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31일 토요일

유스보이스 컨퍼런스 14,15

2002년, 13년전이다.
유스보이스를 시작했을 때, 청소년이 무엇을 하든 직접 지원해 주는 것이 없었다. 학교의 교사를 통하거나, 청소년센터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늘 간접지원일 뿐이었다.
덜 성숙하기 때문에...
아직은 직접지원하기엔 위험부담이...
스스로 통제력을 가지지 못해서...
등등의 이유가 많았다.
2015년 현재 청소년이 직접 공공기금을 지원받는 것이 얼마나 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저런 사연들이 많다.
영화를 찍겠다고 나섰던 10대가 150만원이란 거금(?)이 입금되고
"우리 맘대로 써도 된다고"로 해석하고는 쇼핑센터에 가서 옷사고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밥사먹느라고 다 써버리기도 했다.
계약서를 충분히 읽어보고 예산 사용의 원칙을 아무리 설명해줘도 그랬다.
정산할 때 개인적 용도로 쓴 돈이 회수되어야 한다는 걸 알고는 멘붕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청소년은 지원금을 정직하게 쓰고 투명하게 정산했다.
정산 과정도 최소화 했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제출해 내곤 했다.
생각해 보면,
어른들은 성숙하기 때문에 공익적 목적으로 자본을 굴려 사기를 치나?
어른들은 막상 공공기금을 보면 욕심이 사라지기 때문에 가짜 서류 만들어서 횡령을 하나?
실제로 이런 문제는 청소년에게 있기 보다 어른들에게 더 많이 일어나는 일이다.
청소년을 직접지원할 수 없다는 건,
편의상 법적책임을 묻기 위한 장치정도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이유들이다.
유스보이스가 청소년을 직접지원하겠다고 나섰을 때 우려의 소리도 적지 않았다.
대체 언제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3년이 지났다.
컨퍼런스를 거의 8년간 운영하면서 10대가 연사로 나서는 경험은 처음이다.
뭔가 상쾌하고...머리가 맑아졌다.
이거다 싶었다.
무슨 타이틀 걸고 상준다고 몰려드는 곳엔 10대가 우글거린다.
교사의 지도로 시나리오 써서 앵무새처럼 떠드는 10대는 참 많이 보였다.
전혀 청소년답지(청소년 다운게 뭔지는 진짜 모르겠지만) 않았고...어른을 흉내내느라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보상이 청소년을 그런 환경에 노출시켰고,
그 내용을 주도하는 어른들이 원하는 걸 아이들이 말했다.
매스컴도 한 몫을 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경험없이 공허한 지식이 난무했다고 생각했다.
유스보이스 컨퍼런스도 그러면 어쩌나 엄청나게 경계했다.
그래서 미디어교육자와 청소년 컨퍼런스를 이틀로 나눴다.
혹시 모를 오염을 걱정해서였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13년전 그렇게 뜯어말리던 청소년 당사자를 직접 지원하겠다고 했던 용기는 어디갔던가 싶었다.
괜히 나눴다. 유스보이스에 오는 10대를 믿지 못했다는 것을 깊이 반성했다.
이번 컨퍼런스는 미디어교육 현장의 10대였다.
사전제작지원의 목소리가 담기지 못했다는 것이 계속 아쉽다.
오늘 하늘 참 맑다.
찬 공기도 신선하다.

2015년 1월 30일 금요일

기록을 위한 기념사진


2013년은 친구들과 매우 즐거운 한 해 였다.
합이 좋았다.
Llmado공간을 만들고 운영했고, 아지트로 기능했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이유로 그곳을 떠나야했다.
부부였던 멤버가 갈라서게 되면서 그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가 눈치를 보게 되었다.
적당한 거리에서 문화를 공유해도 잘 유지되기 힘든게 커뮤니티가 아니던가.
그런데 문화와 예술행위를 위해 모였다면 피곤함이 엄습하는 그 공간에 오고 싶지 않아했다.
공간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놓여있던 모든 것을 옆집에 주거나 버리고 난 뒤.
그냥 이 공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남겨진 두개의 의자에 앉았다.
그 의자는 집으로 가져가기로 했기 때문에 버려지지 않았다.
버려지지 않은게 의자라는게 또 묘한 느낌을 주었다.

2015년 1월 27일 화요일

똑똑도서관

똑똑도서관 생각하면 이런 저런 추억이 스친다.
후끈밤
친구들이 괴산에 학교를 만들었다. 신기학교. 마을에 학교를 만들고 운영한다는건 몸도 마음도 많이 써야 하는 꽤 버거운 일이다. 흔쾌히 괴산을 찾아갔고, 함께 일하거나 옆에서 뒤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싶었다. 그때 제안한 것이 낭독회. 한달에 한번씩 신기학교에 모여서 자기 글을 낭독하자고 제안했다. 사람들이 모일까? 낭독하려면 글을 써와야 하는데 부담스러울까? 제안했던 낭독회는 다른 작가의 글이 아니라 사소해도 자기 글을 자기 목소리로 읽는 것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다. 신기학교에서 일하던 젊은 친구가 "좋아요. 해요. 이름은 후끈 달아오르는 밤이 좋겠어요"라고 했다. 나도 좋았다. 자기 글을 읽으려면 창피해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테니 후끈할것이고...당시 신기학교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촛불을 켜야 했다. 일렁이는 촛불아래서 글을 읽느라 불가까이 종이를 가져가는 그 집중하는 모습이 좋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후끈밤이다. 첫모임을 했다. 공지를 했어도 누가 오겠는가. 즉흥적으로 같이 가자고 한 친구 한명인 염짱과 함께 두명이 모였다. (염짱은 그렇게 얘기했건만 첫 모임에 글을 써오지 않았다...대담하다. ㅋㅋㅋㅋ) 아무튼 어색하고 애매하지만 후끈밤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한다는 전제가 없었기 때문에 진짜 후끈하고 싶은 사람들만 모였다. 네달 다섯달이 지났을 때 후끈밤에는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았다. 아마 평균 20여명은 늘 넘었던 것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글이 본인의 입으로 낭독되고, 작은 목소리를 듣기 위해 귀기울이는 것이 정말 보기 좋았다. 2006년 어느날 후끈밤에서 읽으려고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똑똑 도서관 이야기를 썼다. 천천히 읽었지만 힘있게 말했다. 그래서 똑똑도서관 첫번째 시도는 괴산에서 일어났다.

flyshoe.com
미디어교육 프로젝트 팀 [헤모]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 98년에 만들어져서 04년까지 했다. 6년정도 조직이 운영되었지만 쿨하고 멋진 조직실험이었다. 헤모의 웹사이트는 하루 평균 이천여명의 사람들이 오갔고, 실제로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하루 하루를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들의 수가 이백명이 되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무슨 포털사이트도 아니고 교육 프로젝트의 홈페이지가 그렇다는 건 당시 어떤 교육기관의 홈페이지보다 사용자 수가 월등했고 내용이 채워져 갔다. 04년 약간 갑작스럽게 팀을 해체하게 되었다. 당분간 웹을 좀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06년 어느날 갑자기 개인용 홈페이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flyshoe.com으로 도메인을 구입한 후 다음날 오픈했다. 그냥 내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 메뉴 중에 "plan B"가 있었다. 플렌비는 대안적 생각을 쓰고 싶어서 만들었다. 보통 후끈밤의 낭독은 그날 쓰고 버렸다. 낭독한 내용을 사람들이 잘 듣는 것으로...구전으로...끝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똑똑 도서관은 왠지 남겨두고 싶어서 집에와서 흰 종이를 하나 들고 쓱쓱 낙서처럼 그림을 그리고 플렌비 메뉴에 똑똑 도서관을 만들자는 후끈밤 낭독글을 업로드 했다. flyshoe.com은 개인 홈페이지이긴 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글에는 새로운 말을 첨가했다. 마음껏 가져다 쓰고 퍼날라도 문제삼지 않겠다. 저작권 없고 출처도 밝힐 필요없다. 그걸로 충분했다. flyshoe.com을 만들때 느낌하고 비슷했다. 그냥 쿨하게...심심해서...힘들면 바로 끝내면 된다...뭐 그런 생각이었다. 지금 파주 똑관장은 헤모 해체시기의 마지막 멤버였고 flyshoe.com에 올라온 플렌비에서 똑똑 도서관의 제안서를 읽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멋지게 해냈다. 역시 생각하는 사람은 힘이 없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힘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어느날 갑자기 홈페이지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밤 11시에 문을 닫아 버렸다.

얼마전 똑똑 도서관 전국 관장단 회의가 있었다. 정말 즉흥적으로 모든 것이 준비되었는데...현장의 합은 완벽에 가까왔다. 신기했다. 시키는 사람이 없이 다들 알아서 뭔가 하는 건 즐거운 일이 분명하다.

2015년 1월 20일 화요일

오늘을 살아야하는 이유

- 삶이 재미있다는 건 예측이 불가능한 우연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예측이 불가능한건 불안을 만든다. 논리비약이기 하지만 불안은 삶을 재미있게 만들어준다는 말이기도 하다. 만약 모든 것이 예상 가능하다면 얼마나 외롭고 심심하겠냔 말이지. 
- 어려서 개미와 베짱이를 읽으라더니 개미처럼 살라고 말하던 어른들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베짱이는 한 철을 산다. 인간은 모두 각자의 성장속도가 다르게 태어나고 자란다. 
국민학교때 나는 마스게임이란것의 재미를 도통 모르겠더라. 멀리서 보면 멋있을 수 있겠으나, 그걸 감상하는게 아니라 교장등에게 보여주기 위해 동원되었다는 느낌. 그런이유로 단 한번도 마스게임에 나간적이 없다. 빠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계속 틀리면 내가 원하는대로 꼭 빼주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내 선택이 아닌 행동을 하고 있다면 스스로 초라함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 미래의 준비없이 대충사는게 아니라 오늘을 살자는 것이 요지다. 사람들은 오늘을 살지 않고 알 수 없는 내일을 “불안”해 하며 산다. 오늘을 사는 이유가 허상에 가까운 내일을 위한 제물이라면 삶이 얼마나 고단하겠는가. 예측불가능한 내일을 잘 수용하고, 서로 다른 성장속도와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을 살아야 한다. 









 

2015년 1월 17일 토요일

너그럽게

나의 아이돌과 대화를 하다가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저는 너그럽게 살고 싶거든요"
웃기고 자빠졌다. 너그럽다니...그런 여유가 있는 척을 아직도 하고 있었다. 
아직 정신 모차린것이 분명하다. 
너그럽다는 건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이 사용해야 하는 말이다. 

2015년 1월 8일 목요일

상실감

살면서 여러번의 상실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상실감이 있다는 건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 마음이 아픈걸 나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여러번의 충만함도 경험했다. 물론 그건 기쁘고 즐겁다. 그런데 충만함이 빠져나가는 걸 상실이라고 느낀다는거다. 즉, 상실감을 느끼는 건 충만했던 적이 있다는 뜻이므로 슬퍼할 게 아니란 말인거지.

유스보이스 컨퍼런스


잘난 척이야 늘 하고 싶다.
박수도 받고 싶고 말이다.
일부러 겸손하려고 할 필요는 없었는데 진심으로 나서서 떠드는건 싫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유스보이스를 하면서도 난 늘 그랬다.
나서긴 싫었고, 이름이 나오는 것도 늘 불편했다.
그냥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자 삶인데...정도지 이런 거 있으니 와서 보시오...라고 하긴 싫었다. 좋으면 찾아오겠지 싶었달까.
그런데 지금은 좀 다른 국면으로 들어섰다.
유스보이스에는 지금 젊은 미디어작업자들이 대거 들어왔고,
당연히 나보다 훨씬 좋은 교육방법론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리포트하고 싶어졌다.

나한테 유스보이스 컨퍼런스는 그런 느낌이다.

2015년 1월 1일 목요일

의도와 비의도

의도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게 아니다. 그래서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시각은 참 한심하다. 문제를 일으킬 땐 오히려 의도가 있으면 해결하기 쉽다. 행동이 수정되는 것은 그 의도에 대한 논리나 이성적 판단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면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의 의도가 아닌데도 그 행동을 했다면 문제의식 자체가 없거나, 오랜시간 축적해온 문화일 때가 대부분이다. 즉 자기행동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알려주더라도 바뀌는데는 수십년...아니면 명이 다할 때까지도 고치기 힘들다. 마치 의도치 아니한 것이므로 관용이 베풀어지는 것을 당연히 한다면 언제든 그 문제는 반복해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