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7일 일요일

2015년 내가 뽑은 10권의 책

2015년에 출간된 책을 뽑을 것인가. 아니면 2015년에 읽은 책을 선택할 것인가 사이에서 잠깐(또는 아주 살짝) 고민하게 된다.
억지로 머리에 구겨 넣은 책도 있었고, 서점에 서서 읽고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
책을 선택한다는 것은 의식의 흐름과 같아서 겹쳐읽기의 과정이다.
전혀 다른 텍스트일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거의 모든 독서는 연속과 반복이다.
마치 나선형 사고를 하는 사유방식과 비슷하다.
내 1년간 생각과 행동이 작동하는 순환원리를 보는 느낌이랄까.


1. 다시, 그림이다


난 호크니 할아버지라고 평소에 말하곤 한다. 이 인터뷰와 그림은 특별한 서사를 따라갈 필요도 없고, 소파와 책상에서 아무 챕터나 읽는 즐거움이 있다.

2.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스토리를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올해는 의도적으로 소설에 손을 댔다. 그 중에 이 책은 읽는 내내 궁둥이가 들썩 거린다. 영화도 보려고 했는데 못봤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볼 예정. 나의 현재 삶이 내 미래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지금 주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게 되는 소설.

3. 플로팅시티



괴짜사회학.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 안 읽기 힘들다. 인간은 누구나 관음적 시선에 묘한 쾌감을 느낀다. 더구나 소문과 진상이라는 미스터리코드와 그것을 전해주는 이야기꾼이 있다면 주의를 기울 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가볍게 읽히지만 무게감이 남는다.

4. 진격의 대학교



왜...왜...이런 질문이 끊임 없이 나오고,
어쩌다가...어쩌다가...라고 자책하면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
다시 읽고 싶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주었다. 한국사회 지식인의 멸종을 선포하기 직전의 생생한 기록.

5. 그림자 노동



이반 일리히의 그림자노동이 새로 번역되어 나왔다. 박홍규역이 조금 더 개념이해를 위해선 마음에 들지만 통증연대기를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이 책도 들여다 봤다.

6. 종의 기원



갑자기 고전을 한권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남의 서재에서 꺼냈다가 푹 빠져버린 책.  너무 많이 알려진 유명한 저서여서 계속 미루기만 하고 정독한 적이 없는 책이 꽤 많다. 그 중에 한권이다.  함께 읽은 책은 코스모스.

7. 마션



영화속 대사 몇 마디가 좋아서 두번을 연거푸 보고 소설을 봐야겠다고 결심한 후 선물 받은 책. 뭐가 더 좋다 나쁘다는 당연히 없다. 매체가 다른 것 뿐. 그치만 영화 속 마지막 장면이 사족이란걸 알게 되었다. 왜 헐리웃이 감동을 방해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

8.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올해 초 제주에 출장갔다가 지니어스 로사이에 다녀왔다. 우연인지. 내가 머문 한시간 넘는 시간동안 그 공간에 출입하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완벽하게 혼자였다. 이 책은 지니어스 로사이의 그 혼자 시간 만큼의 감흥은 아니다.

9. 사일런스



억지스런 퍼포먼스라고만 생각하거나, 유니크한 예술가로만 치부하기에는 존 케이지의 사유가 깊어서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예술가로 부터 예술이 나오는 것을 부정하긴 힘들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세계의 존재를 지울 순 없다. 존 케이지가 그런 세계에 대해 복잡한 "썰"을 풀어놓았다.

10.   고양이의 하루












이 책은 읽었다고 해야하나? 보았다고 말해야 하나? 아니면 책을 했다고 말해야 하나?
절친이 책을 냈을 데 전작과 다르게 텍스트가 없는 그림책. 그래서 아는 고양이 보노의 이야기다. 그냥 들여다 보고만 있어도 좋다.



2015년 8월 14일 금요일

가방

버스나 지하철에서 가방 무거우면 들어주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샌 거의 없다. 
정작 무거운 가방을 앉아서 받아주진 않지만...
여자친구에게 패션의 완성이라며 사준 핸드백을 들어주는 남자들 꽤 많이 본다. 

2015년 8월 8일 토요일

Mark Ronson 마크 론슨

Mark Ronson. 쿨하다는 말은 이런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집요하고 천재적이면서 품위있다.



샘플링은 어떻게 음악을 바꾼걸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마크 론슨이 말하면 다르다.
이미 히트상품을 제조(?)하고 있는 뮤지션이어서 그렇다.
노래 한 마디도 부르지 않았는데 브릿어워드에서 상을 받기도 한다.
브루노 마스가 아무리 뛰어난 보컬이라고 해도 그 곡은 마크 론슨의 곡이다. 업타운 펑크가 그의 손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폭발적인 대중적 사랑을 못 받았을 것이다.
 

2015년 7월 12일 일요일

빈센트 도노프리오

지난주에 쥬라식월드를 보면서...
설마 그 사람? 이라고 생각했는데 크레딧에서 이름을 확인.
빈센트 도노프리오.
참 이분 다양한 캐릭터 연기한다.
일단,


풀메탈재킷. 이 영화 진짜 좋아했는데 특히 주연이었던 배우보다 빈센트 아저씨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몇 년 뒤 또 정말 좋아하는 영화를 한편 만났는데 제목은 더셀.
거기서 연쇄살인범을 맡았다.


꿈속. 즉 무의식에서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극단적 고립. 자기만의 세계를 만드는 그 이미지 연출도 좋았지만, 빈센트 아저씨의 연기는 정말 최고였다.

이때만해도 이 사람이 같은 인물인걸 몰랐다.
그리고 또 몇 년후 맨인블랙을 보면서 두명의 주인공 보다 인상깊었던 외계인이 있었다.


이 연기도 빈센트 아저씨였다. 역시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주에 쥬라식월드를 보는데 언뜻 풀메탈재킷의 이미지가 스쳐서 찾아보니...
내가 좋아하던 대부분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였다.


개인적으론 쥬라식월드에는 안나왔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무브 투 인천

재작년 10월 창천동으로 이사온 후 재밌는 일이 참 많았다.
짧았지만 몰래 연애도 했고, 큰 집에서 재밌게 지냈다.
그러다 뭔가 어울리지 않는 연남동으로의 이사...
매일 스트레스를 받다가 드디어 뜬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무브 투 인천.

2015년 6월 24일 수요일

일을 선택할 때의 기준

생각해 보니 그렇다.
프로젝트를 할 때 늘 철학이 있는 사람보고 했다. 과업자체로 일할 땐 돈을 보고 했다.
즉, 일을 선택하는 기준은 분명하다.
그 철학에 동의하거나, 돈을 벌기 위함이란 뜻이다.
잘 알고 있으면서 최근 실수가 있었다. 계산을 못한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측은지심이 발휘되었는지 모르겠다. 한심스럽게 말이다.

2015년 6월 19일 금요일

합정동 우락부락

2010년 합정동에 우락부락이란 숯불소갈비집이 생겼다.


2015년 우락부락은 사라지고 호랑이고기라는 이름이 되었다. 



2015년 5월 24일 일요일

갑자기 생각난 몇 가지

이란 사람들을 만났을 때 아랍어를 쓴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터키어를 썼다.
아랍인들은 식사 시간이 꽤 긴편이고 전통적으로는 점심식사시간이 2시 이후다. 그래서 저녁도 늦게 먹는다.
저녁 늦게 먹는 사람들 하면 스페인사람들. 그들은 저녁식사를 밤 9시 이후에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점심시간이 두시간 넘고, 스페인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낮잠시간이 있다. 그걸 시에스타라고 한다. 관공서에서 금지한다는 기사를 보긴 했으나...많은 사람들이 시에스타를 지킨다.
낮잠은 더운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행동이라 4계절이 있는 나라에서는 여름에 해당할 때 생긴 문화가 있다.
점심식사를 거하고 푸짐하게 먹는 나라는 드물다.

2015년 5월 8일 금요일

Idol

나에게는 인생의 등대 같은 다섯명의 아이돌이 있다.
아이돌 상호간 서로 알지 못하고, 이 다섯명을 공통적으로 다 알고 있는 친구도 없다.
즉, 나의 아이돌은 내 인생의 흐름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내가 만나는 친구가 아무리 오래 되었다고 해도 그 시기에 생긴 아이돌과는 교류가 없기 마련이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의 품위를 지켜주는 것이 동료...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 예술...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가기에 자기에게 진실해지지 않으면 완전을 바라볼 수 없다는...
넓은 품을 갖는 건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행동...
자길 포함하여 이웃하는 사람들도 변화시키지 못하면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것은 허상...

이런 메시지.
나의 아이돌 다섯명은 진짜 멋진 사람들이 분명하다.

나의 까다로움

1) 커피는 향때문에 마시는데 꿀꺽삼키면 부질없다. 그래서 아이스드커피는 안마심.
2) 식당에서 자리 잡을 땐 입구 쪽 자리를 선호한다. 누가 밥 먹는 데 지나가는 번거로움이 싫다.
3) 플라스틱 그릇을 쓰는 식당에선 밥 맛이 없다. 먹기 싫기도 하고.
4) 우산 쓰는게 싫다. 그래서 왠만하면 그냥 맞는다. 같이 다니는 사람이 안절부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오는 날은 왠만하면 혼자 다닌다. 귀찮아서다. 
5) 터틀넥을 입은 사람을 보면 내 목이 가렵고 숨도 막힌다.
6) 올해로 30년째 같은 상표 같은 사이즈의 청바지를 입는다. 최근 몇년은 다른 상표도 샀지만 그건 그냥 옵션같다.
7)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꼭 살빠졌냐고 묻는다. 30년간 몸무게는 74-78사이를 유지했다. 살빠진게 아니라 노화임. 그냥 늙어보이는거다. 

그외에도 너무 복잡하고 일관성 없는 기준같은게 있다. 누구한테 맞춰달라고 하는건 불가능하고...설명하기도 힘들어서 아주 좁은 인간관계만 유지한다. 까다롭기 때문에 친구 만나기도 쉽진 않다. 이런거 잘 수용하며 여태 잘 살아왔으니 바꿔 볼 생각 따윈 한 적도 없다.

2015년 5월 7일 목요일

상상마당_데일리 애니메이션

상상마당에서 4년째 데일리 드로잉 강좌를 열고 있다.
"매일"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풀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고 본다.
그 가치를 설명하기 위한 문장일 수도 있고, 영화나 스토리일수도 있겠다.
데일리 드로잉은 매일의 나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된다.
매일 한 장의 드로잉을 채워가면서
나는 왜 지금을 드로잉하고 싶었는지...
오늘은 왜 건너뛰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왜 타인에게 보여지는 드로잉을 하고 있는지...
등등.

그렇게 하루 하루 쌓여가는 과정에서 개인이 느끼는 감정이야 몇 마디 말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데일리 드로잉에 참여한 사람들이 종강에 다가가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거나, 대단한 작업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좋아서 하는 문화행위에 대한 자기해석이 생기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데일리 드로잉은 하루에 한장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약간 다른 방식의 욕심이 생겼다.
만약 하루에 두 장 그린다면?
그럼 드로잉을 움직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상상마당에서 애니메이션 강좌를 열었다.

스토리를 상상하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연출방식을 정했다.
1시간 정도는 애니메이션 영상편집을 강의했지만 그건 도구에 불과했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드로잉이 머리속에선 늘 움직이는 상징들이었다면...
애니메이션이 가능했다.

우선.
강혜진님이 작업한 영상이다.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서 개인이 느끼는 압박감이나 상처따위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 이야기를 이미지로 상상하고 본인이 작곡한 곡을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했다.

Untitled from AN20 on Vimeo.

강혜진님은 두 작품을 만들었는데 다른 한 작품은 문틈으로 훔쳐본 타인의 모습이다.

Peep from AN20 on Vimeo.

강우영님은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기억하면서, 상여 행렬 장면에 애니메이션을 삽입했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손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where is he from AN20 on Vimeo.

최은별님은 아트토이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다. 이 작업은 토이작업을 하면서 하나의 세계관으로 일관된 주제의식을 투영해 내고 싶었던 마음이 담겨 있는 듯 하다.

ceb from AN20 on Vimeo.

이선경님은 스스로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스토리다. 왜 나는 난데...라는 질문을 반복하면서 작업했다.

Me, run from AN20 on Vimeo.

김인정님은 작품을 완성하진 못했다. 그래서 콘티만 공개. 본인이 가장 무서워하고 피하고 싶었던 내용을 희화화하여 털어내고 싶었던 작업.


데일리 애니메이션은 8주 강좌로 구성되어 있다. 애니메이션을 8주만에 만든다는 것 무리한 것임엔 분명하다. 그래서 퀄리티 보다는 표현하고 싶어하는 스토리의 시각화에 중점을 두었지만 작업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만약 강좌가 길었다면 나아질까? 아닐 것 같다. 오히려 늘어지는 것 보다 이 경험으로 만들어진 자신의 작품을 보면서 '두 번째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그것이 일상을 스스로 소외시키지 않는 매일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2015년 4월 6일 월요일

어제의 꿈

어제 꿈은 참 뒤숭숭했다. 고등학교 졸업이다. 더 이상 이 학교에 나올 수 없다고들 했다. 내가 고등학생인지는 잘 모르겠고 그 학교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현재의 친구들이 고등학교 친구로 등장하심. 몸이 아파서 이런 꿈을 꾼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벽을 툭툭 치면서 그 동안 이 건물에 얽혀 있던 기억을 털어냈다. 기억이 벽에서 툭...툭...하면서 떨어져 나왔다. 좋든 나쁘든 이 기억도 함께 가져가야한다며 계속 벽을 쳤다. 맨 뒷자리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데 그는 죽은 것 같다며 울먹였다. 그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 난 남학교만 다녔는데 하나가 나와서 괜찮다고 했다. 죽은지 오래 되었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그럼 이 기억은 너 가지라고 하며 하나에게 건넸다. 하나가 정말 빠른 걸음으로 도망쳤다. 그 뒷모습이 너무 웃겨서 큰 소리로 웃었다. 고무신이 말했다.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난다" 그 말도 왜 그렇게 웃긴지 더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 교실을 둘러봤다. 그런데 웃기게도 씰룩밴드 멤버도 앉아 있고(뭔가 먹는 것 같다), 강군은 선생님이었다. 졸업식의 산만함을 매우 불쾌하게 여기는 얼굴이었다. 아무 표정이 없었는데 난 알것 같아서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내 옆에는 걍산이 있었다. 신발을 샀다며 자랑했고 난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지현이, 현주, 예선이, 인어공주는 나처럼 교실 벽을 툭툭치면서 이거 진짜 되는거냐고 물었다. 강군이 급식시간인데 오늘 점심은 허니버터칩이라고 말했다.

꿈에서 깼는데 정신없는 와중에도  '나는 급식을 받아본 적이 없는 세대인데 왠 급식이냐'고 반문했다. 개꿈이기에는 모두의 행동이 너무 정교하고 선명했다.

2015년 4월 3일 금요일

이 노래 알아? 베이비 컴백!

플레이어의 베이이 컴 백.

어렸을 때 자주 듣던 곡이고 좋아했었다.

아마 이종사촌형의 영향일거다.

가사...완전 직설적이어서 좋군.



2015년 3월 20일 금요일

청년창업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는 청년들의 창업을 보면
착한(?)일이나 공익을 우선하는 것을 계속 강조한다.
우리사회에 도움되는...
인권과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그런 제안들이 넘쳐난다.

난 그런거 말고...
나한테 엄청 필요한 것이거나, 엄청 재밌는게 끌려...
창업은 그렇게 소비자의 필요를 유도하거나 만들어가야 하는 듯.

사회가 못되먹었는데 착한일을 찾으니 안어울리는 듯.
청년이 착한일 하는 걸 막자는게 아니라니까.
그들의 세계가 그리 도덕적이지 않은데 왜들 이러냐구.

2015년 3월 17일 화요일

10년 후 라는 말

아주 가까운 미래를 이야기 할 때 10년 후...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된다.
이건 10대에는 어림없는 말이다. 살아온 세월에 비례하여 너무 먼 미래니까.
친구와 이야기 하다보면 지금 말하긴 좀 어려울 것 같고,
10년 후가 되면 말해보고 싶은 주제들이 있다.
대충 10년 정도 묵히고 나면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이 있지 않은가.
그땐 그랬어...라고 약간 서로 비웃으면서 하는 말들이 재밌기도 하다.
그런데 그 전제는 항상 10년 후에도 좋은 관계일 때 가능하다.
인간관계는 각종 이해관계와 얽혀 있기 마련인지라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본다.
10년 후에 나눠야지...라고 묻어 두었던 주제를 정작 10년 후에 얘기하는 친구는 많지 않다.

2015년 3월 16일 월요일

나는 무엇을 팔고 살아왔는가.

만났을 때 늘 엉뚱하다고 생각하던 대안학교 교사가 한명 있다.
이 짧은 소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나는 학교밖청소년의 이야기를 판다.
그들의 고통, 그들의 어려움을 그럴듯한 글로 꾸며 공익재단이나 정부, 후원자의 재정지원을 받는다.
10여년간 이 일을 하고나니 짧지않은 시간동안 학교바깥의 청년, 청소년을 만나왔다는 사실만이 나의 유일한 자산으로 남았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파는 것만이 내가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었다.
세월이 더 지나면 그들의 대변자를 자처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훨씬 더 많이 팔게 되겠지. 돈을 받기 위해서, 사회적 인정을 받기위해서 그들이 너무나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큰소리로 외치겠지.
부끄럽고 미안해도 어쩔 수가 없겠지.


나는 무엇을 팔아먹고 있는가...
뭔가 갑자기 부끄럽다.



2015년 3월 13일 금요일

향기

친구의 아기를 품에 안았을 때 내 얼굴에 작은 이마를 댔다.
기분이 진짜 좋았는데 그때 '아기 냄새 진짜 좋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아기와 떠나고 났는데 아기에게 발라주었던 로션을 두고 갔다.
손에 짜서 발랐다.
냄새를 맡았는데 아기냄새가 났다.
그냥 로션의 향일텐데 아침에 안고 있었던 아기의 이마에서 나던 향기의 기억이다.

2015년 2월 27일 금요일

오랜만에 엽서를

받았다.

우연인지 모르겠으나 하필 비슷한 시기에 외국에 있는 친구들의 안부를 듣게 된다.
치앙마이에서 온 그림와 편지...
피렌체에서 온 엽서.
고투는 며칠전 전화해서 다음주에 미얀마에 간다며, 뭐 사다드려요? 라고 한다.
내가 미얀마에서 뭐 살게 있겠냐. 랭군에게 안부나 전해달라고 했다.
브리즈번에 사는 누나는 얼마전에 한국에 들어왔다. 긴 휴가란다.
여행을 떠난 부부는 8개월만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을 육로로 정했다는 글을 봤다. 남 아메리카의 끝에서 갤로퍼로! 멋있다.
콜롬비아로 갔던 친구도 잠시 내한을 결정했다.

묘하다. 다들 약속한 듯 연락이 온다.

2015년 2월 17일 화요일

다음은 진짜 다음이 있을까.

오늘 아침에 우연히 네이버가 부동의 1위인 이유에 대한 슬로우뉴스 포스팅(http://slownews.kr/37601)을 보게되었다. 내가 삼성과 네이버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이 얻는 추악하고 부당한 이득도 그렇고 과한 잘난체가 꼴 같지 않아서다. 그리고 공정한 게임을 하지도 않는다. 반면 패스트 팔로워라고 하는 측면은 인정한다. 어차피 창의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사회에 살면서 영리하게 따라하고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가는 전략은 꽤나 성공적인 방법을 선택했다고 본다. 그 이후에 기업의 도덕성이 문제인거지. 아무튼...

갑자기 십년전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온라인에서 IT기업에 종사하는 직원과 10대를 연결해 주는 사업을 론칭하면서 사전연구를 맡았다.  온라인 멘토링이기 때문에 온라인의 특징과 오프라인 멘토링의 교집합을 찾아야했다. 그 기준으로 매뉴얼을 만들어야 했던 연구였다.  하지만 그 연구는 연구비를 뱉어내는 참담한 결과로 끝이 났으니 그 기억은 떠올리고 싶진 않다. 그때 연구 보고서 1차본을 내고 IT기업의 직원들에게 검토의견을 부탁했다. daum.net 직원들이었다. 그때 다음 직원들이 우리 연구진들을 무시하는 발언들이 생각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매뉴얼의 한 부분에 한국사회의 청소년은 인터넷카페 활용 혹은 활동으로 정보를 교환하고...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 문장에 한심하다는 듯한 코멘트였다. 사실 표정이 더 예술이었지만 글로 옮기고 싶진 않다. 내가 들었던 말은 "여기서 카페는 커피마시는 곳인가요. 이게 뭡니까. 온라인 커뮤니티도 아니고..."라고 비아냥 거렸다. 그때 이 작업에서 손떼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내가 왜 변명을 해야하나 싶기도 했고 무슨 답을 해야 좋을 지 몰라서 그냥 아무 말도 안하고 그 회의는 끝났다.

다음의 직원들은 다음카페란 자사의 "브랜드"인데 이 연구는 연구답게 객관적이어야 하니 보통명사로 썼으면 좋겠다는 표현을 그렇게 한거다. 쿨한것을 넘어서서 자의식 과잉이었다. 당시 그 자료를 쓰면서 카페란 표현이 적합할 것인지 당연히 찾아보고 쓴 것이었다. 그런 모든 설명을 연구보고서에 써야할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비아냥 섞인 지적을 받으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바타AVATAR라는 영화가 나오기 훨씬 전 일이다. 아바타는 대체 언제부터 쓰였는가. 평화의 신인 비슈누가 화신으로 존재하면서 아바타라AVARARA라는 육체를 얻어 인간세상의 평화를 유지한다. (지금이야 아바타라는 말을 하면 영화를 먼저 떠올리거나, 온라인상으로 구현되는 캐릭터라고 이미지가 생길테지만) 그 아바타라를 소설에서 처음 사용했다.  Snow Crash라는 제목의 소설http://en.wikipedia.org/wiki/Snow_Crash은 사이버펑크 장르소설로 네트워크상에서 유통되는 통화와 경제적 재구조화 상황을 묘사된다. 이때 네트워크상에 존재하는 아바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1992년에 이런 상상력을 근거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사례는 린든 랩의 세컨드 라이프http://secondlife.com다. 하지만 세컨드 라이프 보다 훨씬 먼저 조지 루카스는 아바타를 온라인으로 구현했다. 버추얼 리얼리티에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를 나눈다. 아바타가 접속하면 어느 특정공간으로 하이퍼텍스트를 이용해 이동하고, 그 공간에 모이면 정보교류가 시작된다. 이때 아바타가 모여든 공간이 "카페"다. 다음카페가 그런 이유로 카페라는 표현을 쓰게 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만약 우연이라해도 "카페"란 보통명사가 동시대 온라인상에서 통용될 만큼의 개념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즉, 다음카페가 자사의 브랜드니까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비웃을 필요까지는 없다.

왜. 이유가 뭘까. 당시 다음카페는 국내 최대의 커뮤니티 서비스였던게 분명하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연구가 있던 해에 네이버에서 카페를 만들었다. 참 시끌시끌했다. 다음의 브랜드를 왜 따라서 네이버카페라는 표현을 쓰느냐 부터 시작해서 상도를 들먹이거나 법적 검토를 마다하지 않았다. 즉, 카페는 우리꺼야...라는 시각이다. 내가 보기엔 루카스꺼다. 플랫폼을 만들자고 시작했던 다음이 flat을 부정하고 form만 구축하는 느낌이었다. 결론은 어떻게 되었는가. 패스트 팔로워였던 네이버의 압승이다. 최근 다음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중장년이나 노년층인데다 전반적인 활동이 부진해 보인다. 네이버를 그리 선호하지도 않고 거의 이용하지도 않지만, 당시 다음에서 나에게 주었던 1차본 연구보고서에 대한 코멘트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다음이 자의식 과잉으로 이렇게 주저 앉겠구나'라고 말이다.

2015년 1월 31일 토요일

유스보이스 컨퍼런스 14,15

2002년, 13년전이다.
유스보이스를 시작했을 때, 청소년이 무엇을 하든 직접 지원해 주는 것이 없었다. 학교의 교사를 통하거나, 청소년센터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늘 간접지원일 뿐이었다.
덜 성숙하기 때문에...
아직은 직접지원하기엔 위험부담이...
스스로 통제력을 가지지 못해서...
등등의 이유가 많았다.
2015년 현재 청소년이 직접 공공기금을 지원받는 것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저런 사연들이 많다.
영화를 찍겠다고 나섰던 10대가 150만원이란 거금(?)이 입금되고
"우리 맘대로 써도 된다고"로 해석하고는 쇼핑센터에 가서 옷사고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밥사먹느라고 다 써버리기도 했다.
계약서를 충분히 읽어보고 예산 사용의 원칙을 아무리 설명해줘도 그랬다.
정산할 때 개인적 용도로 쓴 돈이 회수되어야 한다는 걸 알고는 멘붕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청소년은 지원금을 정직하게 쓰고 투명하게 정산했다.
정산 과정도 최소화 했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제출해 내곤 했다.
생각해 보면,
어른들은 성숙하기 때문에 공익적 목적으로 자본을 굴려 사기를 치나?
어른들은 막상 공공기금을 보면 욕심이 사라지기 때문에 가짜 서류 만들어서 횡령을 하나?
실제로 이런 문제는 청소년에게 있기 보다 어른들에게 더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청소년을 직접지원할 수 없다는 건,
편의상 법적책임을 묻기 위한 장치정도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이유들이다.
유스보이스가 청소년을 직접지원하겠다고 나섰을 때 우려의 소리도 적지 않았다.
대체 언제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3년이 지났다.
컨퍼런스를 거의 8년간 운영하면서 10대가 연사로 나서는 경험은 처음이다.
뭔가 상쾌하고...머리가 맑아졌다.
이거다 싶었다.
무슨 타이틀 걸고 상준다고 몰려드는 곳엔 10대가 우글거린다.
교사의 지도로 시나리오 써서 앵무새처럼 떠드는 10대는 참 많이 보였다.
전혀 청소년답지(청소년 다운게 뭔지는 진짜 모르겠지만) 않았고...어른을 흉내내느라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보상이 청소년을 그런 환경에 노출시켰고,
그 내용을 주도하는 어른들이 원하는 걸 아이들이 말했다.
매스컴도 한 몫을 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경험없이 공허한 지식이 난무했다고 생각했다.
유스보이스 컨퍼런스도 그러면 어쩌나 엄청나게 경계했다.
그래서 미디어교육자와 청소년 컨퍼런스를 이틀로 나눴다.
혹시 모를 오염을 걱정해서였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13년전 그렇게 뜯어말리던 청소년 당사자를 직접 지원하겠다고 했던 용기는 어디갔던가 싶었다.
괜히 나눴다. 유스보이스에 오는 10대를 믿지 못했다는 것을 깊이 반성했다.
이번 컨퍼런스는 미디어교육 현장의 10대였다.
사전제작지원의 목소리가 담기지 못했다는 것이 계속 아쉽다.
오늘 하늘 참 맑다.
찬 공기도 신선하다.

2015년 1월 30일 금요일

기록을 위한 기념사진


2013년은 친구들과 매우 즐거운 한 해 였다.
합이 좋았다.
Llmado공간을 만들고 운영했고, 아지트로 기능했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이유로 그곳을 떠나야했다.
부부였던 멤버가 갈라서게 되면서 그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가 눈치를 보게 되었다.
적당한 거리에서 문화를 공유해도 잘 유지되기 힘든게 커뮤니티가 아니던가.
그런데 문화와 예술행위를 위해 모였다면 피곤함이 엄습하는 그 공간에 오고 싶지 않아했다.
공간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놓여있던 모든 것을 옆집에 주거나 버리고 난 뒤.
그냥 이 공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남겨진 두개의 의자에 앉았다.
그 의자는 집으로 가져가기로 했기 때문에 버려지지 않았다.
버려지지 않은게 의자라는게 또 묘한 느낌을 주었다.

2015년 1월 27일 화요일

똑똑도서관

똑똑도서관 생각하면 이런 저런 추억이 스친다.
후끈밤
친구들이 괴산에 학교를 만들었다. 신기학교. 마을에 학교를 만들고 운영한다는건 몸도 마음도 많이 써야 하는 꽤 버거운 일이다. 흔쾌히 괴산을 찾아갔고, 함께 일하거나 옆에서 뒤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싶었다. 그때 제안한 것이 낭독회. 한달에 한번씩 신기학교에 모여서 자기 글을 낭독하자고 제안했다. 사람들이 모일까? 낭독하려면 글을 써와야 하는데 부담스러울까? 제안했던 낭독회는 다른 작가의 글이 아니라 사소해도 자기 글을 자기 목소리로 읽는 것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다. 신기학교에서 일하던 젊은 친구가 "좋아요. 해요. 이름은 후끈 달아오르는 밤이 좋겠어요"라고 했다. 나도 좋았다. 자기 글을 읽으려면 창피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테니 후끈할것이고...당시 신기학교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촛불을 켜야 했다. 일렁이는 촛불아래서 글을 읽느라 불가까이 종이를 가져가는 그 집중하는 모습이 좋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후끈밤이다. 첫모임을 했다. 공지를 했어도 누가 오겠는가. 즉흥적으로 같이 가자고 한 친구 한명인 염짱과 함께 두명이 모였다. (염짱은 그렇게 얘기했건만 첫 모임에 글을 써오지 않았다...대담하다. ㅋㅋㅋㅋ) 아무튼 어색하고 애매하지만 후끈밤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한다는 전제가 없었기 때문에 진짜 후끈하고 싶은 사람들만 모였다. 네달 다섯달이 지났을 때 후끈밤에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았다. 아마 평균 20여명은 늘 넘었던 것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글이 본인의 입으로 낭독되고, 작은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기울이는 것이 정말 보기 좋았다. 2006년 어느날 후끈밤에서 읽으려고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똑똑 도서관 이야기를 썼다. 천천히 읽었지만 힘있게 말했다. 그래서 똑똑도서관 첫번째 시도는 괴산에서 일어났다.

flyshoe.com
미디어교육 프로젝트 팀 [헤모]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98년에 만들어져서 04년까지 했다. 6년정도 조직이 운영되었지만 쿨하고 멋진 조직실험이었다. 헤모의 웹사이트는 하루 평균 이천여명의 사람들이 오갔고, 실제로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하루 하루를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들의 수가 이백명이 되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무슨 포털사이트도 아니고 교육 프로젝트의 홈페이지가 그렇다는 건 당시 어떤 교육기관의 홈페이지보다 사용자 수가 월등했고 내용이 채워져 갔다. 04년 약간 갑작스럽게 팀을 해체하게 되었다. 당분간 웹을 좀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06년 어느날 갑자기 개인용 홈페이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flyshoe.com으로 도메인을 구입한 후 다음날 오픈했다. 그냥 내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 메뉴 중에 "plan B"가 있었다. 플렌비는 대안적 생각을 쓰고 싶어서 만들었다. 보통 후끈밤의 낭독은 그날 쓰고 버렸다. 낭독한 내용을 사람들이 잘 듣는 것으로...구전으로...끝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똑똑 도서관은 왠지 남겨두고 싶어서 집에와서 흰 종이를 하나 들고 쓱쓱 낙서처럼 그림을 그리고 플렌비 메뉴에 똑똑 도서관을 만들자는 후끈밤 낭독글을 업로드 했다. flyshoe.com은 개인 홈페이지이긴 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글에는 새로운 말을 첨가했다. 마음껏 가져다 쓰고 퍼날라도 문제삼지 않겠다. 저작권 없고 출처도 밝힐 필요없다. 그걸로 충분했다. flyshoe.com을 만들때 느낌하고 비슷했다. 그냥 쿨하게...심심해서...힘들면 바로 끝내면 된다...뭐 그런 생각이었다. 지금 파주 똑관장은 헤모 해체시기의 마지막 멤버였고 flyshoe.com에 올라온 플렌비에서 똑똑 도서관의 제안서를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멋지게 해냈다. 역시 생각하는 사람은 힘이 없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힘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어느날 갑자기 홈페이지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밤 11시에 문을 닫아 버렸다.

얼마전 똑똑 도서관 전국 관장단 회의가 있었다. 정말 즉흥적으로 모든 것이 준비되었는데...현장의 합은 완벽에 가까왔다. 신기했다. 시키는 사람이 없이 다들 알아서 뭔가 하는 건 즐거운 일이 분명하다.

2015년 1월 20일 화요일

오늘을 살아야하는 이유

- 삶이 재미있다는 건 예측이 불가능한 우연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예측이 불가능한건 불안을 만든다. 논리비약이기 하지만 불안은 삶을 재미있게 만들어준다는 말이기도 하다. 만약 모든 것이 예상 가능하다면 얼마나 외롭고 심심하겠냔 말이지. 
- 어려서 개미와 베짱이를 읽으라더니 개미처럼 살라고 말하던 어른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베짱이는 한 철을 산다. 인간은 모두 각자의 성장속도가 다르게 태어나고 자란다. 
국민학교때 나는 마스게임이란것의 재미를 도통 모르겠더라. 멀리서 보면 멋있을 수 있겠으나, 그걸 감상하는게 아니라 교장등에게 보여주기 위해 동원되었다는 느낌. 그런이유로 단 한번도 마스게임에 나간적이 없다. 빠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계속 틀리면 내가 원하는대로 꼭 빼주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내 선택이 아닌 행동을 하고 있다면 스스로 초라함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 미래의 준비없이 대충사는게 아니라 오늘을 살자는 것이 요지다. 사람들은 오늘을 살지 않고 알 수 없는 내일을 “불안”해 하며 산다. 오늘을 사는 이유가 허상에 가까운 내일을 위한 제물이라면 삶이 얼마나 고단하겠는가. 예측불가능한 내일을 잘 수용하고, 서로 다른 성장속도와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을 살아야 한다. 









 

2015년 1월 17일 토요일

너그럽게

나의 아이돌과 대화를 하다가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저는 너그럽게 살고 싶거든요"
웃기고 자빠졌다. 너그럽다니...그런 여유가 있는 척을 아직도 하고 있었다. 
아직 정신 모차린것이 분명하다. 
너그럽다는 건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이 사용해야 하는 말이다. 

2015년 1월 8일 목요일

상실감

살면서 여러번의 상실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상실감이 있다는 건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 마음이 아픈걸 나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여러번의 충만함도 경험했다. 물론 그건 기쁘고 즐겁다. 그런데 충만함이 빠져나가는 걸 상실이라고 느낀다는거다. 즉, 상실감을 느끼는 건 충만했던 적이 있다는 뜻이므로 슬퍼할 게 아니란 말인거지.

유스보이스 컨퍼런스


잘난 척이야 늘 하고 싶다.
박수도 받고 싶고 말이다.
일부러 겸손하려고 할 필요는 없었는데 진심으로 나서서 떠드는건 싫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유스보이스를 하면서도 난 늘 그랬다.
나서긴 싫었고, 이름이 나오는 것도 늘 불편했다.
그냥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자 삶인데...정도지 이런 거 있으니 와서 보시오...라고 하긴 싫었다. 좋으면 찾아오겠지 싶었달까.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른 국면으로 들어섰다.
유스보이스에는 지금 젊은 미디어작업자들이 대거 들어왔고,
당연히 나보다 훨씬 좋은 교육방법론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리포트하고 싶어졌다.

나한테 유스보이스 컨퍼런스는 그런 느낌이다.

2015년 1월 1일 목요일

의도와 비의도

의도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게 아니다. 그래서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은 참 한심하다. 문제를 일으킬 땐 오히려 의도가 있으면 해결하기 쉽다. 행동이 수정되는 것은 그 의도에 대한 논리나 이성적 판단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면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의 의도가 아닌데도 그 행동을 했다면 문제의식 자체가 없거나, 오랜시간 축적해온 문화일 때가 대부분이다. 즉 자기행동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알려주더라도 바뀌는데는 수십년...아니면 명이 다할 때까지도 고치기 힘들다. 마치 의도치 아니한 것이므로 관용이 베풀어지는 것을 당연히 한다면 언제든 그 문제는 반복해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