 쓰레기 통이 될 수 있고, 쓰레기를 담던 그릇은 맛있는 음식이 담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아인슈타인이 친구만나러 가는데 추워서 집에 있는 커튼을 목도리로 감고 집밖으로 나갔다는 말을 듣고 나 혼자 심하게 공감한 적이 있었다. 그게 문제가 될 턱이 없었다. 커피드리퍼에 과일을 씻어 담아 먹으면 물이 밑으로 빠져서 편리하다. 그 용도가 커피만으로 한정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덕분이다. 이런 내 버릇 덕분에 두개의 이질적인 재료들이 상호작용하는 것에 대한 자연스런 태도가 생겼다. 그래서 일할 때 컨버전스나 크로스오버도 자연스러운 모양이다. 이런 유연성은 내 일상과 관련된 것이지 절대 배워서 가능한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유연성과 전화된 발상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데 돌아버리겠다. 그래서 내가 강의할 때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은 당신의 일상을 들여다 보라...그래서 나와 같은 일상적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크로스오버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스트레스상황을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주기로 했다. 어차피 안될거 너무 힘들게들 산다.
2014년 2월 6일 목요일
드라마트루기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힘들고 객관성이 결여된다. 소사이어티는 아주 작은 단위의 결함을 스스로 견고하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방식의 룰과 방법론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 중 하나가 집단이 하나의 문제 또는 상황을 입체적인 방식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연극에서는 드라마트루기dramaturgy라고 부른다. 극작을 위해 조금 더 객관화된 서사구조, 즉 관객의 관점으로 보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2014년 2월 4일 화요일
가족은 언제나 나에게 불편했다.
이번 설에 가족들하고 한판 붙었다.
특히 어머니.
어머니는 내가 독립해서 집을 나온것을 자신의 의지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날 독립시켰다고 말하셨다.
난 발끈했다.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집에서 나온건 부모님이 평생을 싸우다가 끝내는 자살소동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했다.
아버지는 평생 의처증으로 어머니를 의심했고,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맞고 사는 걸 봤다.
아버지가 집에 계시면 늘 주눅들어 있었고, 공포에 시달렸다.
어린 나는 그런 공포의 순간을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컸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두분에게 이혼을 권했다. 말할 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저렇게 서로 의심하고 미워하고 무서워하면서 함께 사는 것의 부적절함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부부의 이혼은 내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학생이 된 이후 독립적으로 사고 하고 독립적으로 살았다.
그저 한국의 정서상 공식적인 독립이란 결혼이었다.
도피를 위해 결혼할꺄 수도 없이 고민했다. 결혼상대로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건강한 가정의 이미지가 생겨나질 않았다.
도피의 수단으로 한 여자를 제물로 바치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몇번의 시도는 그냥 없던 일이 되었고, 나는 여전히 혼자 살아간다.
어느날이었다.
여전히 어머니를 의심한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고 폭언을 하자 어머니는 못참겠다며 아버지와 함께 자살하자고 제안했다.
자살...
부모의 자살...
자식의 가슴에 못박겠다는 결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평생 비극의 연속이었던 우리 집안에서는 그리 큰 일도 아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집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미리 준비해놓은 독약을 아버지에 입에 구겨넣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는 어머니를 쉼터로 일단 모셔다 드렸다.
쉼터에서 어머니를 만나 마지막으로 말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더 이상 두분의 관계에 끼어들지 않겠다.
이혼을 권했다.
그리고 나는 네팔로 떠났다. 한달간의 여행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나는 결심했다. 이제 확실히 떨어져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여름 대림동으로 이사했다.
그렇게 어렵게 독립했거늘...
난 짜증과 분노가 폭발했다.
어머니가 내 독립을 준비시켜 날 보냈다고 말하는 걸 듣자니 참을 수 없었다.
가족...진짜 모르겠다.
2014년 1월 7일 화요일
움직여라 뚝딱
시쳇말로 자유로운 영혼이란게 쉽게 득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몸의 자유, 사상의 자유란 타인을 억압하지 않을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수반한다.
최근 몇 년간 만난 사람 중에 자유로운 영혼의 대표자는 무용가 안은미선생님이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목구멍이 따끔거릴 정도로 웃다가 한마디 말에 흠칫하다가도 이내 방긋한 미소가 생기곤 한다.
젊은이를...청소년을...아동을 만나서 "이렇게 사는 어른도 있어. 별 문제 아니고 멋있게 잘 살아"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움직여라 뚝딱은 안은미무용단이 매주 토요일에 10대와 함께 준비한 공연.
무대에서 2분간 아무거나 해라...
그 "아무거나"라는게 "무대"와 만나는 순간 아무렇게나 할 수 없는 공연이 된다는 것.
몸의 자유, 사상의 자유란 타인을 억압하지 않을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수반한다.
최근 몇 년간 만난 사람 중에 자유로운 영혼의 대표자는 무용가 안은미선생님이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목구멍이 따끔거릴 정도로 웃다가 한마디 말에 흠칫하다가도 이내 방긋한 미소가 생기곤 한다.
젊은이를...청소년을...아동을 만나서 "이렇게 사는 어른도 있어. 별 문제 아니고 멋있게 잘 살아"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움직여라 뚝딱은 안은미무용단이 매주 토요일에 10대와 함께 준비한 공연.
무대에서 2분간 아무거나 해라...
그 "아무거나"라는게 "무대"와 만나는 순간 아무렇게나 할 수 없는 공연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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