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일 화요일
시다의 꿈을 다시 찾아 듣다가
집에 오는 길에 간판에 시다를 구한다는 안내가 써 있었다. 같이 걷던 사람이 물었다.
"저기 써 있는 시다가 그 시다인가요?"
시다가 그 시다냐고 묻는 말이 어딘가 어색했지만 지금 쉬이 읽히는 단어가 아님은 분명했고,
영화 친구에서 "내가 니 시다발이가?"라는 대사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난 맞다고 대답했다.
갑자기 여러가지 생각이 겹쳐 떠올랐다.
노동의 새벽은 나의 20대 사회적 분노가 극에 달해있을 때 읽었던 시집이다.
분노는 충동적으로 일으키는 화냄과 달랐기 때문에 감성적일 여유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기에 휘발유를 부었던 것이 감성코드였고 그 대표적인 매체는 시 였더라.
학생운동, 민중운동, 노동운동...또는 혁명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대중과 만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겠지만 문화운동만큼 맨 앞에 나서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딱 잘라내서 구분할 수는 당연히 없을테지만 말이다.
한 동안 내 의지와 무관하게 노래패를 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이라면 발끈했을 테지만 당시 별로 내키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들이 쌓여있었더 때라 어쩔 수 없었다.
난 이 노랠 우연히 집회현장에서 듣고 좋아했었는데 대부분 노래패에서 대중적으로 불리는 곡은 아니었다. 아련한 기억속에는 공연을 위한 선곡에서 최종적으로는 꼭 빠졌다. 지금 다시 들으니 시도 멜로디도 생경하다.
20년이 훨씬 넘어서는 이 시의 주인에 대한 환상도 사라졌고, 작곡한 사람에 대한 알 수 없는 기대감도 깨졌다.
그냥 그건 내가 만든 환타지였다.
당시 20대 젊은이의 분노에 공감했을 순 있겠지만 다시 들어보니 시어는 진부하고 멜로디는 시다의 슬픔을 명령하는 것 같다. 어느 한 시대를 노래했으니 그렇겠지...라고 생각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선동을 위한 자극이 패턴으로 읽혀지자 불편했다. 그 이유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전함 포템킨은 철저한 선동의 도구였음을 알 수 있지만 여전히 지금의 영화에 영향을 주며 언어가 되었다. 아래 링크는 새로 발매하는 DVD이거나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한 트레일러 같은데, 세련된 컷 편집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첫번째 트레일러를 보면 딱 적합한 예라고 까지 말할 순 없지만, 광고나 영화예고편의 대부분은 포템킨의 자매영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것 같다.
노예생활의 고단함은 백인들의 예배당에서 시작해 소울과 리듬앤 블루스가 되었다.
Super star는 많은 사람들이 존경을 담아 부르는 곡이다.
그런데 정작 Luther Ronzoni Vandross라는 이름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슈퍼스타케이 따위의 가수 오디션같은 데도 참 자주 등장하는 곡.
킹스턴타운에서 시작한 레게는 자메이카 민중의 가난과 사회적 메시지를 끊임없이 실어나르며 대중음악의 중요한 메시지다.
mm.....
80년대 집회현장을 영상으로 담고 있었을 때다.
택시노조 집회현장을 촬영하러 갔을 때 다 같이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한 곡 하자는 진행자의 말이 있었다.
대부분 알고 있는 노래가 멜랑꼴리한 노래라서 부르기 민망하자 사람들이 선택한 노래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즉, "새마을 노래"였다.
참 재밌게도 집회현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데 가사도 그렇고 참 잘 어울렸다.
독재자의 계몽을 담은 캠페인송이나 군가는 민중가요와 거의 흡사했었다.
촬영후 편집실에서 다들 낄낄대며 웃었다. 허나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것인지 그 편집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2년 뒤에 만났을 때 세상을 보는 관점이 많이 변해있었다.
민중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 노래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목표였을테고,
민중의 아픔과 대안적 삶을 텍스트로 묘사하고 기록하는 것이 노동문학 작가라 칭하던 시인과 소설가들의 태도였을것 같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삶에 영향이 미미하다.
예술로써의 영감을 남긴것도 없다.
최소한 그 문화적 형식은 남아 있을 법도 한데 싶지만 찾아보기도 힘들다.
아마 그 진짜 이유는 민중의 정서도 아픔도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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