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좀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느 강의. 그는 교육공학을 전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교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만약 교수라면 정말 큰일내겠다고 생각했고, 행동과 말이 엄청나게 불편했다.
"오늘 강의 너무 열심히 들으셔서...제가 준비한거 안써도 될 것 같아요. 강의 열심히 들으시면 칭찬스티커 붙여드리려고 가져왔거든요. 아이들도 교사도 이거 붙여주면 훨씬 열심히..."
경악...!!!!! 무슨 돌고래도 아니고 사람에게 먹이줘서 통제하려 드냔 말이다. 철학없는 교육...그게 한국의 교육이란게 참...큰일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칭찬통장이란걸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칭찬통장은 칭찬스티커가 모여 있다. 약속한 마일리지가 쌓이면 청소면제권이나, 일기면제권으로 교환한다. 아이들은 칭찬스티커가 있으면 한다. 이젠 누가 볼때만...보상이 있을 때만...한다. 주도성을 최저치로 만들고 싶다면...지금 당장 칭찬스티커를 꺼내서 붙여라. 그럼 쉽게 가능하다. 그리고 오늘 하루의 통제가 쉽다. 대신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타인은 경계의 대상이 되고, 나만 칭찬받을 것을 찾아나서기 시작할 것이다. 그 칭찬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훈련된다. 아주 차근 차근 쌓여간다. (그 강사는 책읽고 공부할 시간이 없다면...60분짜리 EBS다큐프라임이라도 좀 봤으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는 어느정도 억지가 있기 마련이지만 최소한 그런 노력이라도 했다면 엄한소리 늘어놓진 않을 듯하다. 다큐프라임에서는 실험집단을 놓고 칭찬스티커를 통해서 동기가 사라진 아이들을 보며 부모의 한탄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2. 또 같은 강사의 이야기다. 어느 맹학교의 교육환경에 대한 이야기였다. 맹학교의 교실은 어떻게 생겼을까요...라는 질문을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대답은 맹학교의 교실도 똑같겠지요. 어차피 그 아이들이 성장해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려면 같은 환경에서 교육받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라고 누군가 대답했다. 옳거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사의 이야기기에 토할 뻔 했다.
"제가 예전에 어떤 맹학교에 가서 환경에 대한 조언을 주고 왔어요. 그 교실환경은 정말 다른 교실과 똑같았어요. 맹학교 아이들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잘 듣을 수 있게 만들면 됩니다. 그런데 뒤에는 그림이랑 사진도 붙어 있고, 보통 교실과 똑 같은 것이 문젭니다. 교육환경은 학습자의 상황에 맞춰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그런게 안지켜지고 있는 겁니다"
또 경악했다. 맹학교의 환경을 보았다면서 정작 학습자인 맹인의 환경을 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시각장애인중에는 전맹도 있지만 저시력학생들도 상당수다. 시작장애인 유도블럭이 노란색인 이유는 진출색(난색계통)을 사용해서 쉽게 구분하게 만든거다. 이게 상식이다. 저시력학생들이 존재하는 한 교실에는 시각경험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더구나 첫번째 대답이었던 장애인이 사회에서 비장애인과 동일한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듣기만을 고려한 교실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소름이 쫙 끼쳤다.
3. 예전에 어떤 선생님이 말했다.
"저는 아이들에게 벌로 청소를 시키지 않습니다. 모두가 나눠해야 하는일이 벌이 되었을 경우 그 일이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에요"
이런게 교육자의 철학이다.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싫다 좋다의 선택이나 쿠폰같은것과의 교환조건을 만들어서 안된다. 대체 면제권을 줘서 얻는게 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칭찬통장은 그래도 개인이 본다. 초등학교 교실에 가면 무슨 보험설계사들의 실적 그래프 같은 것이 주욱 붙어있는 것을 자주 본다. 이게 교육의 현실이다.
기본적으로 교육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한국사회의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믿음도 기대도 없다. 마주치지 않고 살고 싶을 뿐이다. 뭔가 논리적 글쓰기가 안된다. 그 강의에서 들은 내용때문에 감정이 격해져서 그러는 것 같다.
예술은 모두의 삶이지만 아무나 예술가가 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술적 삶을 지향하고 살 수 있지만 아티스트라고 모두를 지칭할 순 없다. 때로는 절실함도 좀 필요하고, 때로는 극단적인 감수성을 요하기도 하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냥 그렇단 말이다...쩝.
1.
2009년 영풍에서 전시한 사진
2009년에 영풍문고도 모르게 영풍문고에서 사진전을 열었다. 책속에 사진을 끼워넣고 전시초대장에 책제목을 넣었다. 꽤 신나고 유쾌한 해프닝이었다. 작업하는 동안도 즐거웠다. 매일 30장~300장까지 사진을 찍고 모두 버린 후 딱 한장씩을 남겼다. 그렇게 21장의 사진을 모아 영풍문고로 갔다. 이 해프닝은 두개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하나는 사진작업이었다. 광명시민의 손으로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과 홀트복지타운의 사진수업이 개설되었다. 매일 수십에서 수백장의 사진을 찍고 모두 버린후 한장의 사진만을 남긴다. 지운 사진은 미련없이 휴지통까지 싹 비운다는 컨셉이다. 버린사진 속에 가장 좋은 샷이 남아 있을 지 모른다는 여운, 내가 선택한 순간이 언제나 최고의 이미지가 아닐 것이라는 성찰같은 것이다. 그렇게 광명시의 다큐멘터리 사진이 ebook으로 남았고, 홀트타운에선 자신이 캡션을 읽어주는 음성파일과 함께 사진전을 2년간 열었다. 다른 하나는 이번 아트해프닝이다. 총 열개의 도서관에 전시한다. 작가를 섭외하고 도서관에 사진을 끼워놓고 온다. 책보다 전시를 만나면 행운이고, 초대받고 갔다면 관람이다. 쿨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진전을 열었다. 도서관협회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고, 사진작가들은 즐겁게 참여했다.
우락부락(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예술캠프)에서 일러스트작가를 섭외하려고 찾던 중에...2003년인가 만났던 홍학순작가가 떠올랐다. 이곳 저곳을 뒤지다 페이스북에 홍학순과 우유각소녀가 있다는 걸 알았다. 바로 쪽지를 보냈다. "어린이와 예술캠프를 하는데 잠깐 만나요! " 바로 답이 왔다. 그렇게 만나서 우락부락 얘길 했다. 우락부락 시즌2의 주제는 [우주에 남기로 결정하다] 였다. 과학과 예술이 공통적으로 가진 속성으로부터 예술교육을 찾아보는 캠프였다. 홍학순작가는 대번에 지금 구상하고 작업하는게 완전히 맞아 떨어진다며 좋아했다. 커리큘럼을 보내달라는 말에 A4지에 슥슥 그린 열장정도의 스토리보드가 도착했다. 그 안에는 본능미용실의 우유각소녀와 윙크토끼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놀랍고 재밌는 그림체에 쉽고 간결해 보이지만 삶의 철학이 엿보이는 시나리오였다. 이 캠프 끝나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트해프닝을 기획하면서 바로 떠오른 생각은 나도 그 애니메이션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소셜펀딩으로 사람들에게 제작비를 후원받으면서 애니메이션에 까메오로 나온다면 얼마나 신날까? 주변에 영화감독들에게 "저는 대사없이 휴대폰대리점 사장 같은거로 나오게 해줘요..."라고 졸랐던 기억은 있지만 애니메이션에 내가 나온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이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정말 출연하고 싶어졌다. 전 우주의 친구들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단순한 욕심으로 시작했을 때가 가장 즐겁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강력히 밀었다. 그리고 정말 멋지게 해냈다. 아트해프닝기간동안 원화를 전시하고, 함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정말 "행복"했다.
3. 영풍문고에서 사진전을 열면서 내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외국서적이었는데, 지인들의 독특한 표정만을 모아서 조금 그로테스크하게 그린 드로잉노트같은 책이었다. 위트도 넘쳤고 흥미로운 스타일의 터치도 좋았으나 무엇보다 작가가 즐거워보였다. 그림체가 무섭다고 드로잉자체가 무섭진 않은 법이다. 제목도 기억이 안난다. 아무튼 그 드로잉을 보고 며칠간 그 이미지를 상상하며 드로잉을 시작했다. 며칠 뒤 지쳤다. 그전에도 책에 낙서하는 오늘의 낙서라는 시리즈로 드로잉을 계속하긴 했지만...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서 데일리드로잉을 시작했다. 하루 하루가 쌓이면 언젠가 정말 엄청난 하루를 만나게 된다는 거...알고 있기 때문에 시작했다. 매일 한장의 드로잉...하루에 10분이상 30분이하...잘하려고 하지 말기...등 몇가지 원칙을 정했다. 그러면서 한두명씩 같이 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데일리 드로잉 때문에 그동안 크게 관심없었던 화가인 친구들의 작업이 궁금해졌다. 친구들의 작품을 본적은 있는데, 매일하는 드로잉을 본적은 없다. 뭘할까? 그들도 맨날 그려놓고 망치고, 버리고, 숨기기도 하겠지? 그건 당연한거야...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작업들이 왜 없겠어. 발가벗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습작이 왜 없겠냐구... 그런데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있지 않으면 지금의 멋진 작품이 어떻게 나왔겠는가를 생각해 보니...작가의 쓰레기통속에 들어있는 습작들의 가치가 새롭게 느껴졌다. 이번 아트해프닝에서 해보고 싶었다. CC에서 회의하면서 드로잉전시 어떻게 할거냐고 나에게 자꾸 물을 때 사실 나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지만...작가를 먼저 섭외하지 않으면 시작하자고 선뜻 내보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해프닝에서 가장 늦게 스타트하게 된 섹션이다. 아무튼...세히와 방양과 토끼도둑이 참여해주고, 그들이 쳐박아둔 습작들이 공개되어 전시를 열었다. 세히의 작업실에 찾아가서 동영상을 찍고 전시회장에서 무한 반복해서 틀었다. 슥슥슥 뭔가를 그리다 구겨서 바닥에 버린다. 그런데 그 안에는 작품이 되지 못한 날것이 들어있더라...라는 컨셉의 영상을 작업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인터렉티브가 생긴건 그 다음의 일이다. 토끼도둑이 언젠가 만화가의 드로잉전시에서 한점의 그림을 훔쳐왔던 기억을 전시하자, 사람들이 몰래 그림을 훔치기 시작했다. 대담하게도 자기 그림을 대신 붙여놓기도 하고, 간단한 글을 써서 고맙다고도 했다. 누구도 대놓고 가져가란 사람은 없지만 훔치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우린 그 자체를 즐겼다. 은근 누구 그림이 가장 많이 도둑질의 대상이 되었는가가 경쟁이 되기도 했다.
4. 어느날 작곡가인 지인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곡은 어디서 들을 수 있는거죠? 현대음악이 대중적일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최소한 어딘가에서 다운받거나 할 수 있는거 아닌가요...?" 현대음악의 현주소...유튜브에서 보는 퍼포먼스는 멋지긴 하지만 좀 과하다 싶은 것이 훨씬 많았다. 작곡가가 이렇게 많은데 왜 나처럼 음악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접근이 안될까 싶었던 것 같다. 아트해프닝에서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음악을 듣고 싶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제안해 봤다. "이런건 가능하지 않을까요? 온라인에서 유저가 사진을 제공하면, 그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은 작곡가가 곡을 만들고, 연주자를 섭외해서 공연을 하는거..." 담박에 오케이! 해봅시다. 이렇게 결정했다. 생각만해도 짜릿한 경험일것 같았다. 해프닝에서는 사진과 더불어 사연도 받았다. 그저 일상적인 경험들, 큰 사건이 아니어도 나에게 의미있는 일들...이 사진과 사연속에 담겼다. 생각해보면 대체로 우리가 사는 게 그렇지 않을까? 진선북카페 마당에서 야외연주회를 열었다. 낭만적인 밤!!!!! 연주회가 끝나고 그 사진의 주인공과 가족들은 작곡가에게 찾아갔다. 서로 만나서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한사람 한사람이 주인공...모두가 삶의 주인공이라는 말이 이렇게 실감난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 평생을 못잊을 연주회의 밤이 될 것 같다. 지금도 그 풍성하고 꽉 채워진 느낌의 공연장 풍경이 눈 앞에 있는 것 처럼 선명하다. 아트해프닝을 통해 만들어진 곡은 CD로 만들어지고 음원을 공개할 예정이다.
진선갤러리 마당의 연주회
참여한 작곡가의 어린딸은 아빠의 공연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고 했다. 7세어린이는 공연장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어린딸이 아빠의 공연을 똘망한 눈으로 집중해서 듣고 있는 모습은 이번 해프닝으로 만들어지 교감같은 것이었다. 음악회에 온 사람들이 두고 두고 해프닝의 마지막 밤풍경을 기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애니메이션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검색하면 정보는 나오지만 구매할 방법은 없네요... 꼭 영화제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거죠...? 꼭 영화제에 가야만 하는거죠...?"
인디indie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어서가 아니라 배급 채널을 자체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묻게된 당돌하고 어이없는 질문은 어떻게 당신의 작품을 볼 수 있는가! 에서 맴돌고 있더라. 많은 단편애니메이션들이 제작지원을 받는다. 그렇게 공공기금을 지원받지만 공공의 채널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를 열심히(?) 실행하고 있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공공이라고 해서 무료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발빠르게 팔릴만한 것을 걸러내는 상업적인 시스템이 아니고, 가치있기에 우리사회의 경험재로 남기고 싶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감독님! Creative Commons Korea에서 작품을 함께 구상하고, 조금 새로운 방식으로 배급 해보면 어떨까요? 창작과 공유를 동시에 하면서, 제작비도 마련하고 독립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도 만나는 거 어때요?"
이렇게 질문을 바꾸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은 일터스트레이터이며 애니메이션 감독인 홍학순님이다. 역시 이런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제작방식이나 배급에 대해선 똑 부러진 대안은 없었다. 아트해프닝에서 그 답은 찾은 것은 물론 아니다. 그저 수천만가지 방법중 하나를 택했을 뿐이라고나 할까. CC가 제작비를 지원하고 CCL을 통하여 공유하는 후원의 방식을 택할것인가, 작가와 관객이 온라인에서 만나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조합을 실험할 것인가에서 고민하게 되었다. 아트해프닝은 "해프닝"인 후자를 선택했다. 온라인에 시놉시스와 컨셉아트를 공개하고 후원자를 모집하는 방식이다. 온라인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과 일명 본능상담(애니메이션의 주제이기도 하며, 혼자라면 쉽게 알지 못할 진짜 자기 모습을 찾는)을 진행하여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등장하게 작업했다. 온라인에서 소셜펀딩페이지를 열고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후원 유저 출연자섭외가 마감되었다. 완성된 애니메이션 DVD와 원화를 받는 조건으로 후원한 사람들이나, 상영회에 초대받고 싶어서 후원한 사람도 있었다. 홍학순감독은 입에서만 달콤한 말을 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러기에 제작비를 보태달라는 말이 다소 거칠지만 아주 솔직하게 등장했다. 실제로 그랬다.
이번 프로젝트에 실려 있던 그림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건 사람이다. 그래서 쌀도 사야 하고, 맛있는것도 먹어야 한다. 등장인물인 우유각소녀와 윙크토끼가 솔직하게 말한다. 창작과 공유를 위한...블라블라. 또는 인디애니메이션을 소개하기 위한...블라블라가 아니라 제작비로 쌀사고 맛있는것을 먹으면서 하겠다는 말이다. 이렇게 제작비를 모은 후 바로 본능상담에 들어갔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킨건 분명 아닐거라고 본다. 감독이나 후원자가 아직 서로 만날 준비가 덜 되었을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즐거운 참여방식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잡음이 생기진 않았다. 만약 불특정다수가 동기없이 후원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기획과 제안으로 부터 아트해프닝까지 남은 기간은 5개월남짓. 단편애니메이션을 5개월간 작업할 수 있다고 보장하긴 어렵다. 더구나 펀딩을 진행해야 하고, 후반작업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숙제로 남았다. 최종 캐릭터가 결정되고 난 이후에 본격적으로 작화가 시작되었다. 빠른 속도로 작업한다고 해도 최종 믹싱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더구나 아트해프닝 웹사이트 오픈을 감안한다면 더 시간이 촉박했던 건 사실이다. 약속한 시간까지는 못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웹사이트오픈에는 맞추지 못했지만, 아트해프닝기간에 정확하게 최종 편집본이 나왔다. 10월 17일(18일이 오픈행사였음)밤에 최종본을 받았다는건 참 짜릿한 즐거움을 주었다. 따끈따끈하게 오픈행사에서 상영했다. 본능미용실 작품과 더불어 원화를 전시했다. 뜨거운(!) 관객의 반응은 상영공간을 들어오면서 만나게 되는 원화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아직 할일이 더 남아있다. 애니메이션 본능미용실은 원본소스를 공개할 예정이다. 주제가의 음원과 반주 음원 역시 CCL을 탑재!하고 공유된다. 주제가를 누군가 불러서 새로운 노래를 만들 수 있고, 원한다면 원본소스에 새로운 더빙을 할 수도 있다. 새로운 버전의 본능미용실이 만들어지면 그 버전에 맞는 해석으로 또 다른 2차 3차 저작물이 만들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현재 주제가를 개사해서 부르고, 더빙하고 싶다는 어린이들과 새로운 음악으로 사운드트랙을 채우겠다는 사람들이 소스가 공개되길 기다리고 있는 중임)
아트해프닝에서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발표했다는게, 독립애니메이션 배급의 새 장을 열었나? 작가를 발굴해서 지원한것인가? 홍학순감독도 CC Korea도 이번 아트해프닝을 준비하면서 그런 욕심은 없었고 그렇게 해내지도 못했다고 본다. 다만 홍학순감독과 프로젝트 후원자들이 한바탕 웃을 수 있었고, 상영회에서 만나 진심으로 반가움을 느꼈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즐거운 경험을 함께 했으며, 원화를 많이 팔아서 홍학순감독은 맛있는 걸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게 더 의미있는 해프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