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은 크게 벌이고 할 수 있는 만큼 품을 많이 들인다.
큰 프로젝트는 대수롭지 않게하고 별것 아니란 마음을 먹고 덤벼든다.
이것이 나의 노하우.
2012년 1월 17일 화요일
2011년 11월 1일 화요일
홀트와 3년
올해로 3년째 홀트타운에서 수업을 한다. 2년동안 사진과 영상수업을 했고...올해는 동화책을 만들어서 출판했다. 아이패드로 그리고, 아이북스에 퍼블리싱하는 작업이었다. 나에게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그 수업자체에 감사했다.
1. 똑딱이로 단편영화
이 수업은 "프로젝트 a장면"이다. 비디오 카메라없이 똑딱이 카메라로 작업한 영화다. 일산의 홀트복지타운은 장애인이 모여사는 마을이다. 홀트에서 작업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교육을 통해 가장 많은 것을 얻는이는 역시 교육자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조그만 디지털카메라로 단편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를 기획 제작한 순열씨는 68년생 남자다. 아주 순박하고 활동적이며 멋내기를 좋아한다. 언제봐도 간지철철이다. 사람들은 순열씨를 지적장애인이라고 칭한다. 맞다. 지적장애인이다. 학습능력이 조금 더 있다고 해서 비 장애인이라는 구분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에게서 나이를 느끼는 건 주름생긴 이마와 거친 손이다. 순열씨는 늘 밝고, 강아지 사료걱정을 하며 산다. 무엇이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는 경계일까를 생각하게 하게 되는 이유다. 나도 늘 밝게 살려고 노력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끼니도 걱정한다.
영화제목인 제니는 순열씨가 키우던 강아지의 이름이다. 채 6개월을 살지 못하고 죽었다. 그 후로 몇 년간 순열씨는 제니의 무덤에 찾아가 살았을 때 좋아하던 먹이를 놓고왔다. 시나리오를 쓰는 그 당시에는 제니를 잊고 있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서 이걸 영화로 찍자고 제안하면서...제니가 더 많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단편영화로 한편으로 순열씨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알듯 모를듯 한 순열씨의 표정이 마지막 순간에 보인다. 그냥...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나간다. 어느날 제니가 보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었듯이 말이다.
2. 하루의 기억과 기록
이 수업은 "프로젝트 하루"다. 우린 하루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또 무엇으로 기록하는가. 안해도 된다. 아무 문제 없이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의미를 찾아보면 우리의 기억도 기록도 마치 대자연앞에서 느끼는 숭고함 같은 압도된 감정 같은 것을 만나게 된다. 간혹 감당하기 힘들때도 있다. 근데 어쩌겠는가 그게 나란 존재인데 말이다. 이런 하루를 지켜보며 경험을 타자화 시키는 수업이 홀트의 "프로젝트 하루"였다. 매일 매일 하루를 기록하며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제일 가까이 사는 언니의 모습이 달라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 때다. 이 수업에 참여한 신화와 함께 사는 혜정언니는 사진속에 단골 주인공이었다. 어느날은 서로의 약을 바꿔 먹어서 병원에 실려가고...또 어느날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웃다가 입에서 튀어나온 밥알을 떼주기도 한다. 전시가 가까워졌다. 이 사진전에서는 사진옆에 작가가 직접 녹음한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캡션을 녹음해서 MP3플레이어를 붙여 놓았다. 신화는 언니의 사진 석장을 고르고, 키166의 완벽한 미인인 언니의 모습을 음성으로 기록했다.
신화 by zoinno
3. 드로잉을 연습하고, 그림을 책으로 만들다.
그렇게 이야기에 살을 보태나갔다. 말이 안되는 상황인데 모두가 바라는 걸 담았다. 그리고 책으로 냈다. 원화전시를 하고, 출판기념회를 하고...친구들 초대해서 동화를 함께 읽어 내려갔다.
* iBooks 계정주소(미국계정이며 무료임) :
1. 똑딱이로 단편영화
이 수업은 "프로젝트 a장면"이다. 비디오 카메라없이 똑딱이 카메라로 작업한 영화다. 일산의 홀트복지타운은 장애인이 모여사는 마을이다. 홀트에서 작업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교육을 통해 가장 많은 것을 얻는이는 역시 교육자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조그만 디지털카메라로 단편영화를 찍었다. 이 영화를 기획 제작한 순열씨는 68년생 남자다. 아주 순박하고 활동적이며 멋내기를 좋아한다. 언제봐도 간지철철이다. 사람들은 순열씨를 지적장애인이라고 칭한다. 맞다. 지적장애인이다. 학습능력이 조금 더 있다고 해서 비 장애인이라는 구분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에게서 나이를 느끼는 건 주름생긴 이마와 거친 손이다. 순열씨는 늘 밝고, 강아지 사료걱정을 하며 산다. 무엇이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는 경계일까를 생각하게 하게 되는 이유다. 나도 늘 밝게 살려고 노력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끼니도 걱정한다.
영화제목인 제니는 순열씨가 키우던 강아지의 이름이다. 채 6개월을 살지 못하고 죽었다. 그 후로 몇 년간 순열씨는 제니의 무덤에 찾아가 살았을 때 좋아하던 먹이를 놓고왔다. 시나리오를 쓰는 그 당시에는 제니를 잊고 있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서 이걸 영화로 찍자고 제안하면서...제니가 더 많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단편영화로 한편으로 순열씨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에 대해 알듯 모를듯 한 순열씨의 표정이 마지막 순간에 보인다. 그냥...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나간다. 어느날 제니가 보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었듯이 말이다.
이 수업은 "프로젝트 하루"다. 우린 하루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또 무엇으로 기록하는가. 안해도 된다. 아무 문제 없이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의미를 찾아보면 우리의 기억도 기록도 마치 대자연앞에서 느끼는 숭고함 같은 압도된 감정 같은 것을 만나게 된다. 간혹 감당하기 힘들때도 있다. 근데 어쩌겠는가 그게 나란 존재인데 말이다. 이런 하루를 지켜보며 경험을 타자화 시키는 수업이 홀트의 "프로젝트 하루"였다. 매일 매일 하루를 기록하며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제일 가까이 사는 언니의 모습이 달라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 때다. 이 수업에 참여한 신화와 함께 사는 혜정언니는 사진속에 단골 주인공이었다. 어느날은 서로의 약을 바꿔 먹어서 병원에 실려가고...또 어느날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웃다가 입에서 튀어나온 밥알을 떼주기도 한다. 전시가 가까워졌다. 이 사진전에서는 사진옆에 작가가 직접 녹음한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캡션을 녹음해서 MP3플레이어를 붙여 놓았다. 신화는 언니의 사진 석장을 고르고, 키166의 완벽한 미인인 언니의 모습을 음성으로 기록했다.
신화 by zoinno
3년째 되는 해. 홀트식구들은 카메라가 친숙해졌다. 수업이 필요한게 아니라, 일상을 기록하며 사람들과 나누는 작업이 또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수업을 끝냈다. 이번에는 그림책이 어떨까. 아이패드로 드로잉하고, 아이패드로 책을 내자. 컴퓨터로 하는 작업은 마우스를 손에 쥐고 불편하다면, 아이패드는 직접 손에 대고 그릴 수 있으니...가능해 보였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에서 레이어를 만들고 배치하는 정교한 작업을 손가락으로 핀칭하여 조절할 수 있었다. 물론 캐릭터를 그리고 채색하는 건 드로잉북과 도화지를 이용하고 스캔받았다. 하지만 배경그림을 그리고 톤을 조절하는 건 아이패드로 충분했다. 스토리 작업에 들어갔다. 동화책을 보면서 웃는 이유는 아름다워서가 아니라...말도 안되서 웃긴다고들 했다. 난 이런게 더 즐거웠다.
"그래요...말도 안되죠...어떻게 달이 흘러내려요...하하하"
동화를 읽으면서 상상력이 생긴다기 보다는 이것이 실재하는 것인가 아닌가의 구분. 실제상황인가 아닌가에 대한 확인...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동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로 가기로 했다. 우리 이야기를 하자.
"다리가 불편해서 목발을 짚고는 계단을 내려오기 힘들어요. 복남씨도 행주씨도 힘들어요. 그런데 날아다닐 수 있는 우산이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요. 그걸 타고 내려오는 사람이 이 마을에 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런걸 그려야 할 것 같아요. 어때요?"
이렇게 했다. 우산이 어떻게 날수 있겠는가. 그건 또 말이 안되는거였다. 그래서 이렇게 수업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전동휠체어가 나오기 전에는 어떻게 다녔어요? 모두 집에 있거나 그냥 휠체어 밀면서 다니셨죠? 그때 멀리 못갔어요. 그런데 전동휠체어 나오니까 먼곳에도 다녀올 수 있잖아요. 그전에는 말도 안되는거였어요. 높은 언덕에 사는 사람을 위해서 이런 우산이 있다면 타고 다니실것 같지 않아요?솔직히 이건 설득이 아니라 나와 이들의 바람이었다. 사진작업을 하면서도 유독 계단사진이 많았던 분도 있다. 바로 보이는 위치까지 가기 위해서 엄청난 거리를 힘들게 휠체어로 밀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목발을 짚고는 올라가는 것 보다 내려오는게 더 위험하다. 그렇게 몇 번을 넘어져 이마에 몇 바늘 꿰매고 나타나시거나, 앞니가 부러지고 입술이 퉁퉁 부어있는 상태로 수업에 들어오시곤 했었다. 그렇게 날아다니는 우산이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이야기에 살을 보태나갔다. 말이 안되는 상황인데 모두가 바라는 걸 담았다. 그리고 책으로 냈다. 원화전시를 하고, 출판기념회를 하고...친구들 초대해서 동화를 함께 읽어 내려갔다.
* iBooks 계정주소(미국계정이며 무료임) :
행복한 우산마을
http://itunes.apple.com/gb/book/isbn9788996495680
달콤한 목욕
http://itunes.apple.com/gb/book/isbn9788997312009
북스토어에서 행복한 우산마을...이나 달콤한 목욕으로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아이패드와 아이폰에서 볼 수 있다.
* issuu 계정주소 : 데스크탑과 랩탑을 이용하여 두권의 동화책을 온라인으로 볼 수 있고, 다운로드 할 수 있다.
행복한 우산마을
http://issuu.com/bokmani/docs/umbrella_village/1
달콤한 목욕
http://issuu.com/bokmani/docs/a_sweet_bath/1
http://itunes.apple.com/gb/book/isbn9788996495680
달콤한 목욕
http://itunes.apple.com/gb/book/isbn9788997312009
북스토어에서 행복한 우산마을...이나 달콤한 목욕으로 검색하면 바로 나온다. 아이패드와 아이폰에서 볼 수 있다.
* issuu 계정주소 : 데스크탑과 랩탑을 이용하여 두권의 동화책을 온라인으로 볼 수 있고, 다운로드 할 수 있다.
행복한 우산마을
http://issuu.com/bokmani/docs/umbrella_village/1
달콤한 목욕
http://issuu.com/bokmani/docs/a_sweet_bath/1
2011년 10월 31일 월요일
칭찬, 때론 독이다.
1. 좀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느 강의. 그는 교육공학을 전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교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만약 교수라면 정말 큰일내겠다고 생각했고, 행동과 말이 엄청나게 불편했다.
무슨 돌고래도 아니고 사람에게 먹이줘서 통제하려 드냔 말이다.
철학없는 교육...그게 한국의 교육이란게 참...큰일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칭찬통장이란걸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칭찬통장은 칭찬스티커가 모여 있다. 약속한 마일리지가 쌓이면 청소면제권이나, 일기면제권으로 교환한다. 아이들은 칭찬스티커가 있으면 한다. 이젠 누가 볼때만...보상이 있을 때만...한다. 주도성을 최저치로 만들고 싶다면...지금 당장 칭찬스티커를 꺼내서 붙여라. 그럼 쉽게 가능하다. 그리고 오늘 하루의 통제가 쉽다. 대신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타인은 경계의 대상이 되고, 나만 칭찬받을 것을 찾아나서기 시작할 것이다. 그 칭찬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훈련된다. 아주 차근 차근 쌓여간다.
(그 강사는 책읽고 공부할 시간이 없다면...60분짜리 EBS다큐프라임이라도 좀 봤으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는 어느정도 억지가 있기 마련이지만 최소한 그런 노력이라도 했다면 엄한소리 늘어놓진 않을 듯하다. 다큐프라임에서는 실험집단을 놓고 칭찬스티커를 통해서 동기가 사라진 아이들을 보며 부모의 한탄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2. 또 같은 강사의 이야기다. 어느 맹학교의 교육환경에 대한 이야기였다. 맹학교의 교실은 어떻게 생겼을까요...라는 질문을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대답은 맹학교의 교실도 똑같겠지요. 어차피 그 아이들이 성장해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려면 같은 환경에서 교육받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라고 누군가 대답했다. 옳거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사의 이야기기에 토할 뻔 했다.
맹학교의 환경을 보았다면서 정작 학습자인 맹인의 환경을 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시각장애인중에는 전맹도 있지만 저시력학생들도 상당수다. 시작장애인 유도블럭이 노란색인 이유는 진출색(난색계통)을 사용해서 쉽게 구분하게 만든거다. 이게 상식이다. 저시력학생들이 존재하는 한 교실에는 시각경험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더구나 첫번째 대답이었던 장애인이 사회에서 비장애인과 동일한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듣기만을 고려한 교실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소름이 쫙 끼쳤다.
3. 예전에 어떤 선생님이 말했다.
이게 교육의 현실이다.
기본적으로 교육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한국사회의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믿음도 기대도 없다. 마주치지 않고 살고 싶을 뿐이다. 뭔가 논리적 글쓰기가 안된다. 그 강의에서 들은 내용때문에 감정이 격해져서 그러는 것 같다.
어느 강의. 그는 교육공학을 전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교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만약 교수라면 정말 큰일내겠다고 생각했고, 행동과 말이 엄청나게 불편했다.
"오늘 강의 너무 열심히 들으셔서...제가 준비한거 안써도 될 것 같아요. 강의 열심히 들으시면 칭찬스티커 붙여드리려고 가져왔거든요. 아이들도 교사도 이거 붙여주면 훨씬 열심히..."경악...!!!!!
무슨 돌고래도 아니고 사람에게 먹이줘서 통제하려 드냔 말이다.
철학없는 교육...그게 한국의 교육이란게 참...큰일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칭찬통장이란걸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칭찬통장은 칭찬스티커가 모여 있다. 약속한 마일리지가 쌓이면 청소면제권이나, 일기면제권으로 교환한다. 아이들은 칭찬스티커가 있으면 한다. 이젠 누가 볼때만...보상이 있을 때만...한다. 주도성을 최저치로 만들고 싶다면...지금 당장 칭찬스티커를 꺼내서 붙여라. 그럼 쉽게 가능하다. 그리고 오늘 하루의 통제가 쉽다. 대신 아이들은 자발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타인은 경계의 대상이 되고, 나만 칭찬받을 것을 찾아나서기 시작할 것이다. 그 칭찬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훈련된다. 아주 차근 차근 쌓여간다.
(그 강사는 책읽고 공부할 시간이 없다면...60분짜리 EBS다큐프라임이라도 좀 봤으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큐는 어느정도 억지가 있기 마련이지만 최소한 그런 노력이라도 했다면 엄한소리 늘어놓진 않을 듯하다. 다큐프라임에서는 실험집단을 놓고 칭찬스티커를 통해서 동기가 사라진 아이들을 보며 부모의 한탄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2. 또 같은 강사의 이야기다. 어느 맹학교의 교육환경에 대한 이야기였다. 맹학교의 교실은 어떻게 생겼을까요...라는 질문을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대답은 맹학교의 교실도 똑같겠지요. 어차피 그 아이들이 성장해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려면 같은 환경에서 교육받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라고 누군가 대답했다. 옳거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강사의 이야기기에 토할 뻔 했다.
"제가 예전에 어떤 맹학교에 가서 환경에 대한 조언을 주고 왔어요. 그 교실환경은 정말 다른 교실과 똑같았어요. 맹학교 아이들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잘 듣을 수 있게 만들면 됩니다. 그런데 뒤에는 그림이랑 사진도 붙어 있고, 보통 교실과 똑 같은 것이 문젭니다. 교육환경은 학습자의 상황에 맞춰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그런게 안지켜지고 있는 겁니다"또 경악했다.
맹학교의 환경을 보았다면서 정작 학습자인 맹인의 환경을 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시각장애인중에는 전맹도 있지만 저시력학생들도 상당수다. 시작장애인 유도블럭이 노란색인 이유는 진출색(난색계통)을 사용해서 쉽게 구분하게 만든거다. 이게 상식이다. 저시력학생들이 존재하는 한 교실에는 시각경험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더구나 첫번째 대답이었던 장애인이 사회에서 비장애인과 동일한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듣기만을 고려한 교실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은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소름이 쫙 끼쳤다.
3. 예전에 어떤 선생님이 말했다.
"저는 아이들에게 벌로 청소를 시키지 않습니다. 모두가 나눠해야 하는일이 벌이 되었을 경우 그 일이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에요"이런게 교육자의 철학이다.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싫다 좋다의 선택이나 쿠폰같은것과의 교환조건을 만들어서 안된다. 대체 면제권을 줘서 얻는게 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칭찬통장은 그래도 개인이 본다. 초등학교 교실에 가면 무슨 보험설계사들의 실적 그래프 같은 것이 주욱 붙어있는 것을 자주 본다.
이게 교육의 현실이다.
기본적으로 교육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한국사회의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믿음도 기대도 없다. 마주치지 않고 살고 싶을 뿐이다. 뭔가 논리적 글쓰기가 안된다. 그 강의에서 들은 내용때문에 감정이 격해져서 그러는 것 같다.
더 못쓰겠다.
오늘은 요기서 끝. 휴...
2011년 10월 24일 월요일
CC 아트 해프닝 Art Happening 운수좋은 날
:이유는 없지만, 프로덕션 노트를 남겨야 할 것 같아서 몇 자 적어둠.
예술은 모두의 삶이지만 아무나 예술가가 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술적 삶을 지향하고 살 수 있지만 아티스트라고 모두를 지칭할 순 없다. 때로는 절실함도 좀 필요하고, 때로는 극단적인 감수성을 요하기도 하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냥 그렇단 말이다...쩝.
1.
![]() |
| 2009년 영풍에서 전시한 사진 |
![]() |
| 도서관의 사진전/법정스님의 책에 전시 |
* Seredipity day's FOTO (official site)
2.
![]() |
| 전시 준비 하면서 이러고 놀고 있다...+_+;;;; |
애니메이션 "본능미용실"
* 아트해프닝 공식블로그 리뷰
3.
영풍문고에서 사진전을 열면서 내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외국서적이었는데, 지인들의 독특한 표정만을 모아서 조금 그로테스크하게 그린 드로잉노트같은 책이었다. 위트도 넘쳤고 흥미로운 스타일의 터치도 좋았으나 무엇보다 작가가 즐거워보였다. 그림체가 무섭다고 드로잉자체가 무섭진 않은 법이다. 제목도 기억이 안난다. 아무튼 그 드로잉을 보고 며칠간 그 이미지를 상상하며 드로잉을 시작했다. 며칠 뒤 지쳤다. 그전에도 책에 낙서하는 오늘의 낙서라는 시리즈로 드로잉을 계속하긴 했지만...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서 데일리드로잉을 시작했다. 하루 하루가 쌓이면 언젠가 정말 엄청난 하루를 만나게 된다는 거...알고 있기 때문에 시작했다. 매일 한장의 드로잉...하루에 10분이상 30분이하...잘하려고 하지 말기...등 몇가지 원칙을 정했다. 그러면서 한두명씩 같이 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데일리 드로잉 때문에 그동안 크게 관심없었던 화가인 친구들의 작업이 궁금해졌다. 친구들의 작품을 본적은 있는데, 매일하는 드로잉을 본적은 없다. 뭘할까? 그들도 맨날 그려놓고 망치고, 버리고, 숨기기도 하겠지? 그건 당연한거야...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작업들이 왜 없겠어. 발가벗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습작이 왜 없겠냐구...
그런데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있지 않으면 지금의 멋진 작품이 어떻게 나왔겠는가를 생각해 보니...작가의 쓰레기통속에 들어있는 습작들의 가치가 새롭게 느껴졌다. 이번 아트해프닝에서 해보고 싶었다. CC에서 회의하면서 드로잉전시 어떻게 할거냐고 나에게 자꾸 물을 때 사실 나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지만...작가를 먼저 섭외하지 않으면 시작하자고 선뜻 내보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해프닝에서 가장 늦게 스타트하게 된 섹션이다. 아무튼...세히와 방양과 토끼도둑이 참여해주고, 그들이 쳐박아둔 습작들이 공개되어 전시를 열었다. 세히의 작업실에 찾아가서 동영상을 찍고 전시회장에서 무한 반복해서 틀었다. 슥슥슥 뭔가를 그리다 구겨서 바닥에 버린다. 그런데 그 안에는 작품이 되지 못한 날것이 들어있더라...라는 컨셉의 영상을 작업했다.
* 편집이 완료되지 않은 소스묶음이다. 상영한 버전과 다름. 최종버전이 어딨는지 모르겠다...ㅋ
생각지도 않았던 인터렉티브가 생긴건 그 다음의 일이다. 토끼도둑이 언젠가 만화가의 드로잉전시에서 한점의 그림을 훔쳐왔던 기억을 전시하자, 사람들이 몰래 그림을 훔치기 시작했다. 대담하게도 자기 그림을 대신 붙여놓기도 하고, 간단한 글을 써서 고맙다고도 했다. 누구도 대놓고 가져가란 사람은 없지만 훔치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우린 그 자체를 즐겼다. 은근 누구 그림이 가장 많이 도둑질의 대상이 되었는가가 경쟁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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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선재센터 1층의 드로잉전시 [탄생의 기원] |
4.
어느날 작곡가인 지인에게 물었다. "선생님의 곡은 어디서 들을 수 있는거죠? 현대음악이 대중적일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최소한 어딘가에서 다운받거나 할 수 있는거 아닌가요...?" 현대음악의 현주소...유튜브에서 보는 퍼포먼스는 멋지긴 하지만 좀 과하다 싶은 것이 훨씬 많았다. 작곡가가 이렇게 많은데 왜 나처럼 음악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접근이 안될까 싶었던 것 같다. 아트해프닝에서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음악을 듣고 싶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제안해 봤다.
"이런건 가능하지 않을까요? 온라인에서 유저가 사진을 제공하면, 그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은 작곡가가 곡을 만들고, 연주자를 섭외해서 공연을 하는거..."
담박에 오케이! 해봅시다. 이렇게 결정했다. 생각만해도 짜릿한 경험일것 같았다. 해프닝에서는 사진과 더불어 사연도 받았다. 그저 일상적인 경험들, 큰 사건이 아니어도 나에게 의미있는 일들...이 사진과 사연속에 담겼다. 생각해보면 대체로 우리가 사는 게 그렇지 않을까?
진선북카페 마당에서 야외연주회를 열었다. 낭만적인 밤!!!!! 연주회가 끝나고 그 사진의 주인공과 가족들은 작곡가에게 찾아갔다. 서로 만나서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한사람 한사람이 주인공...모두가 삶의 주인공이라는 말이 이렇게 실감난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 평생을 못잊을 연주회의 밤이 될 것 같다. 지금도 그 풍성하고 꽉 채워진 느낌의 공연장 풍경이 눈 앞에 있는 것 처럼 선명하다. 아트해프닝을 통해 만들어진 곡은 CD로 만들어지고 음원을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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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선갤러리 마당의 연주회 |
* 아트해프닝 공식블로그 리뷰
* 공식적으로 배포하는 음원. CCL에 따라 자유롭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음.
5.
지구에 비는 꼭 내립니다. 하지만 어느 지역에 내릴지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는 필연이고 다른 하나는 우연입니다.예술은 우리가 인간이란것을 증명하려는 끝없는 시도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부질없기도 합니다.다시 생각해 보면 인간에겐 예술이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언제 어느곳에서 예술과 예술행위가 일어날 것을 가늠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2011년 CC Art Happening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꼭 해야만 하는 일"임과 동시에 "꼭 하지 않아도 아무일도 안생길"사건입니다.-우연히 어느 카페에서 휴지조각을 주워보니 감동적인 드로잉이 담겨있다면...-친구가 보내준 어느 웹사이트 주소의 한 귀퉁이에 걸려있는 링크를 따라가서 평생잊지 못할 단편애니메이션을 봤다면...-오래전에 블로그에 써 놓았던 짧은 글을 읽고 영감을 얻어 어느 작곡가가 창작을 하고 연주회를 한다면...-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다 내가 살던 동네의 골목길 사진을 발견하고는 상념에 잠긴다면...이런 사건은 우리가 살며 만나게될 예술이면서, 언제 어느곳에서 일어날 지 예측하기 힘든 해프닝입니다.지금 이 짧은 초대의 글은 어떤 경로로 읽게 되셨나요...?
아트해프닝의 초대이기도 하면서 전시컨셉을 설명하는 글이다. 초대글쓰는 거 딱딱해서 별로 좋아하진 않는 편인데...아트해프닝은 진심으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글쓰는게 좋았다.
아트해프닝이 거의 끝났다. 아쉬운게 있냐고? 없다. 아쉬울거 남길것 같으면 시작도 안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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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carth.net/
CC아트 해프닝 / 전 우주의 친구들 "본능미용실"
시작은 이랬다.
"독립애니메이션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인디indie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어서가 아니라 배급 채널을 자체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묻게된 당돌하고 어이없는 질문은 어떻게 당신의 작품을 볼 수 있는가! 에서 맴돌고 있더라. 많은 단편애니메이션들이 제작지원을 받는다. 그렇게 공공기금을 지원받지만 공공의 채널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를 열심히(?) 실행하고 있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공공이라고 해서 무료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발빠르게 팔릴만한 것을 걸러내는 상업적인 시스템이 아니고, 가치있기에 우리사회의 경험재로 남기고 싶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색하면 정보는 나오지만 구매할 방법은 없네요...
꼭 영화제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거죠...? 꼭 영화제에 가야만 하는거죠...?"
"그럼...감독님! Creative Commons Korea에서 작품을 함께 구상하고, 조금 새로운 방식으로 배급 해보면 어떨까요? 창작과 공유를 동시에 하면서, 제작비도 마련하고 독립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도 만나는 거 어때요?"이렇게 질문을 바꾸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은 일터스트레이터이며 애니메이션 감독인 홍학순님이다. 역시 이런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제작방식이나 배급에 대해선 똑 부러진 대안은 없었다. 아트해프닝에서 그 답은 찾은 것은 물론 아니다. 그저 수천만가지 방법중 하나를 택했을 뿐이라고나 할까. CC가 제작비를 지원하고 CCL을 통하여 공유하는 후원의 방식을 택할것인가, 작가와 관객이 온라인에서 만나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조합을 실험할 것인가에서 고민하게 되었다. 아트해프닝은 "해프닝"인 후자를 선택했다. 온라인에 시놉시스와 컨셉아트를 공개하고 후원자를 모집하는 방식이다. 온라인으로 만나게 된 사람들과 일명 본능상담(애니메이션의 주제이기도 하며, 혼자라면 쉽게 알지 못할 진짜 자기 모습을 찾는)을 진행하여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등장하게 작업했다. 온라인에서 소셜펀딩페이지를 열고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후원 유저 출연자섭외가 마감되었다. 완성된 애니메이션 DVD와 원화를 받는 조건으로 후원한 사람들이나, 상영회에 초대받고 싶어서 후원한 사람도 있었다. 홍학순감독은 입에서만 달콤한 말을 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러기에 제작비를 보태달라는 말이 다소 거칠지만 아주 솔직하게 등장했다. 실제로 그랬다.
이번 프로젝트에 실려 있던 그림이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건 사람이다. 그래서 쌀도 사야 하고, 맛있는것도 먹어야 한다. 등장인물인 우유각소녀와 윙크토끼가 솔직하게 말한다. 창작과 공유를 위한...블라블라. 또는 인디애니메이션을 소개하기 위한...블라블라가 아니라 제작비로 쌀사고 맛있는것을 먹으면서 하겠다는 말이다. 이렇게 제작비를 모은 후 바로 본능상담에 들어갔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킨건 분명 아닐거라고 본다. 감독이나 후원자가 아직 서로 만날 준비가 덜 되었을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즐거운 참여방식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잡음이 생기진 않았다. 만약 불특정다수가 동기없이 후원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기획과 제안으로 부터 아트해프닝까지 남은 기간은 5개월남짓. 단편애니메이션을 5개월간 작업할 수 있다고 보장하긴 어렵다. 더구나 펀딩을 진행해야 하고, 후반작업시간을 확보하는 일이 숙제로 남았다. 최종 캐릭터가 결정되고 난 이후에 본격적으로 작화가 시작되었다. 빠른 속도로 작업한다고 해도 최종 믹싱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더구나 아트해프닝 웹사이트 오픈을 감안한다면 더 시간이 촉박했던 건 사실이다. 약속한 시간까지는 못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웹사이트오픈에는 맞추지 못했지만, 아트해프닝기간에 정확하게 최종 편집본이 나왔다. 10월 17일(18일이 오픈행사였음)밤에 최종본을 받았다는건 참 짜릿한 즐거움을 주었다. 따끈따끈하게 오픈행사에서 상영했다. 본능미용실 작품과 더불어 원화를 전시했다. 뜨거운(!) 관객의 반응은 상영공간을 들어오면서 만나게 되는 원화의 힘이라고 생각된다.
아직 할일이 더 남아있다. 애니메이션 본능미용실은 원본소스를 공개할 예정이다. 주제가의 음원과 반주 음원 역시 CCL을 탑재!하고 공유된다. 주제가를 누군가 불러서 새로운 노래를 만들 수 있고, 원한다면 원본소스에 새로운 더빙을 할 수도 있다. 새로운 버전의 본능미용실이 만들어지면 그 버전에 맞는 해석으로 또 다른 2차 3차 저작물이 만들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현재 주제가를 개사해서 부르고, 더빙하고 싶다는 어린이들과 새로운 음악으로 사운드트랙을 채우겠다는 사람들이 소스가 공개되길 기다리고 있는 중임)
2011년 9월 25일 일요일
정보배포에 대하여
1.
공공정보가 공유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철학에 동의하며 산다. 그것은 무료여야 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뉴욕의 공공정보가 오픈되어 시민의 삶이 풍요로와 졌다는 훈훈한 사례같은걸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공기금으로 생산된 정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공공기금으로 어떤 강의가 진행된다면, 강의에 대한 접근권이 열려 있어야 하고 그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도록 오픈하는 당연한 일이다. 반면 그 기록이 동시에 오픈되어야 하는가? 그건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된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획을 필요로 한다. 기록물로의 가치를 가져야 하며, 면대면 강의의 성격과 다르게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건너가게 될 매체의 속성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간혹 강의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경우가 있다. 강의는 면대면으로 진행되고 사람들과의 현장성이라는 측면, 즉 호흡이 있다. 그런데 그 호흡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채 부적합한 장비로 그 내용만의 기록을 공유한다면 사실 강의에서 제공하고자 했던 맥락이 삭제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 기술적 문제는 사실 부차적인 이유다. 정말 그 정보가 꼭 필요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형편없는 동영상이나 복사에 복사를 거듭한 문서도 가치가 있을 테니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배포의 문제다. 정부산하기관들이나 사회단체들이 공공기금을 이용하여 공공정보를 생산해 낸다. 공공기금이기 때문에 정보가 생산되면 그 정보는 공공의 것이여서 어떤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누구나(아무나는 결코 아니다)접근하여 열람할 수 있고 가공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정보들의 무작위로 배포되는 것이 비용의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배포하기 위해 엄청난 예산이 사용되고, 실제로 그 정보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파악되지 않음에도 무작위로 배포하는 것이 왜 멈춰지질 않을까 늘 궁금하다.
2.
98년인가...? 청소년개발원에서 청소년지도자를 위한 수련거리(단어도 촌스럽고 웃겼다. 지금이 아니라 당시에도 유치했다)를 개발한다고 연락을 받았다. 청소년수련실, 수련관등에서 수련거리를 가지고 각종 프로그램을 하는데 참고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쓴다거나, 현재 청소년관련업종에서 꼭 알아두었으면 하는 공공정보를 묶어 내는 일이었다. 난 두가지 모두에 열심히 참여했다. 당시 청소년관련직종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대적 정보교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수련거리라는 이름이 촌스러웠지만 이 작업을 통해서 전국의 청소년단체등에 배포된다고 하니 많은 네트워크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2003년까지 핸드북이나 연구물에 참여했다. 2003년이후 이런 작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이유가 있다. 사실 이런 작업에 참여하면, 지금까지 나와 내 동료들이 함께 하던 사업들이나 프로그램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글로 쓰고 정리하면서 평가도 되고 이후 새로운 작업을 선택할 때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딱 그 뿐이다. 정작 인쇄되어 전국에 배포되면 정말 그 정보를 보는 사람이 드물었다. 전국의 청소년지도자들이 모이는 곳에서 강의할 때마다 거의 똑같은 풍경이 반복되었다. 강의 끝나고 꽤 많은 수가 찾아왔다. 지금 하신 작업내용이나 사례가 필요하다고 했다. 혹시 오늘 발표자료를 좀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한참 이야기 나누다가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물었다. 그때 그 분들은 전국의 청소년수련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작년에 만든 각종 자료들은 전국 수련관에 이미 배포되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나에게 또 찾아 왔을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이 자료보다 더 좋은 종이에 더 잘 정리된 내용은 선생님의 사무실에 꽂혀 있습니다"
강의 마치고 돌아와서는 사무실 책장에 꽂혀 있는 각종 자료집을 다시 보게 되었다. 참 많더라. 아무도 손대지 않고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자료들이 수백권이 넘었다. 보고 싶지도 않고 볼 이유도 없었던 자료집과 각종 정보지. 그리고 인쇄된 책자들이다. 내가 생산한 정보도 남의 사무실에 이런 공해를 만들고 있을 것이 뻔하다고 생각하니 참 창피했다.
3.
2001년에는 new3R이라는 청소년교육프로그램 자료집을 냈다. 꽤 완성도 있게 제작되었다. 초기에는 이 자료집을 배포하지 않고 신청자에 한해 워크숍에 왔을 때만 나눠주었다. 공들여 만들었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주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 당시는 꽤 신선한 책이었을 것이다. 형식도 그랬지만 내용도 딱 2001년 현재의 청소년의 고민거리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났다. 그 자료집은 일부만 업데이트 되었지만 재판 삼판을 거듭해 인쇄되고, 학교교사에게 워크숍이 오픈되었다. 제도교육의 교사에게 오픈된다는 것은 곧 무료배포를 의미한다. 난 그게 불만이었다. 그들은 이 자료집의 소중함을 잘 못느꼈다. 그저 가져가서 학교에 꽂아놓았다. 2004년 어느날 어느 중학교 교장선생님이 특강으로 날 초대했다. 교사가 대상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교감선생님과 교무실에서 차마시자고 해서 잠깐 앉았다. 몇 몇 교사들이 강의 좋았다며 함께 앉았다. 그 대화속에는 "오늘 들은 이런 내용들은 어디가서 좀 자료를 볼 수 없나요...?" 뭔가 대답을 하려는데 어느 교사의 뒷자리 책장에 new3R자료집이 두권 나란히 꽂혀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어딘가 찾아보시면 자료야 없겠어요. 제가 책을 몇 권 추천해 드릴게요...한번 사서 보세요"
난 그 교사의 뒤에 있는 자료집을 가리키지도, 그 필자중 한명이 나였다는 것을 말하지도 않았다. 그냥 교양서적들을 몇 권 소개해 줬다. 이건 단지 나의 불친절이 아니라...이런 방식의 배포에 이젠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한두번 일어난게 아니다.
우리 사회는 떠먹여주는데 익숙한가? 아닐것 같다. 그런데 왜 무료 무작위배포가 주장되는지 모르겠다. 무료일때 일단 가지고 있으면서 안정감 같은 것을 주는 모양인데 결국 그렇게 사장되는 건 누가 책임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렇게 소비되지도 않는 각종 자료집과 책자, 동영상자료들로 수십억원이 낭비된다고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 중 하나가 나였다는 걸 생각하니 참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4.
다음세대재단과는 참 오랜 관계를 맺고 일을 같이 하고 있다. 재단의 사업중에 유스보이스센터가 있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의 사업이니 거의 만 4년간 진행했다. 올해 발표회를 열었다. 사실 발표라기 보다는 컨퍼런스에 가까운 일이었다. 제목은 "미디어교육3.0 beta - 유스보이스센터 미디어교육 3년의 경험"이었다. 3년간의 교육경험을 모아 책을 냈다. 이 안에는 교육내용과 더불어 수퍼비전의 기록이 생생하게 담겼다. 기업의 펀드라지만 공익을 위해 내놓은 기금이며 그 기금으로 사업을 했다. 그리고 사업의 결과를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면서 우리가 생산한 내용과 자료집을 돈주고 팔긴 싫었다. 우리는 회의에서 이런 결론을 냈다. 분명 이것을 수천권 찍어서 전국의 청소년관련 단체와 미디어교육센터들에 배포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안했다. 워크숍에 초대된 수 만큼만 찍었다. 현장에 초대된 사람들에게 정말 소중한 이야기를 전하고 그 정리된 내용과 CD안에 우리의 내용을 동영상으로 담아 배포하자는 결론이었다. 정말 딱 80명을 초대했고 자료집은 정확히 100권을 인쇄했다. 넘버링을 해서 나눠주었다. 한정판이고 1인당 1권씩 가졌다. 이후에 이 자료집을 어딘가에서 보고 필요하다는 사람들에게는 PDF로 전해주었다. 함부로 나눠주고 누군가의 책장에 수백가지 장식물중에 하나로 치부되는 자료집이라면 우리가 이렇게 애써서 작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참 만족스러웠다. 인쇄비가 아깝지 않았다.
수퍼바이저의 권한(?)을 남용하여 1번보다는 100번의 책을 갖고 싶다고 특별히 부탁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일련번호가 100번이다. 꽤 의미있는 일을 했고, 나누어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기에 합부로 우리의 작업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5.
오늘도 내 책장에는 내가 원하지 않는데 쌓여가는 각종 공공기금으로 제작된 자료집이 쌓여간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파트의 종이모으는 일요일에 내다 버릴 예정이다. 아깝고 또 아깝다. 이런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하진 않겠다고 다시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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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0년 11월 30일에 쓴 글이다. 임시저장해 놓고 게시하지 않았던 글.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게시함.
공공정보가 공유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철학에 동의하며 산다. 그것은 무료여야 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뉴욕의 공공정보가 오픈되어 시민의 삶이 풍요로와 졌다는 훈훈한 사례같은걸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공기금으로 생산된 정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공공기금으로 어떤 강의가 진행된다면, 강의에 대한 접근권이 열려 있어야 하고 그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도록 오픈하는 당연한 일이다. 반면 그 기록이 동시에 오픈되어야 하는가? 그건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된다.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획을 필요로 한다. 기록물로의 가치를 가져야 하며, 면대면 강의의 성격과 다르게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건너가게 될 매체의 속성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간혹 강의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경우가 있다. 강의는 면대면으로 진행되고 사람들과의 현장성이라는 측면, 즉 호흡이 있다. 그런데 그 호흡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채 부적합한 장비로 그 내용만의 기록을 공유한다면 사실 강의에서 제공하고자 했던 맥락이 삭제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 기술적 문제는 사실 부차적인 이유다. 정말 그 정보가 꼭 필요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형편없는 동영상이나 복사에 복사를 거듭한 문서도 가치가 있을 테니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배포의 문제다. 정부산하기관들이나 사회단체들이 공공기금을 이용하여 공공정보를 생산해 낸다. 공공기금이기 때문에 정보가 생산되면 그 정보는 공공의 것이여서 어떤 저작권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누구나(아무나는 결코 아니다)접근하여 열람할 수 있고 가공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정보들의 무작위로 배포되는 것이 비용의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배포하기 위해 엄청난 예산이 사용되고, 실제로 그 정보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파악되지 않음에도 무작위로 배포하는 것이 왜 멈춰지질 않을까 늘 궁금하다.
2.
98년인가...? 청소년개발원에서 청소년지도자를 위한 수련거리(단어도 촌스럽고 웃겼다. 지금이 아니라 당시에도 유치했다)를 개발한다고 연락을 받았다. 청소년수련실, 수련관등에서 수련거리를 가지고 각종 프로그램을 하는데 참고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쓴다거나, 현재 청소년관련업종에서 꼭 알아두었으면 하는 공공정보를 묶어 내는 일이었다. 난 두가지 모두에 열심히 참여했다. 당시 청소년관련직종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대적 정보교환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수련거리라는 이름이 촌스러웠지만 이 작업을 통해서 전국의 청소년단체등에 배포된다고 하니 많은 네트워크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2003년까지 핸드북이나 연구물에 참여했다. 2003년이후 이런 작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이유가 있다. 사실 이런 작업에 참여하면, 지금까지 나와 내 동료들이 함께 하던 사업들이나 프로그램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글로 쓰고 정리하면서 평가도 되고 이후 새로운 작업을 선택할 때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딱 그 뿐이다. 정작 인쇄되어 전국에 배포되면 정말 그 정보를 보는 사람이 드물었다. 전국의 청소년지도자들이 모이는 곳에서 강의할 때마다 거의 똑같은 풍경이 반복되었다. 강의 끝나고 꽤 많은 수가 찾아왔다. 지금 하신 작업내용이나 사례가 필요하다고 했다. 혹시 오늘 발표자료를 좀 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한참 이야기 나누다가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물었다. 그때 그 분들은 전국의 청소년수련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작년에 만든 각종 자료들은 전국 수련관에 이미 배포되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나에게 또 찾아 왔을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이 자료보다 더 좋은 종이에 더 잘 정리된 내용은 선생님의 사무실에 꽂혀 있습니다"
강의 마치고 돌아와서는 사무실 책장에 꽂혀 있는 각종 자료집을 다시 보게 되었다. 참 많더라. 아무도 손대지 않고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는 자료들이 수백권이 넘었다. 보고 싶지도 않고 볼 이유도 없었던 자료집과 각종 정보지. 그리고 인쇄된 책자들이다. 내가 생산한 정보도 남의 사무실에 이런 공해를 만들고 있을 것이 뻔하다고 생각하니 참 창피했다.
3.
2001년에는 new3R이라는 청소년교육프로그램 자료집을 냈다. 꽤 완성도 있게 제작되었다. 초기에는 이 자료집을 배포하지 않고 신청자에 한해 워크숍에 왔을 때만 나눠주었다. 공들여 만들었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주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그 당시는 꽤 신선한 책이었을 것이다. 형식도 그랬지만 내용도 딱 2001년 현재의 청소년의 고민거리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났다. 그 자료집은 일부만 업데이트 되었지만 재판 삼판을 거듭해 인쇄되고, 학교교사에게 워크숍이 오픈되었다. 제도교육의 교사에게 오픈된다는 것은 곧 무료배포를 의미한다. 난 그게 불만이었다. 그들은 이 자료집의 소중함을 잘 못느꼈다. 그저 가져가서 학교에 꽂아놓았다. 2004년 어느날 어느 중학교 교장선생님이 특강으로 날 초대했다. 교사가 대상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교감선생님과 교무실에서 차마시자고 해서 잠깐 앉았다. 몇 몇 교사들이 강의 좋았다며 함께 앉았다. 그 대화속에는 "오늘 들은 이런 내용들은 어디가서 좀 자료를 볼 수 없나요...?" 뭔가 대답을 하려는데 어느 교사의 뒷자리 책장에 new3R자료집이 두권 나란히 꽂혀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어딘가 찾아보시면 자료야 없겠어요. 제가 책을 몇 권 추천해 드릴게요...한번 사서 보세요"
난 그 교사의 뒤에 있는 자료집을 가리키지도, 그 필자중 한명이 나였다는 것을 말하지도 않았다. 그냥 교양서적들을 몇 권 소개해 줬다. 이건 단지 나의 불친절이 아니라...이런 방식의 배포에 이젠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한두번 일어난게 아니다.
우리 사회는 떠먹여주는데 익숙한가? 아닐것 같다. 그런데 왜 무료 무작위배포가 주장되는지 모르겠다. 무료일때 일단 가지고 있으면서 안정감 같은 것을 주는 모양인데 결국 그렇게 사장되는 건 누가 책임지지 않는다. 더구나 그렇게 소비되지도 않는 각종 자료집과 책자, 동영상자료들로 수십억원이 낭비된다고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 중 하나가 나였다는 걸 생각하니 참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4.
다음세대재단과는 참 오랜 관계를 맺고 일을 같이 하고 있다. 재단의 사업중에 유스보이스센터가 있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의 사업이니 거의 만 4년간 진행했다. 올해 발표회를 열었다. 사실 발표라기 보다는 컨퍼런스에 가까운 일이었다. 제목은 "미디어교육3.0 beta - 유스보이스센터 미디어교육 3년의 경험"이었다. 3년간의 교육경험을 모아 책을 냈다. 이 안에는 교육내용과 더불어 수퍼비전의 기록이 생생하게 담겼다. 기업의 펀드라지만 공익을 위해 내놓은 기금이며 그 기금으로 사업을 했다. 그리고 사업의 결과를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면서 우리가 생산한 내용과 자료집을 돈주고 팔긴 싫었다. 우리는 회의에서 이런 결론을 냈다. 분명 이것을 수천권 찍어서 전국의 청소년관련 단체와 미디어교육센터들에 배포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안했다. 워크숍에 초대된 수 만큼만 찍었다. 현장에 초대된 사람들에게 정말 소중한 이야기를 전하고 그 정리된 내용과 CD안에 우리의 내용을 동영상으로 담아 배포하자는 결론이었다. 정말 딱 80명을 초대했고 자료집은 정확히 100권을 인쇄했다. 넘버링을 해서 나눠주었다. 한정판이고 1인당 1권씩 가졌다. 이후에 이 자료집을 어딘가에서 보고 필요하다는 사람들에게는 PDF로 전해주었다. 함부로 나눠주고 누군가의 책장에 수백가지 장식물중에 하나로 치부되는 자료집이라면 우리가 이렇게 애써서 작업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참 만족스러웠다. 인쇄비가 아깝지 않았다.
5.
오늘도 내 책장에는 내가 원하지 않는데 쌓여가는 각종 공공기금으로 제작된 자료집이 쌓여간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파트의 종이모으는 일요일에 내다 버릴 예정이다. 아깝고 또 아깝다. 이런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하진 않겠다고 다시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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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0년 11월 30일에 쓴 글이다. 임시저장해 놓고 게시하지 않았던 글.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게시함.
2011년 9월 12일 월요일
달 둘
얼마전 뉴스를 보고 깜놀.
44억년전인가...? 암튼 지구가 탄생하고 얼마 후까지는 달이 두개였다고 말한다.
믿거나 말거나지만...천체과학자들이 나름 열심히 연구한 걸로 봐서는 그저 시덥잖은 루머 같은 것은 아닐 것 같았다.
지구에서 하늘을 볼 때 달이 하나 밖에 없어서...생기는 외로움 같은 건 없었겠구나.
두개의 달이 번갈아 보이면서...어느날은 겹쳐지고...달의 인력에 의해 변하는 물길이나 생명의 번식도 엄청나게 변화했을 법하다.
그럼 추석이 두번이어야 하나...? 뭐 그런 생각이 먼저 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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