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가 필요해서 구글링하다가..
내가 예전에 쓴 글이 검색되었는데...내가 쓴건지 모르고 그책 읽으면서 나도 저런 문장들을 좋아했었는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보니...내 옛날 블로그였다능...헐...
암튼 필요해서 다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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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켄야에게 한 수 배우기
- 물건을 만들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생생하게 인식하는 것이며...
->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어떤 논의에도 사실 그대로의 인식태도를 지향하는 것을 빠뜨리면 위험하다. 디자인이 지향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세계관이 아니라 날것으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과 그 과정에서 탄생한 부산물인 합리성, 공정성, 보편성의 가치를 찾아가려는 노력이다.
- 개인의 재능과 장인적 품질을 통합한 우수한 제품은 시장에서 우위성 즉 '정평'을 얻게 되고 그것은 특별한 '가치'로서 보존된다. 이것은 '브랜드'라는 위력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가 높아진다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 정평을 얻는 다는 것은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 과정까지는 무수한 반복적 디자인이 존재한다. 품질우위는 반복과정의 맨 끄트머리에 존재하는 것일 뿐 그 반복이 끝난 것이 아니다.
-MIT의 존 마에다의 평가에 따르면, 컴퓨터는 '도구'가 아니라 '소재'이다. 이 표현은 주어진 소프트웨어를 통째로 삼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로 구축된 이 새로운 소재를 통해서 어떠한 지식의 세계를 개척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 사진의 소재는 피사체와 카메라, 환경이다. 즉 도구의 최종 쓰임새에 대한 탐색이 끝날 때 '사진작업'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디지털사진에서도 컴퓨터가 효율적 도구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사용자와 어떤 교감이 일어나고 있는가(컴퓨터에 대한 이해정도를 포함하고 있다) 하는 것과 함께 컴퓨터자체가 이미 소재적 발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cf) 픽사의 존라세터도 펜슬애니메이션을 펜슬이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 없듯이, 컴퓨터애니메이션을 컴퓨터가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남.
- 합리적인 '물건만들기'를 통해서 인간정신의 보편적인 균형과 조화를 탐색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넓은 의미에서 디자인적인 사고방식이다. 바구어 말하면 인간이 살아가는 것. 생활하는 것의 의미를 물건 만들기의 과정을 통해서 해석하고자 하는 의욕이 바로 디자인이다.
-> 정교한 디자인은 인간 삶의 의미에 대한 반추를 가능하게 해 준다.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용해된 디자이너의 섬세한 배려가 느껴지는 순간은 생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즉, 사용자와 디자이너는 '사용행위'의 순간 아주 밀접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인데 이런 디자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 삶에 대한 이해를 기초에 둔다. 또한 직관화된 디자이너의 '삶의 태도나 방식'에 대한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된다.
- '서다'라는 행위는 주체가 되는 인간의 의식적인 행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력'과 '어느 정도 딱딱한 지면'이 없으면 '사다'라는 행위는 실현되지 않는다. 무중력이면 몸이 붕 떠버릴 것이고 물이 깊은 수영장에서도 '서다'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경우 중력과 딱딱한 지면이 '서다'라는 행위를 '이끌어낸다'고 할 수 있다.
-> 세계는 모두 다른 체계로 되어 있다. (인위적인 것은 명문화된 법률이나 각종 문서속의 조항이지만 규범과 질서는 그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규범이 강요되면서 그 체계는 부서지고 말더라만...). 또한 그 서로 다른 체계가 만나서 충돌하거나 무한대의 조합을 기초로 한다. 체계를 이해하는자의 합리적 발상은 굿디자인에 다가서지만, 새로운 자의적 체계를 구축하는 것에 목적을 둔자의 강박적 발상은 폭력을 조장하기도 한다.
- 일상은 미의식을 키우는 온상이다
-> 인간은 미를 탐한다. 여전히 학습하고 있고, 학습은 전승되거나 의도적으로 거부되기도 한다. 무엇을 보고 들었기에 미를 추구하는가는 여전히 즐거운 논쟁거리다. 미의식은 자연에서 배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메트로폴리탄에게 자연으로 부터 학습하고 실천을 계획하라는 메시지는 매우 힘겹게만 들린다. 그래서 미의식이 사라진다는 것은 '의식'에 대한 오해다. 즉, 미의식은 오늘 아침 부터 잠들때까지의 일상생활에서 부터 발견한다. 의식하고 있는자는 쉽게 발견하지만 인식의 범위를 확장하고픈 욕망이 적거나 지적호기심으로 부터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서는 발견이 적고 주입되는 것이 많아지는 것.
- 이런 시대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지구와 자연환경을 주제로 삼는것만큼 기만에 넘친 행동은 없으리라....(중략) 미래나 지구 환경을 염려하는 이벤트에서 볼펜이나 커피 잔에 마크를 새겨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다니...,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 에콜로지...그린...뭐 이런 수식어들이 이젠 어느정도 식상해 질 법도 한데...빨리 이런 유행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많은 악용되는 것이 말없는 지구환경이다. 마크새길 시간에 오늘 사용한 종이의 양과 우리집 분리수거의 모습에 더 많은 행동에너지를 쏟아넣는 것이 도덕적이다.
- 냉정하게 주변을 바라보라. 스트레스 없는 쾌적한 커뮤니케이션을 갈구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디자인은 바로 그곳에서 제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관찰은 여전히 디자인개념에서도 핵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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