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하루를 정리하고 집에 오니 11시다.
저녁을 못먹었기에...무척 배가 고팠다.
밥을 앉히고...청국장을 데우고...상추를 뜯어다 씻어놓은 후 샤워를 했다.
밥을 먹고나니 12시 30분이 넘었다.
강의에 워크숍이 있었던 터라...피곤이 뒷골을 땡기며 찾아왔다.
하지만 오늘은 월식을 볼 수 있는 밤이다.
일식에는 매력을 못느끼지만...
달에게 묘하게 끌리는터라...월식은 꼭 지켜본다.
피곤한데 밥을 먹었으니...정말 졸리기 시작했다.
요샌 피드는 리더로 읽고, 페이스북도 웹브라우저보다 앱을 주로 사용하다 보니 굳이 검색할 일이 없으면 안 열어본다.
그러다 웹을 열었다.
흑...절대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구글은 이런 이미지를 보내주고 있다.
구글 사랑한다.
왠지 너와 함께 월식을 지켜본다고 생각하니 훨씬 기운이 나네...
ps :
새벽4시22분...이젠 거의 달이 남지 않았다.
구글의 실시간 중계와 거의 똑같았다.
2011년 6월 15일 수요일
2011년 6월 11일 토요일
위선의 태양 / Burnt By The Sun
대학시절 흔히 러R이라고 부르던 책이 있었다. 러시아혁명사를 지칭하던 말이다. 대학물 먹으면서 베스트셀러이자 대화를 위한 필독서인 러R을 읽지 않은 친구들은 핀잔의 대상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러R을 읽던 그 시절이 떠올라서 그런가...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미묘하게 뭉클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야 말로(1905년과 1917년 두차례의 혁명을 놓고 꽤나 많은 논쟁도 있었다) 비판적 논지를 뒤로하고 필독했어야 하는 패러다임이었다. 영화 위선의 태양은 볼셰비키혁명이후 트로츠키즘의 종언과 함께 1936년 스탈린이 본격적으로 러시아를 쥐고 흔들며 시작된 대대적인 정치적 탄압과 독재권력의 남용-흔히 숙청이라고 부르긴 하지만, 실제로 스탈린의 숙청은 어떤 인관관계로 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어서 어떻게 명명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이 시작되는 시기의 한 시골마을이 배경이다. 코도프Kotob대령과 그의 아내 마루시아, 그리고 귀여운 딸 나디아는 이 피바람이 불어올 미래를 꿈에도 생각 못한채 평화롭게 살아간다. 혁명이후 노동자의 전위당에 충성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뒤로하고 노래와 음식과 시를 즐긴다. 이들은 스탈린시대가 종결된 1956년까지 비극의 가족사(사실 어떤 의미에서 러시아혁명사다)를 맞닥드린다.
영화는 차분하되 꽉 조여진 긴장을 만들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듯 하면서 약간 쓸데없는 농담의 코드까지 사용하는 수작이다.
94년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내가 모른다는 게 좀 이상했는데...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내가 이 영화를 스스로 불편해서 거부했을 법한 시기다. 도미노처럼 사회주의가 무너진 허탈함과 구 소련의 실패한 혁명을 국가자본주의라는 말로 끝끝내 옹호하려던 선배들과 논쟁하며 살았던 시기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무렵이기 때문이다.
영화속에 94년에 봤다면 의미있게 다가왔을 깨진 유리를 밟거나, 정체불명의 빛나는 구체가 떠다니거나, 스탈린 비행선을 향해 가는 자동차의 모습들은 클리쉐였고 2011년 영화를 보게되니 진부하게 느껴졌다. 암시와 상징은 여전히 트랜드속에서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착각 마저 했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상징은 딸을 사이에 두고 추는 탭댄스!
유튜브를 찾아보니 140분전체가 업로드 되어 있고, 자막(한국어는 없지만)도 지원하고 있더라.
2011년 6월 10일 금요일
한심한 기억들을 지우고 살 수 없다. 어쩌냐.
영화엔 기억을 지우는 장면이 꽤 많이 나온다. 완벽한 범죄를 무죄로 봉합하기 위해선 타인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것을 지우는 방법만큼 효과적인 것이 또 있을까. 주로 SF에 등장하는 장면이긴 하지만 누군가에 기억속에 내가 들어있다는 걸 없애는 것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때로는 내 기억을 없애 버리고 싶은 때도 있다는 거. 스스로 과거를 잘 부정하는 편이기 때문에, 시간이 쌓여진 현재를 중요하게 바라보기 때문에...이 두가지 "때문에"를 이유로 전에 일어났던 사건과 그 상황은 그냥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1.2.3으로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 있다. 주문처럼 3...2...1 하고 외치면 푸~쉬...하면서 공중으로 흩어졌음 좋겠다.
1.
가장 즐겁던 기억이 겹쳐있긴 하지만 억울한데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중/고등학생의 기억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끔찍한 일들의 연속이었기에 그 당시의 즐겁고 행복한 기억을 함께 날린다해도 별로 후회스럽지 않을 것 같다. 학교와 친구들은 좋았다. 그냥 학교가는 게 싫지 않았고, 간혹 만나게 되는 좋은 친구들은 나를 기쁘게 했다. 하지만 교사는 달랐다. 정말 단 한명도 교사다운 교사를 본적이 없다. 대놓고 부모들에게 돈을 달라는 장면, 친구들을 가격(!)하는 장면, 자폐아였던 가까운 아이를 대하는 선생들의 태도 같은 것 말이다. 꽤 깊은 상처인것 같다.
2.
선배들이 뒷통수쳤던 기억들이다. 참 운이 없게도 좋은 선배는 없었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는 건 다행이지만, 80년대 학번들의 선배들에게는 늘 실망하며 살았다. 남녀 상관없이 선배들과의 관계는 항상 어긋났다. 두세살 차이나는 사람들이 어른노릇을 하는 꼴을 못봐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함께 일을 하면 늘 배신당했고, 뒷말이 무성했다. 지금도 일하는 파트너의 기준이 80년대 학번들이 끼어 있으면 일단 위축되고 두 세번 곱씹어 생각한다.
3.
사람은 사랑하며 산다. 대신 연애감정이 끝날 때의 그 느낌은 정말 지우고 싶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기억을 지우거나 되살리고 싶은 감정은 연애 또는 범죄다. 감추고 싶은게 있기 때문에 지우고 싶기도 하겠다. 지금 연애 못하고 사는 건 연애감정자체가 두려워서다. 솔로가 가장 마음이 편하고 좋더라. 어떤 친구가 말했다. 연애하면서 느끼는 충만함을 아직 못느껴서 그렇다고...그래 그게 꼭 "아직"이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었다. 이리 저리 밀고 땡기는 게 20대에는 재밌다고 느꼈다. 그런데 어느순간 사랑이 식어가는 그 느글거리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세가지 이 기억만 지울 수 있다면...나 참 건강하게 살것 같다. 생각해 보니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들이라는 것도 지금 알았다. 큰일은 내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나보다. 그리고 비극을 받아들이는 것은 잘 훈련된 편이기도 한 것 같다.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읽고 나서 정치적 꼼수가 언어적 함정으로 시작된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고 알면서 당한다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작정하고 프레임을 만들기 시작하면, 그 프레임안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글을 쓰는 순간 이미 또 한번 나의 뇌세포에 각인되겠지. 잊고 싶다고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또 한번의 기억으로 추가된다는 거...알면서도 하고 있다. 한심하다.
![]() |
| 어느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런 그림이 탁자에 꽂혀 있다. 사실 이 글은 이 코끼리를 보고 쓴 글이다. |
가장 즐겁던 기억이 겹쳐있긴 하지만 억울한데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중/고등학생의 기억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끔찍한 일들의 연속이었기에 그 당시의 즐겁고 행복한 기억을 함께 날린다해도 별로 후회스럽지 않을 것 같다. 학교와 친구들은 좋았다. 그냥 학교가는 게 싫지 않았고, 간혹 만나게 되는 좋은 친구들은 나를 기쁘게 했다. 하지만 교사는 달랐다. 정말 단 한명도 교사다운 교사를 본적이 없다. 대놓고 부모들에게 돈을 달라는 장면, 친구들을 가격(!)하는 장면, 자폐아였던 가까운 아이를 대하는 선생들의 태도 같은 것 말이다. 꽤 깊은 상처인것 같다.
2.
선배들이 뒷통수쳤던 기억들이다. 참 운이 없게도 좋은 선배는 없었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는 건 다행이지만, 80년대 학번들의 선배들에게는 늘 실망하며 살았다. 남녀 상관없이 선배들과의 관계는 항상 어긋났다. 두세살 차이나는 사람들이 어른노릇을 하는 꼴을 못봐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함께 일을 하면 늘 배신당했고, 뒷말이 무성했다. 지금도 일하는 파트너의 기준이 80년대 학번들이 끼어 있으면 일단 위축되고 두 세번 곱씹어 생각한다.
3.
사람은 사랑하며 산다. 대신 연애감정이 끝날 때의 그 느낌은 정말 지우고 싶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기억을 지우거나 되살리고 싶은 감정은 연애 또는 범죄다. 감추고 싶은게 있기 때문에 지우고 싶기도 하겠다. 지금 연애 못하고 사는 건 연애감정자체가 두려워서다. 솔로가 가장 마음이 편하고 좋더라. 어떤 친구가 말했다. 연애하면서 느끼는 충만함을 아직 못느껴서 그렇다고...그래 그게 꼭 "아직"이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었다. 이리 저리 밀고 땡기는 게 20대에는 재밌다고 느꼈다. 그런데 어느순간 사랑이 식어가는 그 느글거리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세가지 이 기억만 지울 수 있다면...나 참 건강하게 살것 같다. 생각해 보니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들이라는 것도 지금 알았다. 큰일은 내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나보다. 그리고 비극을 받아들이는 것은 잘 훈련된 편이기도 한 것 같다.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읽고 나서 정치적 꼼수가 언어적 함정으로 시작된다는 것에 놀랍기도 했고 알면서 당한다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작정하고 프레임을 만들기 시작하면, 그 프레임안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글을 쓰는 순간 이미 또 한번 나의 뇌세포에 각인되겠지. 잊고 싶다고 이 말을 꺼내는 순간 또 한번의 기억으로 추가된다는 거...알면서도 하고 있다. 한심하다.
2011년 5월 31일 화요일
이웃의 이사
대림동에 2004년 이사왔으니 올해로 8년째 이 집에 살고 있다. 옆집엔 부부와 세자녀가 살고 있었다. 아저씨는 밝은 성격에 얼굴에 웃는 주름이 크게 보일 만큼 멋진 사람이고, 아주머니는 낯을 조금 가리시고 쑥스러움이 많은 분이지만 막상 마주할 땐 늘 예의바르게 인사해주시는 분이다. 아들둘에 딸아이 한명이다. 이사왔을 당시 막내가 태어났다. 세째아이로 딸이었다. 태어난지 한달이 되었다고 했으니 아마 요맘때가 생일일게다. 그 아이는 지금 8살이고 초등학교 1학년이다. 이집에 살면서 가장 즐겁고 신나는 기억은 옆집 아이들이었다. 아침이면 세명이서 밝게 웃으며 복도를 뛰어다니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이들 웃는 소리로 아침이 시작된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이었나 싶다. 어느날은 꼬마가 오빠들 학교가는데 따라나가며 우는 소리. 어느날은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와서 기승전결 없는 이상한 논리를 심각하게 펼치기도 하고(듣고 있자면 나는 너무 웃겼는데...아이들은 정말 심각하게 토론하는...), 또 어느날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소꿉놀이를 하느라 돗자릴 펴고 누워있었다. 친구들과 누워 자는 시늉을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마나 서로 깔깔대고 웃었는지 모른다. 길에서 마주칠때면 내가 바쁜 걸음으로 주차장을 가로질러가는 꽁무니에 자전거를 타고 따라와 인사를 했다. 동네 아이들이 "아는 아저씨야?"라고 하자 "아저씨 아냐...오빠야!"라는 말이 들렸고, 나는 뒤를 보며 윙크하고 사라지곤 했다. 큰 아이가 피아노레슨을 시작하고 도미솔을 벗어나지 않던 소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화음이 되고 어느날 아침엔 아이의 연주에 감동받으며 일어나기도 했다. 조금씩 악보를 보고 제대로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그 아침을 잊을 수 없다. 어느 저녁 집에 돌아왔을 때 Michael Jackson의 billie jean이 들렸다. 문을 열고 나가서 그 곡을 들었다. 다음날 아이를 만나서 잭슨을 어떻게 알아? 피아노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곡이야?라고 물었을 때 "아뇨...제가 좋아서 듣고 그냥 쳐본거에요..."라고 큰 아이가 대답했다. 그날 저녁은 나 들으라는 듯 Smooth Criminal을 연주했다. (큰아이의 피아노연주녹음) 또 그 다음날은 엄마와 같이 문을 빼꼼 열고는 마이클 잭슨이 좋다며 활짝 웃었다. 아파트가 삭막하다고...? 이런 이웃이 있으면 삭막할 틈이 없더라. 14층사는 아이와 막내는 단짝이었는데 계단에서 동화책 읽는 소리가 너무 예뻤다.
지나다니면서 이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계단에서 시멘트의 냉기가 벌써부터 느껴진다. .
며칠 전 부터 차곡 차곡 정리된 박스를 복도에 내다 놓았다. 일요일에 버리려고 정리하나 보다 싶었는데, 그 옆에 점점 쌓여갔다. 이상하다 싶어서 물었더니 6월 1일에 이사가기로 했다고 전한다. 방은 두칸인데 아이들은 셋이고 이제 모두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좁을만도 하다.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갈거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둘째 아이였다. 둘째는 잘 생긴데다가 성격이 쿨하다. 막내동생이 오빠오빠 부르면서 길에서도 꼭 손을 잡고 다니는데, 약간 어색해 하면서도 동생손은 놓지 않는다.
정작 옆집은 전혀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을 이런 이웃과의 행복의 순간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날 이후로 조금씩 물건들이 버려지고, 다시 나왔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하더니 어느날은 소파가 복도에 나와 있었다. 둘째가 앉아 있다.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내놓은 거실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책을 읽는다. 말을 걸었다. "와...원래 여기에 의자가 있었으면 참 좋았었겠다. 완전 낭만 적인데...얼..."이라고 말했다. 둘째의 대답은 "그렇죠 뭐..."였다. 집에 들어가서 과자를 한 상자를 가져다 먹으라고 건네주었다. 조심스럽게 받더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정말 이 공간에 저런 푹신한 couch가 있었다면...꽤 재밌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겠다고 생각하며 또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지금...
이삿짐을 나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부터 분주했고 좀 전에 1층에 차가 들어와서는 물건을 실어내리는 것 같다. 아이들은 없다. 학교에 갔다.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막내 아이는 태어나 처음하는 이사를 맞이하게 될테지. 집안에 신발신고 들어가고, 신문지깔고 중국음식을 먹는 첫번째 경험 말이다. 둘째는 짐이 다 옮겨진 후에 새로 생긴 자기 방을 보면서 시크하게 쳐다 보고는 책본다고 의자에 앉아 있을테고, 큰 아이는 오늘 학원 안가도 된다는 말에 신나 자전거 타고 동네를 한바퀴 돌거다. 아이들에게 삶의 환경이 바뀌는 이 경험이 앞으로 일어나게 될 또 다른 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만들거라 생각하는데...내가 왜 이렇게 뿌듯한지...
지나다니면서 이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을 생각하니 계단에서 시멘트의 냉기가 벌써부터 느껴진다. .
며칠 전 부터 차곡 차곡 정리된 박스를 복도에 내다 놓았다. 일요일에 버리려고 정리하나 보다 싶었는데, 그 옆에 점점 쌓여갔다. 이상하다 싶어서 물었더니 6월 1일에 이사가기로 했다고 전한다. 방은 두칸인데 아이들은 셋이고 이제 모두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좁을만도 하다.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갈거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둘째 아이였다. 둘째는 잘 생긴데다가 성격이 쿨하다. 막내동생이 오빠오빠 부르면서 길에서도 꼭 손을 잡고 다니는데, 약간 어색해 하면서도 동생손은 놓지 않는다.
정작 옆집은 전혀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을 이런 이웃과의 행복의 순간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날 이후로 조금씩 물건들이 버려지고, 다시 나왔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하더니 어느날은 소파가 복도에 나와 있었다. 둘째가 앉아 있다.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내놓은 거실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책을 읽는다. 말을 걸었다. "와...원래 여기에 의자가 있었으면 참 좋았었겠다. 완전 낭만 적인데...얼..."이라고 말했다. 둘째의 대답은 "그렇죠 뭐..."였다. 집에 들어가서 과자를 한 상자를 가져다 먹으라고 건네주었다. 조심스럽게 받더니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정말 이 공간에 저런 푹신한 couch가 있었다면...꽤 재밌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겠다고 생각하며 또 아쉬움이 밀려들었다.
지금...
이삿짐을 나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부터 분주했고 좀 전에 1층에 차가 들어와서는 물건을 실어내리는 것 같다. 아이들은 없다. 학교에 갔다.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막내 아이는 태어나 처음하는 이사를 맞이하게 될테지. 집안에 신발신고 들어가고, 신문지깔고 중국음식을 먹는 첫번째 경험 말이다. 둘째는 짐이 다 옮겨진 후에 새로 생긴 자기 방을 보면서 시크하게 쳐다 보고는 책본다고 의자에 앉아 있을테고, 큰 아이는 오늘 학원 안가도 된다는 말에 신나 자전거 타고 동네를 한바퀴 돌거다. 아이들에게 삶의 환경이 바뀌는 이 경험이 앞으로 일어나게 될 또 다른 상황에 대한 적응력을 만들거라 생각하는데...내가 왜 이렇게 뿌듯한지...
2011년 5월 27일 금요일
새로운 매체에 대한 호기심...또는 욕심
매체 교육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이런 저런 매체에 관심을 가지곤 한다. 단 고급 퀄리티를 내야한다는 강박으로 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대중적인것...누구나 손에 쥘 수 있는 것...오퍼레이팅의 전문성을 요하지 않는것...
아마 내 방식의 미디어교육이 그런 것이어서 이런 저런 제품화된 것을 사용하고 사용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해 보이긴 한다. 일단, 내가 혹 해야 하고...사용경험에 근거하여 또 다른 표현도구가 되는가를 검증하는 것이 나의 목표라면 목표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다 보니...매체가 쌓이곤 하는데...그때 적절한 트레이드가 좀 필요할 때가 있지만...쉽게 이뤄지진 않는다.
아무튼 이번 트레이드에서 건진 킨들과 폴더 키보드.
적응하는데 단 10여분이면 된다는 건...범용성은 검증된 것 같다.
이런 저런 매체에 관심을 가지곤 한다. 단 고급 퀄리티를 내야한다는 강박으로 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대중적인것...누구나 손에 쥘 수 있는 것...오퍼레이팅의 전문성을 요하지 않는것...
아마 내 방식의 미디어교육이 그런 것이어서 이런 저런 제품화된 것을 사용하고 사용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해 보이긴 한다. 일단, 내가 혹 해야 하고...사용경험에 근거하여 또 다른 표현도구가 되는가를 검증하는 것이 나의 목표라면 목표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다 보니...매체가 쌓이곤 하는데...그때 적절한 트레이드가 좀 필요할 때가 있지만...쉽게 이뤄지진 않는다.
아무튼 이번 트레이드에서 건진 킨들과 폴더 키보드.
적응하는데 단 10여분이면 된다는 건...범용성은 검증된 것 같다.
2011년 5월 14일 토요일
디자인에 대한 몇 가지 메모
자료가 필요해서 구글링하다가..
내가 예전에 쓴 글이 검색되었는데...내가 쓴건지 모르고 그책 읽으면서 나도 저런 문장들을 좋아했었는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보니...내 옛날 블로그였다능...헐...
암튼 필요해서 다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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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켄야에게 한 수 배우기
- 물건을 만들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생생하게 인식하는 것이며...
->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어떤 논의에도 사실 그대로의 인식태도를 지향하는 것을 빠뜨리면 위험하다. 디자인이 지향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세계관이 아니라 날것으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과 그 과정에서 탄생한 부산물인 합리성, 공정성, 보편성의 가치를 찾아가려는 노력이다.
- 개인의 재능과 장인적 품질을 통합한 우수한 제품은 시장에서 우위성 즉 '정평'을 얻게 되고 그것은 특별한 '가치'로서 보존된다. 이것은 '브랜드'라는 위력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가 높아진다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 정평을 얻는 다는 것은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 과정까지는 무수한 반복적 디자인이 존재한다. 품질우위는 반복과정의 맨 끄트머리에 존재하는 것일 뿐 그 반복이 끝난 것이 아니다.
-MIT의 존 마에다의 평가에 따르면, 컴퓨터는 '도구'가 아니라 '소재'이다. 이 표현은 주어진 소프트웨어를 통째로 삼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로 구축된 이 새로운 소재를 통해서 어떠한 지식의 세계를 개척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 사진의 소재는 피사체와 카메라, 환경이다. 즉 도구의 최종 쓰임새에 대한 탐색이 끝날 때 '사진작업'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디지털사진에서도 컴퓨터가 효율적 도구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사용자와 어떤 교감이 일어나고 있는가(컴퓨터에 대한 이해정도를 포함하고 있다) 하는 것과 함께 컴퓨터자체가 이미 소재적 발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cf) 픽사의 존라세터도 펜슬애니메이션을 펜슬이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 없듯이, 컴퓨터애니메이션을 컴퓨터가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남.
- 합리적인 '물건만들기'를 통해서 인간정신의 보편적인 균형과 조화를 탐색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넓은 의미에서 디자인적인 사고방식이다. 바구어 말하면 인간이 살아가는 것. 생활하는 것의 의미를 물건 만들기의 과정을 통해서 해석하고자 하는 의욕이 바로 디자인이다.
-> 정교한 디자인은 인간 삶의 의미에 대한 반추를 가능하게 해 준다.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용해된 디자이너의 섬세한 배려가 느껴지는 순간은 생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즉, 사용자와 디자이너는 '사용행위'의 순간 아주 밀접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인데 이런 디자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 삶에 대한 이해를 기초에 둔다. 또한 직관화된 디자이너의 '삶의 태도나 방식'에 대한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된다.
- '서다'라는 행위는 주체가 되는 인간의 의식적인 행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력'과 '어느 정도 딱딱한 지면'이 없으면 '사다'라는 행위는 실현되지 않는다. 무중력이면 몸이 붕 떠버릴 것이고 물이 깊은 수영장에서도 '서다'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경우 중력과 딱딱한 지면이 '서다'라는 행위를 '이끌어낸다'고 할 수 있다.
-> 세계는 모두 다른 체계로 되어 있다. (인위적인 것은 명문화된 법률이나 각종 문서속의 조항이지만 규범과 질서는 그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규범이 강요되면서 그 체계는 부서지고 말더라만...). 또한 그 서로 다른 체계가 만나서 충돌하거나 무한대의 조합을 기초로 한다. 체계를 이해하는자의 합리적 발상은 굿디자인에 다가서지만, 새로운 자의적 체계를 구축하는 것에 목적을 둔자의 강박적 발상은 폭력을 조장하기도 한다.
- 일상은 미의식을 키우는 온상이다
-> 인간은 미를 탐한다. 여전히 학습하고 있고, 학습은 전승되거나 의도적으로 거부되기도 한다. 무엇을 보고 들었기에 미를 추구하는가는 여전히 즐거운 논쟁거리다. 미의식은 자연에서 배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메트로폴리탄에게 자연으로 부터 학습하고 실천을 계획하라는 메시지는 매우 힘겹게만 들린다. 그래서 미의식이 사라진다는 것은 '의식'에 대한 오해다. 즉, 미의식은 오늘 아침 부터 잠들때까지의 일상생활에서 부터 발견한다. 의식하고 있는자는 쉽게 발견하지만 인식의 범위를 확장하고픈 욕망이 적거나 지적호기심으로 부터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서는 발견이 적고 주입되는 것이 많아지는 것.
- 이런 시대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지구와 자연환경을 주제로 삼는것만큼 기만에 넘친 행동은 없으리라....(중략) 미래나 지구 환경을 염려하는 이벤트에서 볼펜이나 커피 잔에 마크를 새겨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다니...,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 에콜로지...그린...뭐 이런 수식어들이 이젠 어느정도 식상해 질 법도 한데...빨리 이런 유행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많은 악용되는 것이 말없는 지구환경이다. 마크새길 시간에 오늘 사용한 종이의 양과 우리집 분리수거의 모습에 더 많은 행동에너지를 쏟아넣는 것이 도덕적이다.
- 냉정하게 주변을 바라보라. 스트레스 없는 쾌적한 커뮤니케이션을 갈구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디자인은 바로 그곳에서 제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관찰은 여전히 디자인개념에서도 핵심에 해당한다.
내가 예전에 쓴 글이 검색되었는데...내가 쓴건지 모르고 그책 읽으면서 나도 저런 문장들을 좋아했었는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보니...내 옛날 블로그였다능...헐...
암튼 필요해서 다시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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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켄야에게 한 수 배우기
- 물건을 만들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생생하게 인식하는 것이며...
->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어떤 논의에도 사실 그대로의 인식태도를 지향하는 것을 빠뜨리면 위험하다. 디자인이 지향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세계관이 아니라 날것으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과 그 과정에서 탄생한 부산물인 합리성, 공정성, 보편성의 가치를 찾아가려는 노력이다.
- 개인의 재능과 장인적 품질을 통합한 우수한 제품은 시장에서 우위성 즉 '정평'을 얻게 되고 그것은 특별한 '가치'로서 보존된다. 이것은 '브랜드'라는 위력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가 높아진다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 정평을 얻는 다는 것은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 과정까지는 무수한 반복적 디자인이 존재한다. 품질우위는 반복과정의 맨 끄트머리에 존재하는 것일 뿐 그 반복이 끝난 것이 아니다.
-MIT의 존 마에다의 평가에 따르면, 컴퓨터는 '도구'가 아니라 '소재'이다. 이 표현은 주어진 소프트웨어를 통째로 삼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로 구축된 이 새로운 소재를 통해서 어떠한 지식의 세계를 개척할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 사진의 소재는 피사체와 카메라, 환경이다. 즉 도구의 최종 쓰임새에 대한 탐색이 끝날 때 '사진작업'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디지털사진에서도 컴퓨터가 효율적 도구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사용자와 어떤 교감이 일어나고 있는가(컴퓨터에 대한 이해정도를 포함하고 있다) 하는 것과 함께 컴퓨터자체가 이미 소재적 발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cf) 픽사의 존라세터도 펜슬애니메이션을 펜슬이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 없듯이, 컴퓨터애니메이션을 컴퓨터가 만들었다고 말할 수 없다...라는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남.
- 합리적인 '물건만들기'를 통해서 인간정신의 보편적인 균형과 조화를 탐색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넓은 의미에서 디자인적인 사고방식이다. 바구어 말하면 인간이 살아가는 것. 생활하는 것의 의미를 물건 만들기의 과정을 통해서 해석하고자 하는 의욕이 바로 디자인이다.
-> 정교한 디자인은 인간 삶의 의미에 대한 반추를 가능하게 해 준다.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용해된 디자이너의 섬세한 배려가 느껴지는 순간은 생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즉, 사용자와 디자이너는 '사용행위'의 순간 아주 밀접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인데 이런 디자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여전히 인간 삶에 대한 이해를 기초에 둔다. 또한 직관화된 디자이너의 '삶의 태도나 방식'에 대한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된다.
- '서다'라는 행위는 주체가 되는 인간의 의식적인 행동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력'과 '어느 정도 딱딱한 지면'이 없으면 '사다'라는 행위는 실현되지 않는다. 무중력이면 몸이 붕 떠버릴 것이고 물이 깊은 수영장에서도 '서다'는 성립하지 않는다. 이 경우 중력과 딱딱한 지면이 '서다'라는 행위를 '이끌어낸다'고 할 수 있다.
-> 세계는 모두 다른 체계로 되어 있다. (인위적인 것은 명문화된 법률이나 각종 문서속의 조항이지만 규범과 질서는 그보다 훨씬 자연스럽다. 규범이 강요되면서 그 체계는 부서지고 말더라만...). 또한 그 서로 다른 체계가 만나서 충돌하거나 무한대의 조합을 기초로 한다. 체계를 이해하는자의 합리적 발상은 굿디자인에 다가서지만, 새로운 자의적 체계를 구축하는 것에 목적을 둔자의 강박적 발상은 폭력을 조장하기도 한다.
- 일상은 미의식을 키우는 온상이다
-> 인간은 미를 탐한다. 여전히 학습하고 있고, 학습은 전승되거나 의도적으로 거부되기도 한다. 무엇을 보고 들었기에 미를 추구하는가는 여전히 즐거운 논쟁거리다. 미의식은 자연에서 배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메트로폴리탄에게 자연으로 부터 학습하고 실천을 계획하라는 메시지는 매우 힘겹게만 들린다. 그래서 미의식이 사라진다는 것은 '의식'에 대한 오해다. 즉, 미의식은 오늘 아침 부터 잠들때까지의 일상생활에서 부터 발견한다. 의식하고 있는자는 쉽게 발견하지만 인식의 범위를 확장하고픈 욕망이 적거나 지적호기심으로 부터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서는 발견이 적고 주입되는 것이 많아지는 것.
- 이런 시대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지구와 자연환경을 주제로 삼는것만큼 기만에 넘친 행동은 없으리라....(중략) 미래나 지구 환경을 염려하는 이벤트에서 볼펜이나 커피 잔에 마크를 새겨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다니...,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 에콜로지...그린...뭐 이런 수식어들이 이젠 어느정도 식상해 질 법도 한데...빨리 이런 유행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정치적으로 가장 많은 악용되는 것이 말없는 지구환경이다. 마크새길 시간에 오늘 사용한 종이의 양과 우리집 분리수거의 모습에 더 많은 행동에너지를 쏟아넣는 것이 도덕적이다.
- 냉정하게 주변을 바라보라. 스트레스 없는 쾌적한 커뮤니케이션을 갈구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디자인은 바로 그곳에서 제 역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관찰은 여전히 디자인개념에서도 핵심에 해당한다.
2011년 5월 6일 금요일
감성에 물주기 - 북하우스
간밤에 꾼 꿈 이야기와 꿈 보다 생생한 그림.
함께 사는 고양이의 하루 모습 드로잉.
그저 매일 나도 보고 있을 것 같은 동네 사진.
과일을 썰어 말리고, 분갈이 하는 엄마와 나눈 대화....
이렇게 "참 별것 아닌"것이 100가지가 담겨있다.
좀 놀랍다.
쌓일때는 둔하지만, 쌓였을 때는 놀라움을 주고,
놀라움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 건 삶과 일상이 주는 선물이 맞구나.
함께 사는 고양이의 하루 모습 드로잉.
그저 매일 나도 보고 있을 것 같은 동네 사진.
과일을 썰어 말리고, 분갈이 하는 엄마와 나눈 대화....
이렇게 "참 별것 아닌"것이 100가지가 담겨있다.
좀 놀랍다.
쌓일때는 둔하지만, 쌓였을 때는 놀라움을 주고,
놀라움을 스스로 발견하게 된 건 삶과 일상이 주는 선물이 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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