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4일 일요일

회상

20년이 넘게 사회교육현장에서 일하면서 요즘처럼 회의감이 생기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개인적으론 2002년을 기점으로 제도교육에 토나올 정도의 배신감과 한계를 느낀 후 초중고생과 학교에서 만나진 않았다. 간혹 생계형 알바로 학부모나 교사를 위한 특강 같은데는 불려 다녔으나 정작 학교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믿었고, 변화를 위한 노력은 누군가의 손에서 만들어질 것이라는 불확실한 믿음 같은 것으로 학교를 밀어냈다. 하지만 사회교육의 장에서 만난 소위 신분상의 "학생"들은 늘 나를 만날 때면 제도교육에 의해 희생되어 상처 투성이인 상태로 왔다. 
1.
교사에게 두들겨 맞아서 눈에 멍이 시퍼렇게 든 여중생은 나에게 담배 한개만 달라고 말했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이어서 두대째를 피우면서 내가 뭔가 이유를 듣고 싶어한다는건 알지만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그 아이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있었다. 말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입을 열었다. 말 안해도 된다고 다시 한번 내가 얘길 했지만 나에게 털어놓았다. 에피소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가장 두려워했던건 지금 자기 모습을 본 부모님이 받을 충격이라고 했다. 신고하고 보상받고...등등으로도 학교와 얽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이유야 무엇이든 14세의 중학생 소녀가 팅팅부어 있는 눈두덩을 하고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을 상황은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었다.
2.
그리 왜소하지도 않은 체구의 17세 남자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공식적인 따돌림을 당했다. 교사의 문제였다. 같은반 여자아이들이 악의적인 소문(시작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대놓고 씹었다는 것에서 시작이란다...헐...)을 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넓은 대인관계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문제가 터졌다. 어느 여학생과 교사의 면담. 우리반에 왕따가 누구냐...라는 교사의 직접적인 질문. 그 여학생은 없다고 말했지만 캐묻는 통에 그 친구가 지목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종례시간에 아이들은 책상위에 무릎꿇게 하고 우리반에 왕따가 있다는 건 용서 할 수 없다며 벌세웠다. 그리고 왕따시켰던 아이들을 색출해낸다며 난리를 쳤단다. 졸지에 자신은 교사가 지정한 공식왕따가 되었고...그 이후 자신과 엮이면 피곤하다는 인식으로 고2가 되도록 혼자라고 말했다. 그도 학교를 그만두었다.
3.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청소년들도 많았다. 인문계학교가 아니라 상업고 학생들이었다. 상업계 학생들에게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왜 안좋은지를 담고 싶어했다. 제작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관심이 높아졌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직접 나서서 했고, 교사가 약간의 도움을 줬다. 촬영에 협조하거나 인터뷰에 응했다. 사실상 도움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도움이다. 문제는 거기서 생겼다. 아이들이 영화를 완성했다. 감독시사를 할 때 나도 함께 있었다. 주장이나 이야기의 짜임새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할만큼 했다. 정작 상고학생들 스스로 상업계고등학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거다. 재밌는 작품이었다. 완성작이 나오고 난 뒤 공식상영회에 제출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영화를 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학교에서 검열을 당했다. 이 장면은 학교의 이미지상 좋지 않으니 빼고, 어떤 인터뷰를 더 넣고...등등. 영화의 완성본은 학교 홍보처럼 되었다.
4.
대학생은 다를까? 이렇게 제도교육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대학에 온다.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협업이 서툴기에 팀워크를 중심으로 과제를 내면 그 안에서 잡아먹을 듯 경쟁하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과제가 훌륭한 것을 잘 들여다 보면 한명이 한 경우가 더 많았다. 신중하게 검토해서 학점을 주어도 일단 학점 올려달라는 시도들을 했다. 저는 결석이 한번도 없고 과제도 다 냈는데 82점입니다. 그런데 00이의 경우는 결석을 두번이나 했는데도 85점이네요....이런 식이다. 그래서 자기도 85점으로 올려달라는거. 과제와 시험을 다시 들여다 보면 엄청난 차이가 보였지만, 내가 기가 막혀 하는건 그런게 아니다. 학점에 대한 근거는 이미 수업시간에 말해 주었기 때문에 더 설명할건 없지만, 과제나 시험에 대한 재 평가를 말하는것 보다 "나보다 쟤가 왜 더 성적이 좋은가요"를 궁금해 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졌다. 난 궁금해졌다. 왜들이럴까 싶어서 언젠가 진지하게 한 클래스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12년간 그렇게 해왔다는거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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