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 피하는 이유를 설명하던 H는
말을 멈추고 소주 한잔을 꼴깍 삼켰다.
딱 한잔의 취기가 올라오는 그 시간만 기다렸어도
H가 어떤 사람이란걸 알게 되었을게다.
친구는 천정에 붙어있는 닥트 얘기를 꺼냈다.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위한 계획부터
발기에 좋다는 어떤 짐승의 고기를 먹었는지까지.
2014년 5월 31일 토요일
2014년 5월 18일 일요일
이율배반
내가 만나는 수 많은-정말 수 많은- 학부모들은 절대 다수가 말한다.
1. 공부(내 생각엔 공부가 아니라 성적이 오르는 것을 말하는 듯)를 강요하지 않아요. 자기 좋은 걸 시키려고 노력해요.
2. 사교육비 감당하기 힘들어요.
3. 아이의 진로와 적성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4. 학교교육은 정말 문제가 많아요. (무슨 문제요...? 라고 물으면 아주 개인적인 불만에 그치는 것이 대다수다)
5. (고등학생인)우리 아이 자율학습시키기 싫어요.
6. 외국어(역시 외국어라기 보다는 영어를 지칭)를 위해서 어학연수 보내는 건 남들이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보내요.
7. 학교 선생님들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작년에(혹은 올해) 그 선생님은 좋았는데...(라며 교사를 늘 비교한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교사와의 면담에서는 성적에 대한 상담이 주를 이루고, 어느 대학에 보내는 부모가 능력있는지 비교하고, 진로는 살면서 정하지 않고 정해놓고 살게 한다. 심지어, 얼마전에 본 3-4세 자녀를 데리고 나온 어떤 엄마는 가관이었다. 아이는 우리말로 말하는데 엄마가 서툰 영어로 아이에게 말을 시키고 지시했다. 아이는 "엄마, 엄마 저쪽가자, 싫어..."라고 하는데 엄마는 절대 우리말로 대꾸하지 않았다. 전혀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모자의 대화를 목격하기도 했다. 학습놀이에 관심을 가지던 엄마들은 이젠 모든 놀이는 짜여진 틀안에서 학습과정으로 만들어져야 "놀게"한다. 그렇게 어린이들을 가둬키우고 자율성을 가진 성장을 기대하다니...
절대다수가 이렇게 말하지만...
절대다수가 이렇게 말하지만...
절대다수가 문제의식만 가지고 있고, 행동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진법을 펼쳐 놓는다.
2014년 5월 9일 금요일
나쁘지 않아.
쓸데없는 짓하는게 친구다. 이런거 찍으면서 그들의 한 낮은 얼마나 살맛이 나겠는가. 잉여롭다라는 신조어는 단지 돈많고 시간 남는 사람들을 위한 표현이 아니다. 그냥 멍하게 하루 종일 산책 하고, 담벼락에 매달린 고양이를 바라보고, 봄이되면 싹이 트는 하루하루를 지켜보고, 향기 좋은 홍차 한잔을 오후에 마시며 책 읽고, 비오는 날 후둑후둑하는 소릴 듣기 위해 우산을 들고 밖에 서 있고...참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사는게 인간이고 거기서 사는 맛을 느끼는것도 인간이다.
NotBad - Intro Scene (One-shot @ 600fps) from Anthill Films on Vimeo.
NotBad - Intro Scene (One-shot @ 600fps) from Anthill Films on Vimeo.
2014년 5월 6일 화요일
수퍼비전
2048이라는 게임이 있다. 게임을 시작할땐 만만하게 보인다. 가로든 세로든 같은 수를 더할 수 있고, 더해진 수가 2048이 되면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그렇다. 대충 어디로 보내든 512까지는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이후로 다른 512를 하나 더 만들어서 더하는건 쉽지 않다. 물론 1024를 두번 더해 2048을 만든다는 것은 더 힘들게 뻔하다. 이 게임을 하면서 루빅스 큐브 생각이 났다. 16면체의 한면을 맞추고 나면 다른 색이 흩어져 버리니 한면 한면을 맞추는 건 사실 의미가 없고 전체 메카니즘을 이해하거나 패턴을 외우는 것이 방법이다. 그런데 뭔가 다르다...그게 뭘까가 궁금해서 계속 한듯하다. 1024까지 가는데 성공하고 나면 아주 만만하게 이 게임이 보인다. 그런데 거기서 한계가 보였다. 패턴인지에 실패했다. 이때 내가 게임하는 걸 친구에게 보여주고 난 이렇게 한다고 말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더니 "높은 수를 위로 보내고 내려보내지 말고 더하라"는 한마디. 지금까지 내가 이 게임을 풀던 방식에서 잘못되었던 오류가 한마디로 수정된다. 그 동안 그게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1024를 만들려는 시도였다는 것. 마치 큐브의 한면을 맞추는 것과 같다. 그 보다 더 큰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기존의 패턴을 무시했어야 하는데 거기서 빠져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란 뜻이다. 그 한마디로 2048을 쉽게 만들었다. 참 쉬웠다.
인간은 자기 행동에 과잉 몰입하여 객관적 상황을 보지 못하며 사는 때가 많지 않던가. 간혹 나는 지나친 자기확신을 경계하라는 조언을 듣곤 한다. 그런 조언을 들을 때면 늘 어떤 상황을 두고 팔짱끼고 지켜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내 직업이 교육 수퍼바이저라지만 나 역시 한 쪽 방면을 들여다 보고 있을 때가 많을 수 밖엔 없다. 즉, 수퍼비전을 받곤 한다. 내 수퍼비전에 대한 수퍼비전인 셈이다. 간혹 나로 인해 어떤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건 -내가 훈련된 수퍼바이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당사자로 부터 한 걸음만 벗어나게 되면 보이는게 있다는 걸 말한다. 즉, 수퍼바이저는 역할이지 더 많은 능력과 경험을 가진 것이 아니다.
수퍼비전의 중요성을 이 게임하나로 완전히(이게 왠 오버냐...) 이해했다. 더구나 이 게임을 하면 겸손을 배우게 되더라. 랭킹을 보면서 그랬던 것 같다. 이제는 2048은 언제든 만들 수 있고 더 갈 수도 있다. 이 패턴을 인지하고 나서는 나에겐 그냥 시간죽이기가 되었다. (이것이 겸손을 배운자의 태도냐...) 그래서 앱을 지웠다.
2048
http://gabrielecirulli.github.io/2048/ 여기로 들어가면 게임을 할 수 있다.
https://itunes.apple.com/us/app/2048/id840919914?mt=8 이 링크는 아이튠즈 아이폰앱주소.
2014년 5월 4일 일요일
언론
미디어교육계에서 일하면서 언론에 대해 다루지 않을 순 없다. 그런데 난 그냥 무시하고 이렇게 단언하고 이야기를 접곤 한다. 언론은 그냥 광고회사라고 보면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향을 받는 건 어쩌냐며 무책임한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냥 그렇다고 말한다. 내가 아무리 영향을 받지 말라고 외쳐도 현재의 미디어환경에서 어쩔 도리가 없다. 그냥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고 믿지 말아야 할 1순위의 사기꾼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침몰에서 언론의 횡포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단지 왜곡이 문제가 아니다. 심하게 확대해석한다면 jtbc는 마케팅같다는 느낌도 사라지지 않는다. 걔네들의 본색은 금방 나올것임에 그렇다. 평생 고발뉴스나 뉴스타파등에 관심도 한번 가지지 않던 유가족들은 정말 새로운 세상을 봤을것이 분명하다. 다른 말로는 그들이 관심없을 만큼 영향력도 없었던 보도들 아니었던가. 그리고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은 주요언론의 이야기를 믿기 마련이다. 작은 노력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말하는 건 가진자들이 던지는 동정 섞인 위안이 아니더냐. 물론 주류언론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발뉴스와 뉴스타파가 주류언론이 된다면 달라질것 같은가. 쳇. 안속는다.
회상
20년이 넘게 사회교육현장에서 일하면서 요즘처럼 회의감이 생기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개인적으론 2002년을 기점으로 제도교육에 토나올 정도의 배신감과 한계를 느낀 후 초중고생과 학교에서 만나진 않았다. 간혹 생계형 알바로 학부모나 교사를 위한 특강 같은데는 불려 다녔으나 정작 학교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믿었고, 변화를 위한 노력은 누군가의 손에서 만들어질 것이라는 불확실한 믿음 같은 것으로 학교를 밀어냈다. 하지만 사회교육의 장에서 만난 소위 신분상의 "학생"들은 늘 나를 만날 때면 제도교육에 의해 희생되어 상처 투성이인 상태로 왔다.
1.
교사에게 두들겨 맞아서 눈에 멍이 시퍼렇게 든 여중생은 나에게 담배 한개만 달라고 말했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이어서 두대째를 피우면서 내가 뭔가 이유를 듣고 싶어한다는건 알지만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그 아이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있었다. 말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입을 열었다. 말 안해도 된다고 다시 한번 내가 얘길 했지만 나에게 털어놓았다. 에피소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가장 두려워했던건 지금 자기 모습을 본 부모님이 받을 충격이라고 했다. 신고하고 보상받고...등등으로도 학교와 얽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이유야 무엇이든 14세의 중학생 소녀가 팅팅부어 있는 눈두덩을 하고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을 상황은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었다.
2.
그리 왜소하지도 않은 체구의 17세 남자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공식적인 따돌림을 당했다. 교사의 문제였다. 같은반 여자아이들이 악의적인 소문(시작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대놓고 씹었다는 것에서 시작이란다...헐...)을 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넓은 대인관계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문제가 터졌다. 어느 여학생과 교사의 면담. 우리반에 왕따가 누구냐...라는 교사의 직접적인 질문. 그 여학생은 없다고 말했지만 캐묻는 통에 그 친구가 지목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종례시간에 아이들은 책상위에 무릎꿇게 하고 우리반에 왕따가 있다는 건 용서 할 수 없다며 벌세웠다. 그리고 왕따시켰던 아이들을 색출해낸다며 난리를 쳤단다. 졸지에 자신은 교사가 지정한 공식왕따가 되었고...그 이후 자신과 엮이면 피곤하다는 인식으로 고2가 되도록 혼자라고 말했다. 그도 학교를 그만두었다.
3.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청소년들도 많았다. 인문계학교가 아니라 상업고 학생들이었다. 상업계 학생들에게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왜 안좋은지를 담고 싶어했다. 제작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관심이 높아졌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직접 나서서 했고, 교사가 약간의 도움을 줬다. 촬영에 협조하거나 인터뷰에 응했다. 사실상 도움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도움이다. 문제는 거기서 생겼다. 아이들이 영화를 완성했다. 감독시사를 할 때 나도 함께 있었다. 주장이나 이야기의 짜임새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할만큼 했다. 정작 상고학생들 스스로 상업계고등학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거다. 재밌는 작품이었다. 완성작이 나오고 난 뒤 공식상영회에 제출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영화를 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학교에서 검열을 당했다. 이 장면은 학교의 이미지상 좋지 않으니 빼고, 어떤 인터뷰를 더 넣고...등등. 영화의 완성본은 학교 홍보처럼 되었다.
4.
대학생은 다를까? 이렇게 제도교육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대학에 온다.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협업이 서툴기에 팀워크를 중심으로 과제를 내면 그 안에서 잡아먹을 듯 경쟁하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과제가 훌륭한 것을 잘 들여다 보면 한명이 한 경우가 더 많았다. 신중하게 검토해서 학점을 주어도 일단 학점 올려달라는 시도들을 했다. 저는 결석이 한번도 없고 과제도 다 냈는데 82점입니다. 그런데 00이의 경우는 결석을 두번이나 했는데도 85점이네요....이런 식이다. 그래서 자기도 85점으로 올려달라는거. 과제와 시험을 다시 들여다 보면 엄청난 차이가 보였지만, 내가 기가 막혀 하는건 그런게 아니다. 학점에 대한 근거는 이미 수업시간에 말해 주었기 때문에 더 설명할건 없지만, 과제나 시험에 대한 재 평가를 말하는것 보다 "나보다 쟤가 왜 더 성적이 좋은가요"를 궁금해 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졌다. 난 궁금해졌다. 왜들이럴까 싶어서 언젠가 진지하게 한 클래스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12년간 그렇게 해왔다는거다.
휴...
1.
교사에게 두들겨 맞아서 눈에 멍이 시퍼렇게 든 여중생은 나에게 담배 한개만 달라고 말했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이어서 두대째를 피우면서 내가 뭔가 이유를 듣고 싶어한다는건 알지만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그 아이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있었다. 말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입을 열었다. 말 안해도 된다고 다시 한번 내가 얘길 했지만 나에게 털어놓았다. 에피소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가장 두려워했던건 지금 자기 모습을 본 부모님이 받을 충격이라고 했다. 신고하고 보상받고...등등으로도 학교와 얽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이유야 무엇이든 14세의 중학생 소녀가 팅팅부어 있는 눈두덩을 하고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을 상황은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었다.
2.
그리 왜소하지도 않은 체구의 17세 남자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공식적인 따돌림을 당했다. 교사의 문제였다. 같은반 여자아이들이 악의적인 소문(시작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대놓고 씹었다는 것에서 시작이란다...헐...)을 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넓은 대인관계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문제가 터졌다. 어느 여학생과 교사의 면담. 우리반에 왕따가 누구냐...라는 교사의 직접적인 질문. 그 여학생은 없다고 말했지만 캐묻는 통에 그 친구가 지목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종례시간에 아이들은 책상위에 무릎꿇게 하고 우리반에 왕따가 있다는 건 용서 할 수 없다며 벌세웠다. 그리고 왕따시켰던 아이들을 색출해낸다며 난리를 쳤단다. 졸지에 자신은 교사가 지정한 공식왕따가 되었고...그 이후 자신과 엮이면 피곤하다는 인식으로 고2가 되도록 혼자라고 말했다. 그도 학교를 그만두었다.
3.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청소년들도 많았다. 인문계학교가 아니라 상업고 학생들이었다. 상업계 학생들에게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왜 안좋은지를 담고 싶어했다. 제작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관심이 높아졌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직접 나서서 했고, 교사가 약간의 도움을 줬다. 촬영에 협조하거나 인터뷰에 응했다. 사실상 도움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도움이다. 문제는 거기서 생겼다. 아이들이 영화를 완성했다. 감독시사를 할 때 나도 함께 있었다. 주장이나 이야기의 짜임새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할만큼 했다. 정작 상고학생들 스스로 상업계고등학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거다. 재밌는 작품이었다. 완성작이 나오고 난 뒤 공식상영회에 제출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영화를 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학교에서 검열을 당했다. 이 장면은 학교의 이미지상 좋지 않으니 빼고, 어떤 인터뷰를 더 넣고...등등. 영화의 완성본은 학교 홍보처럼 되었다.
4.
대학생은 다를까? 이렇게 제도교육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대학에 온다.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협업이 서툴기에 팀워크를 중심으로 과제를 내면 그 안에서 잡아먹을 듯 경쟁하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과제가 훌륭한 것을 잘 들여다 보면 한명이 한 경우가 더 많았다. 신중하게 검토해서 학점을 주어도 일단 학점 올려달라는 시도들을 했다. 저는 결석이 한번도 없고 과제도 다 냈는데 82점입니다. 그런데 00이의 경우는 결석을 두번이나 했는데도 85점이네요....이런 식이다. 그래서 자기도 85점으로 올려달라는거. 과제와 시험을 다시 들여다 보면 엄청난 차이가 보였지만, 내가 기가 막혀 하는건 그런게 아니다. 학점에 대한 근거는 이미 수업시간에 말해 주었기 때문에 더 설명할건 없지만, 과제나 시험에 대한 재 평가를 말하는것 보다 "나보다 쟤가 왜 더 성적이 좋은가요"를 궁금해 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졌다. 난 궁금해졌다. 왜들이럴까 싶어서 언젠가 진지하게 한 클래스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12년간 그렇게 해왔다는거다.
휴...
2014년 5월 2일 금요일
수미쌍관법
중학교 국어시간이었다. 누구의 시였는지 모르겠는데 선생님이 읊었다. 교과서를 들고 천천히 읽었다. 그 풍경을 잊을 순 없을것 같다. 아주 천천히 읽었다. 교실엔 아이들이 70여명이 앉아 있었고, 당시만해도 수업시간에 딴짓하는건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교사의 낭송을 듣기만 하고 있었다. 시를 다 읊고나서 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설명하다 그래서 이게 수미쌍관법이란거야...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교과서에 받아적기 시작했다. 맨 앞줄의 아이가 받아적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더니 깊에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건 수미쌍관이 아니야. 그런데 너희들은 그것만 관심있구나"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건 수미쌍관이 아니야. 그런데 너희들은 그것만 관심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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