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16일 월요일

일종의 복수극

2007년. 어느 기업의 사회공헌 사업 수퍼비전을 할 때였다. 
수퍼비전이니 내가 직접 캐스팅을 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어떤 작업자들이 캐스팅 되어 어린이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 작업자들은 그들의 보스가 시키니까 그 회의자리에 앉아 있었다. 즉, 오기 싫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강사료를 적게 주거나 그런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들 원장이란 사람이 시킨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 이외에는 크게 부딪힐 이슈는 없었다. 
회의자리에 들어갔을 때 흔히 말하는 똥씹은 표정들. 
나 건드리지 말라는 자세와 웃음기를 거둔 첫 인사가 오갔다. 

문화소외지역서도 가난한 지역의 어린이를 만나러 가는 미션.
서울에서 보던 어린이와 다르지 않은 "어린이"자체를 말하는데 불쑥 한명이 내 얘기에 끼어들었다. 

"그래서 지금 그 애들의 상태는 어떻다는 건가요...?"

그와 같이 앉아 있던 그 팀은 피식 웃거나 지들끼리 눈을 마주치며 낄낄댔다. 
물론 아주 기분이 나빴다. 
난 이런 상황이 오면 화가 나지 않고 오히려 차분해 진다. 
나도 웃음기를 거두고 말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만화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온다고 기다렸을 겁니다. 우리 동네에서 노는 것도 좋지만 형, 누나, 오빠, 언니들하고 놀 수 있는게 기쁠것이구요. 첫날의 어색함이 사라지면 온전히 선생님들에게 기대면서 집에 놀러오라고 초대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며칠간 자극적인 방법론으로 실컷 잘난척을 해도, 아이들의 기억은 어느 한 여름에 있었던 행복한 관계를 떠올리면서 사는 힘으로 전환시키겠죠.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을 반갑게 맞이할 겁니다. 그 애들의 상태는 그 모양이에요. 우리가 지금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건 상상도 못하면서 반가워 하는 그런 상태요."

분위기 싸해졌다. 그리고 난 프로그램 얘기로 다시 들어갔다. 
준비물은 무엇인지 점검하고, 일정 체크하고...등등. 

그들은 현장에 들어가서 어땠을까...
반전은 없었다. 반전이 있길 기대한 것이 나의 착각인지 모르겠으나...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그 깊숙한 곳에 담겨있는 시켜서 하는 귀찮음이 불쑥 불쑥 튀어 나오곤 했다. 

2015년. 그 팀에 속해 있던 사람을 만났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나에게 어린이상태를 물었던 그 사람같다. 서류에서 경력을 써놓았길래 확인해 보니 그 당시 그 프로그램에 왔던 사람은 분명하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하겠다고 지원서를 가지고 왔다. 
형평성이고 뭐고 난 아무 상관 없었다. 무조건 No라고만 말했다. 그 에피소드를 다른 심사위원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프로젝트나 프로그램은 언제나 허술함을 내재하니 그걸로 꼬투리 잡는 건 쉬운 일이다. 
교육하는 일에서 너네는 빠져라. 

2016년 4월 27일 수요일

사는게 뭘까

사는 것
살아있다는 것
죽지 않은 것
숨쉬는 것
유기체라는 것...

참 모르겠다.
어려서는 죽는 것을 모르겠더라.
아니 죽는 것이 무엇인지 더 궁금했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죽는 것은 모른다.
단 50이 다 되어가는 내 나이에 죽는 것은 원래 모르는 것라고 수용했다.
내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말이다.
그런데 점점 더 모르는 것은 사는 것이었다.

오늘 아침.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돌연사했다.
지난 주에도 통화하고, 인천에 한번 오겠다고 벼르고 벼르더니 결국 못왔다.
몇 달전 그 놈 아버지 돌아가셔서 만났다.
인천으로 이사했으니 집들이겸 밥해주겠다고 말하며 헤어졌다.
어찌 저찌 하여 엇갈리고 못 만나다 그 이후 못봤다.

명복을 빈다는 말.
죽은 뒤의 행복은 산 사람의 위안을 위한 말이지 않던가.
죽음은 모르겠다. 그래서 행복하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수 많은 종교지도자들은 죽는 다는 것에 해서 알게 된 것일까?
나처럼 원래 모르는 것이라고 수용했음에도
거짓말로 안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

이런 저런 허무함을 털어놓고 있는데 어떤 친구가 이 링크를 보내왔다.

그래서 유희가 삶의 전부라는 말까지도...
가슴팍에 꽂힌다.

2016년 4월 9일 토요일

힌터랜드



웨일즈에서 별일없이 평화롭게만 살 것 같은 풍경.
침착하며 아주 느리게 시간이 흐르는 삶의 그런 풍경에서 일어나는 경찰 이야기다.
셜록이나 CSI같은 속도감도 없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사람이라면...이 수사 방식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넥플릭스에서 최고의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참.
힌터랜드는 영국의 TV시리즈임에도, 쉽지 않은 대사를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웨일즈식 영어는 흔한 영국식 영어와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마치 인디언식 영어를 듣는 같은 발음이 묘한 분위기를 낸다.
즉, 매력있다.


2016년 4월 7일 목요일

편견

얼마 전 비누를 사러갔다. 
비누 뿐 아니라 다양한 생활용품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고급스러운 디자인과 실용적으로 보이는 제품이다. 수입품들이라 다소 값이 나가는 상점이었다. 
그 사장님은 전에 몇 번 본적이 있었고 그리 꽉 막힌 분은 아니었다. 여자분이고. 
친구들과 같이 갔는데 모두 서른이 넘은 남성. 즉 중년 남성이다. 이런 저런걸 골라 담고 생활에 유용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때 사장님의 한 마디. 
"남자 분들은 이런거 잘 모르시던데...잘 아시네요"
토마토 꼭지를 따서 먹고, 사과를 깎아 놓는 트레이를 사는건 성역할이 아니다. 더구나 더 좋은 생활용품을 사고 그걸 누리는 문화적인 삶에는 남녀 구분이란게 의미없다. 우리 세 명은 그 며칠전 건담을 사러갔다. 거기선 들을 수 없는 말이다. 건담을 사고 도구를 골라 담는 것과 사과 깎는 칼과 트레이를 사는 것은 차이가 없다. 그런데 확연히 구별되눈 반응. 

난 엄청난 편견 덩어리의 인간이다. 그래서 내 편견이 무엇인지 잘 알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무엇인지 알때가 많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입닥쳐야할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많지 않은 소수의 친구하고만 대화하려고 함) 

2016년 4월 6일 수요일

대부

명작이란건 두고 두고 생각나는 작품이 아닐까.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삶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좋아하는 영환 손 꼽힌다.
그 중 대부1-2는 참...
'영화는 이런거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10대에 처음 봤지만 두고 두고 다시 보게 되는 영화다.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어서...
시간내서 봐야지 하다가 어제 다시 봤다.
무려 다섯시간이 걸렸고,
다 보고 나서 또 한참 울었다.
슬픈것도 감동적인것도 아니고 그냥 울어야 할 것 같았다고나 할까.

감정에 솔직하다는 건 참 힘든일이다.
왜냐.
자기 감정이 무엇인지 그 실체를 파악하는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

2016년 3월 19일 토요일

화요비



2000년 당시 평창에서 캠프 중이었고...
그 캠프가 EBS가 주최한 것이었기 때문에 공개방송도 함께 초대했다.
사실 마지막날 저녁 때 별로 할 것도 없었기 때문에 공연이 만들어지는 것은 좋았다.
우리 스탭들도 좀 편하게 공연이나 보러가자고 합류했다.
이름모를 댄스 가수들이 좀 왔고...
그 중에 좀 유명한 누군가가 있었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건 박화요비.
데뷰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이라고 소개했다.
그저그런 댄스가수가 또 나오나 했는데 이 노랠 불렀다.
다들 깜놀.
헐...박화요비가 누구냐...
2000년 7월이었으니 박화요비가 방송에 나온지 한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을거다.
진짜 신인.

지금도 화요비를 보면 그때 평창의 밤이 떠오르곤 한다.
여전히 노래 잘하고 매력적인 보컬리스트.

2016년 3월 3일 목요일

문화예술교육의 컨설팅

어떤 특정한 장르예술에서 깊이 있는 성취를 얻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작품이 주는 영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예술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등식을 세우는 것은 큰 오류를 낳는다. 
하물며...
예술을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훈수는 당치 않다. 
컨설팅이란 행위가 허망한 이유다. 
문화예술교육씬에서 일어나고 있는 컨설팅의 절대다수가 함량미달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잠에서 깨보니 그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 
체계도 없고, 솔루션도 불분명한데 전국적으로 훈수군단이 이미 있다. 
그들이 존경받을 수 있는 예술가라면 작품으로 영감을 주면된다.  
제도교육계의 종사자라면 제도교육에나 힘쓰시라고 말하고 싶다. 예술교육으로 건너와서 오염시키지 말았으면 한다. 
단지 자신의 경험 만으로 훈수가 가능하다는 발상은 허술하기 짝이없다. 
어느날 보니 내가 그 풀에 들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난 더 이상은 안하기로 결심했다. 
이미 약속된 것은 가급적이면 이런 문제의식에 둔감한 사람들에게 넘길 생각이다.  

정말 애정을 가지고 컨설턴트로 활약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조언은 정말 피가되고 살이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진심 미안한 말이지만 현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구조에서 허접한 컨설턴트였음이 분명하다. 

절대다수의 문화예술교육의 컨설팅이야말로 컨설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