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7일 일요일

시간에 대한 잡설

"시간"에 대한 객관적 정의는 없으나 조작적 정의나 약속의 개념이 있다. 시간에 대해 가장 오랜 관심을 가진 학문은 역시 천문학이지만, 아인슈타인 이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상대적 시간을 증명해내면서 (굳이 표현하자면)뒤틀렸다. 표준시간이란 그래서 천체를 중심으로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맞춰놓은 것이거나 약속의 개념이된다. 그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가 궁금하다면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는건 분명하다. 봉건제 해체 이후 농민계급이었던 노동자에게 더 많은 생산을 요구하기 위해선, 더 효율적 관리 대상으로 시간개념이 확보되어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져야 했던 표준시각은 인간을 시스템으로 몰아갔다. 표준이 된 시간은 생활의 편리를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생각한다면 참 무서운 결과를만들어낸다. 가장 비정상적인 생태계를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 170만년전 두발로 걷기 시작한 인류는 신화로 존재하는 아이테르를 바라보며 지구에 적응하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에너지원이 되는 태양을 중심으로 살아왔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자연의 시스템으로 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은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명의 핵심은 그 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는가로 부터 출발했다고 본다. 문제는 소유다. 초기인류의 생존을 위한 투쟁적 관점이 아니라 소유를 위한 전쟁이 되었다 . 굳이 설명하자면 (토인비가 말한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시간을 누가 소유할 것인가의 개념이 되었단 뜻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시간을 소유하려고 한다. 그 시간은 생산량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이 체감하는 시간이란, 물리적 사건의 연속선의 한 지점이거나 독립적 물리량을 갖는 비연속적 객체라고 보기 보다는 재화와 교환되며 소비를 가능케하는 화폐와 유사하다. (물론 이 관점은 생산주체인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의 쓰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긴 싸움이 계속된다)  "나는 내 시간의 주인이다"라고 역설하는 자기계발서를 보면 한심한 이유기도 하다. 오히려 "나는 타인의 시간 노예다"로 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2014년 4월. 한국사회는 기능이 정지된 정부로 인해 무력감을 갖는다. 세월호의 침몰로 인해 시작된 무력감이다. 이 글은 세월이라는 시간개념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의 조각 중 하나다. 왜...라는 질문이 자꾸 생기지만 결국 기능상실의 가장 큰 원인은 모두가 타인시간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거다. 매뉴얼이 없어서 문제라고 말할까봐 나는 더 무섭다. 매뉴얼은 이미 있다. 엉성한 것이 문제다. 그럼 완벽한 매뉴얼은 존재할까? 그건 사건이 잘 수습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지키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시키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간을 사는 것이 당연해진 사회에서 그 무엇도 각성할 수 없이 마비된 인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2014년 4월 25일 금요일

뻘짓거리

1.
공무원 미친 뻘짓들은 대부분 잘해보려고 하려다 망하는 짓거리다. 장관님이 납신다고 귀뜸하여 못난 대중이 준비하고 맞이하게 만들라는 명령은 그들의 매뉴얼이다. 잘 모시려고 똥꾸멍 빨던 버릇 그대로 하다 세월호에서 죽은 한 고등학생의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에게 욕 쳐먹은거다. 

2.
어느날 회의에 갔는데 회의 중에 담당자가 사진을 찍었다. 뭐하는거냐고 묻자 오늘 먹은것도 영수증과 함께 사진으로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커피값은 대략 만원정도였다. 그냥 내가 낼테니 사진 찍지 말라고 말했다. 그런데 농담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녀는 결국 사진을 찍었다. 어딘가의 서류에 영수증과 더불어 내가 커피 마시며 회의하는 사진이 첨부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게 대한민국 정부 공무원의 발상이다. 물증 없으면 아무 일도 안했다는 생각하는 공무원의 발상은 세월호 상황실 앞에서 사진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게 즐거운 기념사진이었을거라고는 상상하지 않는다. 그냥 그게 공무원들 하는 짓들이고 그렇게 배워왔고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거라고 본다. 그들이 이 상황에서 유가족 놀리려고 한 게 아닐게다. 

3. 
뷰티풀 민트 라이프 콘서트가 취소통보를 받았다. 줄줄이 공무원들의 뻘짓들이 보도되고 비웃음을 사자 몸사리는 또 다른 공무원들이 우리는 추모하기 위해 공연을 취소해야 한다고 결정한거다.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고, 그 동안 준비하던 사람들의 삶에 스트레스를 불어넣었다. 뷰티풀 민트 라이프가 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 과정이 정말 공무원 스럽다는 건 분명하다. 앞뒤가 없는 개뻘짓. 무조건 우리가 다치면 곤란하니 책임회피. 그들의 모토다. 어떻게 하면 일을 안할지 연구하는게 그들의 일이며, 시킨것만 하고 증거만 확보한다는 원칙은 하나도 변한게 없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원생동물과 동급의 지능인것은 알고 있지만 품종상 인간의 껍질을 하고 있기에 일부러 그랬을리는 없다. 진짜 잘해보려고 하다 그런거다. 그게 문제란걸 그들만 모르고 세상은 다 안다. 제발 뻘짓 좀 그만하고 자기자리에서 일상을 잘 살아내자. 

2014년 4월 22일 화요일

나는 왜 교육자가 되었는가.

나는 왜 교육자가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처음에 시작할 때 난 분명히 잘난척을 하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20대에 사회의 변혁을 꿈꾸었지만 처절히...철저히...실패하고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막살고 싶어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보상은 나를 향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욕망을 들여다 봤다. 
난 알아버린거다. 난 사람들 앞에서 "니네 수준은 나와 달라...그러니 나에게 배워"라고 말하고 싶었던거다. 
가장 잘난척을 잘해도 욕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직업은 교육자가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상담실에서 근무하면서도 항상 교육세팅을 만들어갔다. 

나는 왜 미디어교육자가 되었는가에 대한 두번째 질문.
그것도 대체로 단순한 욕망에서 출발했다. 
있어보였다. 
최신 미디어들은 항상 고가의 장비였고, 아무나 함부로 접근할 수 있는 건 잘난척을 팍팍 밀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첫번째 질문에 연장된 답이다. 잘난척을 배가시키기 위한 것이라고나 할까...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당시는 분명히 그랬다. 
어떤 삶의 철학도, 교육자가 되어 세상을 향한 어떤 변화를 말하고 싶은 마음도 사실은 거의 없었다. 
지금이야 깨달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을 꺼내진 않지만...
내 시작은 분명히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