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흔히 러R이라고 부르던 책이 있었다. 러시아혁명사를 지칭하던 말이다. 대학물 먹으면서 베스트셀러이자 대화를 위한 필독서인 러R을 읽지 않은 친구들은 핀잔의 대상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러R을 읽던 그 시절이 떠올라서 그런가...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미묘하게 뭉클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야 말로(1905년과 1917년 두차례의 혁명을 놓고 꽤나 많은 논쟁도 있었다) 비판적 논지를 뒤로하고 필독했어야 하는 패러다임이었다. 영화 위선의 태양은 볼셰비키혁명이후 트로츠키즘의 종언과 함께 1936년 스탈린이 본격적으로 러시아를 쥐고 흔들며 시작된 대대적인 정치적 탄압과 독재권력의 남용-흔히 숙청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실제로 스탈린의 숙청은 어떤 인관관계로 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어서 어떻게 명명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이 시작되는 시기의 한 시골마을이 배경이다. 코도프Kotob대령과 그의 아내 마루시아, 그리고 귀여운 딸 나디아는 이 피바람이 불어올 미래를 꿈에도 생각 못한채 평화롭게 살아간다. 혁명이후 노동자의 전위당에 충성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뒤로하고 노래와 음식과 시를 즐긴다. 이들은 스탈린시대가 종결된 1956년까지 비극의 가족사(사실 어떤 의미에서 러시아혁명사다)를 맞닥드린다.
영화는 차분하되 꽉 조여진 긴장을 만들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듯 하면서 약간 쓸데없는 농담의 코드까지 사용하는 수작이다.
94년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내가 모른다는 게 좀 이상했는데...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내가 이 영화를 스스로 불편해서 거부했을 법한 시기다. 도미노처럼 사회주의가 무너진 허탈함과 구 소련의 실패한 혁명을 국가자본주의라는 말로 끝끝내 옹호하려던 선배들과 논쟁하며 살았던 시기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무렵이기 때문이다.
영화속에 94년에 봤다면 의미있게 다가왔을 깨진 유리를 밟거나, 정체불명의 빛나는 구체가 떠다니거나, 스탈린 비행선을 향해 가는 자동차의 모습들은 클리쉐였고 2011년 영화를 보게되니 진부하게 느껴졌다. 암시와 상징은 여전히 트랜드속에서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착각 마저 했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상징은 딸을 사이에 두고 추는 탭댄스!
유튜브를 찾아보니 140분전체가 업로드 되어 있고, 자막(한국어는 없지만)도 지원하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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