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하는거 다 누리면서 남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하는건 웃긴일이다.
국민학교2학년때 부터 어떻게 하면 다르게 살것인가만 생각하며 살았다.
자조 섞인 말이 되겠지만 남다르게 살기를 포기해야할 때가 온것 같다.
그렇다고 메인스트림으로의 전향이라고 까지 거창하게 선언하긴 싫다.
이제부터는 적당히 여우짓하고,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를 이용해 먹으면서 살아도 될 것 같다.
함께라는 둥 나눔이라는 둥 하는 표현은 온몸이 간지러워 쓰지 않았지만, 그냥 평소에 나도 모르게 그러고 살았었나보다.
허망하게 이별을 고한 노동해방전선의 망령이나, 시민운동 한답시고 제 살 깎아 먹는 단체에서 시간을 낭비한 것은 이 깨달음에 지불했다 치자.
우리 사회에 무분별하게 팽창해버린 희망중독자들에게 절망을 주입하는 것도 이젠 지겨워져서 관심에서 멀어져 버린다.
이 곳을 간혹 들여다 보면서 생각하자.
http://www.nikon.com/about/feelnikon/thisday/main.htm
2016년 6월 21일 화요일
2016년 6월 6일 월요일
단상_확률
생물학 스터디를 하면서 얻은 몇 가지 결과들이 있었다. 이치에 관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 방식이 최종적으론 확률로 읽힌다는 것. 혼자 무엇인가를 하는 아이가 있고, 혼자선 절대 하지 않으려는 아이도 있다. 끊임없이 노작을 하며 노는 아이와, 쉼처럼 보이나 상념으로 바쁜 아이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아이, 어른처럼 말하고 행동하여 또래의 행동과 확연히 달라 보이는 아이도 있다.
인간(군)의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분포해 있는 셈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우리사회에 필요한 유전자가 분배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수인 이유와 소수인 이유가 이유가 있고, 보편성안에 특수성이 포함되어 있게 각인되었다.
시스템화한 교육은 모두를 평범하게 만드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그렇게 태어난 이유를 훈련으로 억누르거나 거부하게 만든다.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이 의미있게 읽히는 것은 비슷한 인간으로 시스템에 적응시키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생존에는 손해를 끼친다는 것 아니었을까? 안타깝지만 다중지능으로 또 다른 교육시스템안에서 도구로 밖에 쓰지 못하는 상황을 목격해야 하는건 한국뿐은 아니다. 결국 아이의 행동이 열쇠이며, 모든 아이의 다른 관심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 이유와 필요에 대한 인식만 있다면 충분하다.
시스템화한 교육은 모두를 평범하게 만드는데 최적화되어 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그렇게 태어난 이유를 훈련으로 억누르거나 거부하게 만든다.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이 의미있게 읽히는 것은 비슷한 인간으로 시스템에 적응시키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생존에는 손해를 끼친다는 것 아니었을까? 안타깝지만 다중지능으로 또 다른 교육시스템안에서 도구로 밖에 쓰지 못하는 상황을 목격해야 하는건 한국뿐은 아니다. 결국 아이의 행동이 열쇠이며, 모든 아이의 다른 관심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 이유와 필요에 대한 인식만 있다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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