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에 2004년 이사왔으니 올해로 8년째 이 집에 살고 있다. 옆집엔 부부와 세자녀가 살고 있었다. 아저씨는 밝은 성격에 얼굴에 웃는 주름이 크게 보일 만큼 멋진 사람이고, 아주머니는 낯을 조금 가리시고 쑥스러움이 많은 분이지만 막상 마주할 땐 늘 예의바르게 인사해주시는 분이다. 아들둘에 딸아이 한명이다. 이사왔을 당시 막내가 태어났다. 세째아이로 딸이었다. 태어난지 한달이 되었다고 했으니 아마 요맘때가 생일일게다. 그 아이는 지금 8살이고 초등학교 1학년이다. 이집에 살면서 가장 즐겁고 신나는 기억은 옆집 아이들이었다. 아침이면 세명이서 밝게 웃으며 복도를 뛰어다니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이들 웃는 소리로 아침이 시작된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이었나 싶다. 어느날은 꼬마가 오빠들 학교가는데 따라나가며 우는 소리. 어느날은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와서 기승전결 없는 이상한 논리를 심각하게 펼치기도 하고(듣고 있자면 나는 너무 웃겼는데...아이들은 정말 심각하게 토론하는...), 또 어느날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소꿉놀이를 하느라 돗자릴 펴고 누워있었다. 친구들과 누워 자는 시늉을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마나 서로 깔깔대고 웃었는지 모른다. 길에서 마주칠때면 내가 바쁜 걸음으로 주차장을 가로질러가는 꽁무니에 자전거를 타고 따라와 인사를 했다. 동네 아이들이 "아는 아저씨야?"라고 하자 "아저씨 아냐...오빠야!"라는 말이 들렸고, 나는 뒤를 보며 윙크하고 사라지곤 했다. 큰 아이가 피아노레슨을 시작하고 도미솔을 벗어나지 않던 소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화음이 되고 어느날 아침엔 아이의 연주에 감동받으며 일어나기도 했다. 조금씩 악보를 보고 제대로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그 아침을 잊을 수 없다. 어느 저녁 집에 돌아왔을 때 Michael Jackson의 billie jean이 들렸다. 문을 열고 나가서 그 곡을 들었다. 다음날 아이를 만나서 잭슨을 어떻게 알아? 피아노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곡이야?라고 물었을 때 "아뇨...제가 좋아서 듣고 그냥 쳐본거에요..."라고 큰 아이가 대답했다. 그날 저녁은 나 들으라는 듯 Smooth Criminal을 연주했다. (
큰아이의 피아노연주녹음) 또 그 다음날은 엄마와 같이 문을 빼꼼 열고는 마이클 잭슨이 좋다며 활짝 웃었다. 아파트가 삭막하다고...? 이런 이웃이 있으면 삭막할 틈이 없더라. 14층사는 아이와 막내는 단짝이었는데 계단에서 동화책 읽는 소리가 너무 예뻤다.
지나다니면서 이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계단에서 시멘트의 냉기가 벌써부터 느껴진다. .
며칠 전 부터 차곡 차곡 정리된 박스를 복도에 내다 놓았다. 일요일에 버리려고 정리하나 보다 싶었는데, 그 옆에 점점 쌓여갔다. 이상하다 싶어서 물었더니 6월 1일에 이사가기로 했다고 전한다. 방은 두칸인데 아이들은 셋이고 이제 모두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좁을만도 하다.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갈거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둘째 아이였다. 둘째는 잘 생긴데다가 성격이 쿨하다. 막내동생이 오빠오빠 부르면서 길에서도 꼭 손을 잡고 다니는데, 약간 어색해 하면서도 동생손은 놓지 않는다.
정작 옆집은 전혀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을 이런 이웃과의 행복의 순간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날 이후로 조금씩 물건들이 버려지고, 다시 나왔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하더니 어느날은 소파가 복도에 나와 있었다. 둘째가 앉아 있다.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내놓은 거실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책을 읽는다. 말을 걸었다. "와...원래 여기에 의자가 있었으면 참 좋았었겠다. 완전 낭만 적인데...얼..."이라고 말했다. 둘째의 대답은 "그렇죠 뭐..."였다. 집에 들어가서 과자를 한 상자를 가져다 먹으라고 건네주었다. 조심스럽게 받더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정말 이 공간에 저런 푹신한 couch가 있었다면...꽤 재밌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겠다고 생각하며 또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지금...
이삿짐을 나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부터 분주했고 좀 전에 1층에 차가 들어와서는 물건을 실어내리는 것 같다. 아이들은 없다. 학교에 갔다.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막내 아이는 태어나 처음하는 이사를 맞이하게 될테지. 집안에 신발신고 들어가고, 신문지깔고 중국음식을 먹는 첫번째 경험 말이다. 둘째는 짐이 다 옮겨진 후에 새로 생긴 자기 방을 보면서 시크하게 쳐다 보고는 책본다고 의자에 앉아 있을테고, 큰 아이는 오늘 학원 안가도 된다는 말에 신나 자전거 타고 동네를 한바퀴 돌거다. 아이들에게 삶의 환경이 바뀌는 이 경험이 앞으로 일어나게 될 또 다른 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만들거라 생각하는데...내가 왜 이렇게 뿌듯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