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5일 수요일

사랑한다 구글...

피곤한 하루를 정리하고 집에 오니 11시다.
저녁을 못먹었기에...무척 배가 고팠다.
밥을 앉히고...청국장을 데우고...상추를 뜯어다 씻어놓은 후 샤워를 했다.
밥을 먹고나니 12시 30분이 넘었다.
강의에 워크숍이 있었던 터라...피곤이 뒷골을 땡기며 찾아왔다.
하지만 오늘은 월식을 볼 수 있는 밤이다.
일식에는 매력을 못느끼지만...
달에게 묘하게 끌리는터라...월식은 꼭 지켜본다.
피곤한데 밥을 먹었으니...정말 졸리기 시작했다.
요샌 피드는 리더로 읽고, 페이스북도 웹브라우저보다 앱을 주로 사용하다 보니 굳이 검색할 일이 없으면 안 열어본다.
그러다 웹을 열었다.
흑...절대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구글은 이런 이미지를 보내주고 있다.
구글 사랑한다.
왠지 너와 함께 월식을 지켜본다고 생각하니 훨씬 기운이 나네...

ps :
새벽4시22분...이젠 거의 달이 남지 않았다.
구글의 실시간 중계와 거의 똑같았다.

2011년 6월 11일 토요일

위선의 태양 / Burnt By The Sun

대학시절 흔히 러R이라고 부르던 책이 있었다. 러시아혁명사를 지칭하던 말이다. 대학물 먹으면서 베스트셀러이자 대화를 위한 필독서인 러R을 읽지 않은 친구들은 핀잔의 대상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러R을 읽던 그 시절이 떠올라서 그런가...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미묘하게 뭉클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야 말로(1905년과 1917년 두차례의 혁명을 놓고 꽤나 많은 논쟁도 있었다) 비판적 논지를 뒤로하고 필독했어야 하는 패러다임이었다. 영화 위선의 태양은 볼셰비키혁명이후 트로츠키즘의 종언과 함께 1936년 스탈린이 본격적으로 러시아를 쥐고 흔들며 시작된 대대적인 정치적 탄압과 독재권력의 남용-흔히 숙청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실제로 스탈린의 숙청은 어떤 인관관계로 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어서 어떻게 명명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이 시작되는 시기의 한 시골마을이 배경이다. 코도프Kotob대령과 그의 아내 마루시아, 그리고 귀여운 딸 나디아는 이 피바람이 불어올 미래를 꿈에도 생각 못한채 평화롭게 살아간다. 혁명이후 노동자의 전위당에 충성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뒤로하고 노래와 음식과 시를 즐긴다. 이들은 스탈린시대가 종결된 1956년까지 비극의 가족사(사실 어떤 의미에서 러시아혁명사다)를 맞닥드린다. 
영화는 차분하되 꽉 조여진 긴장을 만들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듯 하면서 약간 쓸데없는 농담의 코드까지 사용하는 수작이다. 

94년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내가 모른다는 게 좀 이상했는데...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내가 이 영화를 스스로 불편해서 거부했을 법한 시기다. 도미노처럼 사회주의가 무너진 허탈함과 구 소련의 실패한 혁명을 국가자본주의라는 말로 끝끝내 옹호하려던 선배들과 논쟁하며 살았던 시기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무렵이기 때문이다. 

영화속에 94년에 봤다면 의미있게 다가왔을 깨진 유리를 밟거나, 정체불명의 빛나는 구체가 떠다니거나, 스탈린 비행선을 향해 가는 자동차의 모습들은 클리쉐였고 2011년 영화를 보게되니 진부하게 느껴졌다. 암시와 상징은 여전히 트랜드속에서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착각 마저 했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상징은 딸을 사이에 두고 추는 탭댄스! 
유튜브를 찾아보니 140분전체가 업로드 되어 있고, 자막(한국어는 없지만)도 지원하고 있더라. 

2011년 6월 10일 금요일

한심한 기억들을 지우고 살 수 없다. 어쩌냐.

영화엔 기억을 지우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온다. 완벽한 범죄를 무죄로 봉합하기 위해선 타인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것을 지우는 방법만큼 효과적인 것이 또 있을까. 주로 SF에 등장하는 장면이긴 하지만 누군가에 기억속에 내가 들어있다는 걸 없애는 것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때로는 내 기억을 없애 버리고 싶은 때도 있다는 거. 스스로 과거를 잘 부정하는 편이기 때문에, 시간이 쌓여진 현재를 중요하게 바라보기 때문에...이 두가지 "때문에"를 이유로 전에 일어났던 사건과 그 상황은 그냥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1.2.3으로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 있다. 주문처럼 3...2...1 하고 외치면 푸~쉬...하면서 공중으로 흩어졌음 좋겠다.
어느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런 그림이 탁자에 꽂혀 있다. 사실 이 글은 이 코끼리를 보고 쓴 글이다. 
1.
가장 즐겁던 기억이 겹쳐있긴 하지만 억울한데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중/고등학생의 기억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끔찍한 일들의 연속이었기에 그 당시의 즐겁고 행복한 기억을 함께 날린다해도 별로 후회스럽지 않을 것 같다. 학교와 친구들은 좋았다. 그냥 학교가는 게 싫지 않았고, 간혹 만나게 되는 좋은 친구들은 나를 기쁘게 했다. 하지만 교사는 달랐다. 정말 단 한명도 교사다운 교사를 본적이 없다. 대놓고 부모들에게 돈을 달라는 장면, 친구들을 가격(!)하는 장면, 자폐아였던 가까운 아이를 대하는 선생들의 태도 같은 것 말이다. 꽤 깊은 상처인것 같다.
2.
선배들이 뒷통수쳤던 기억들이다. 참 운이 없게도 좋은 선배는 없었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는 건 다행이지만,  80년대 학번들의 선배들에게는 늘 실망하며 살았다. 남녀 상관없이 선배들과의 관계는 항상 어긋났다. 두세살 차이나는 사람들이 어른노릇을 하는 꼴을 못봐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함께 일을 하면 늘 배신당했고, 뒷말이 무성했다. 지금도 일하는 파트너의 기준이 80년대 학번들이 끼어 있으면 일단 위축되고 두 세번 곱씹어 생각한다.
3.
사람은 사랑하며 산다. 대신 연애감정이 끝날 때의 그 느낌은 정말 지우고 싶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기억을 지우거나 되살리고 싶은 감정은 연애 또는 범죄다. 감추고 싶은게 있기 때문에 지우고 싶기도 하겠다. 지금 연애 못하고 사는 건 연애감정자체가 두려워서다. 솔로가 가장 마음이 편하고 좋더라. 어떤 친구가 말했다. 연애하면서 느끼는 충만함을 아직 못느껴서 그렇다고...그래 그게 꼭 "아직"이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었다. 이리 저리 밀고 땡기는 게 20대에는 재밌다고 느꼈다. 그런데 어느순간 사랑이 식어가는 그 느글거리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세가지 이 기억만 지울 수 있다면...나 참 건강하게 살것 같다. 생각해 보니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들이라는 것도 지금 알았다. 큰일은 내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나보다. 그리고 비극을 받아들이는 것은 잘 훈련된 편이기도 한 것 같다.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읽고 나서 정치적 꼼수가 언어적 함정으로 시작된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고 알면서 당한다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작정하고 프레임을 만들기 시작하면, 그 프레임안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글을 쓰는 순간 이미 또 한번 나의 뇌세포에 각인되겠지. 잊고 싶다고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또 한번의 기억으로 추가된다는 거...알면서도 하고 있다.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