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6일 화요일

수퍼비전

 2048이라는 게임이 있다. 게임을 시작할땐 만만하게 보인다. 가로든 세로든 같은 수를 더할 수 있고, 더해진 수가 2048이 되면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그렇다. 대충 어디로 보내든 512까지는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이후로 다른 512를 하나 더 만들어서 더하는건 쉽지 않다. 물론 1024를 두번 더해 2048을 만든다는 것은 더 힘들게 뻔하다. 이 게임을 하면서 루빅스 큐브 생각이 났다. 16면체의 한면을 맞추고 나면 다른 색이 흩어져 버리니 한면 한면을 맞추는 건 사실 의미가 없고 전체 메카니즘을 이해하거나 패턴을 외우는 것이 방법이다. 그런데 뭔가 다르다...그게 뭘까가 궁금해서 계속 한듯하다. 1024까지 가는데 성공하고 나면 아주 만만하게 이 게임이 보인다. 그런데 거기서 한계가 보였다. 패턴인지에 실패했다. 이때 내가 게임하는 걸 친구에게 보여주고 난 이렇게 한다고 말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더니 "높은 수를 위로 보내고 내려보내지 말고 더하라"는 한마디. 지금까지 내가 이 게임을 풀던 방식에서 잘못되었던 오류가 한마디로 수정된다. 그 동안 그게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1024를 만들려는 시도였다는 것. 마치 큐브의 한면을 맞추는 것과 같다. 그 보다 더 큰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기존의 패턴을 무시했어야 하는데 거기서 빠져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란 뜻이다.  그 한마디로 2048을 쉽게 만들었다. 참 쉬웠다. 

 인간은 자기 행동에 과잉 몰입하여 객관적 상황을 보지 못하며 사는 때가 많지 않던가. 간혹 나는 지나친 자기확신을 경계하라는 조언을 듣곤 한다. 그런 조언을 들을 때면 늘 어떤 상황을 두고 팔짱끼고 지켜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내 직업이 교육 수퍼바이저라지만 나 역시 한 쪽 방면을 들여다 보고 있을 때가 많을 수 밖엔 없다. 즉, 수퍼비전을 받곤 한다. 내 수퍼비전에 대한 수퍼비전인 셈이다. 간혹 나로 인해 어떤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건 -내가 훈련된 수퍼바이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당사자로 부터 한 걸음만 벗어나게 되면 보이는게 있다는 걸 말한다. 즉, 수퍼바이저는 역할이지 더 많은 능력과 경험을 가진 것이 아니다. 

수퍼비전의 중요성을 이 게임하나로 완전히(이게 왠 오버냐...) 이해했다. 더구나 이 게임을 하면 겸손을 배우게 되더라. 랭킹을 보면서 그랬던 것 같다. 이제는 2048은 언제든 만들 수 있고 더 갈 수도 있다. 이 패턴을 인지하고 나서는 나에겐 그냥 시간죽이기가 되었다. (이것이 겸손을 배운자의 태도냐...) 그래서 앱을 지웠다. 

2048
http://gabrielecirulli.github.io/2048/ 여기로 들어가면 게임을 할 수 있다. 
https://itunes.apple.com/us/app/2048/id840919914?mt=8 이 링크는 아이튠즈 아이폰앱주소. 

2014년 5월 4일 일요일

언론

미디어교육계에서 일하면서 언론에 대해 다루지 않을 순 없다. 그런데 난 그냥 무시하고 이렇게 단언하고 이야기를 접곤 한다. 언론은 그냥 광고회사라고 보면 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향을 받는 건 어쩌냐며 무책임한거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냥 그렇다고 말한다. 내가 아무리 영향을 받지 말라고 외쳐도 현재의 미디어환경에서 어쩔 도리가 없다. 그냥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고 믿지 말아야 할 1순위의 사기꾼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침몰에서 언론의 횡포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단지 왜곡이 문제가 아니다. 심하게 확대해석한다면 jtbc는 마케팅같다는 느낌도 사라지지 않는다. 걔네들의 본색은 금방 나올것임에 그렇다. 평생 고발뉴스나 뉴스타파등에 관심도 한번 가지지 않던 유가족들은 정말 새로운 세상을 봤을것이 분명하다. 다른 말로는 그들이 관심없을 만큼 영향력도 없었던 보도들 아니었던가. 그리고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은 주요언론의 이야기를 믿기 마련이다. 작은 노력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말하는 건 가진자들이 던지는 동정 섞인 위안이 아니더냐. 물론 주류언론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고발뉴스와 뉴스타파가 주류언론이 된다면 달라질것 같은가. 쳇. 안속는다.

회상

20년이 넘게 사회교육현장에서 일하면서 요즘처럼 회의감이 생기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개인적으론 2002년을 기점으로 제도교육에 토나올 정도의 배신감과 한계를 느낀 후 초중고생과 학교에서 만나진 않았다. 간혹 생계형 알바로 학부모나 교사를 위한 특강 같은데는 불려 다녔으나 정작 학교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믿었고, 변화를 위한 노력은 누군가의 손에서 만들어질 것이라는 불확실한 믿음 같은 것으로 학교를 밀어냈다. 하지만 사회교육의 장에서 만난 소위 신분상의 "학생"들은 늘 나를 만날 때면 제도교육에 의해 희생되어 상처 투성이인 상태로 왔다. 
1.
교사에게 두들겨 맞아서 눈에 멍이 시퍼렇게 든 여중생은 나에게 담배 한개만 달라고 말했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이어서 두대째를 피우면서 내가 뭔가 이유를 듣고 싶어한다는건 알지만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냥 그 아이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있었다. 말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입을 열었다. 말 안해도 된다고 다시 한번 내가 얘길 했지만 나에게 털어놓았다. 에피소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가장 두려워했던건 지금 자기 모습을 본 부모님이 받을 충격이라고 했다. 신고하고 보상받고...등등으로도 학교와 얽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이유야 무엇이든 14세의 중학생 소녀가 팅팅부어 있는 눈두덩을 하고 학교에서 도망쳐 나왔을 상황은 무엇으로도 설명될 수 없었다.
2.
그리 왜소하지도 않은 체구의 17세 남자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공식적인 따돌림을 당했다. 교사의 문제였다. 같은반 여자아이들이 악의적인 소문(시작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대놓고 씹었다는 것에서 시작이란다...헐...)을 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넓은 대인관계에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문제가 터졌다. 어느 여학생과 교사의 면담. 우리반에 왕따가 누구냐...라는 교사의 직접적인 질문. 그 여학생은 없다고 말했지만 캐묻는 통에 그 친구가 지목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종례시간에 아이들은 책상위에 무릎꿇게 하고 우리반에 왕따가 있다는 건 용서 할 수 없다며 벌세웠다. 그리고 왕따시켰던 아이들을 색출해낸다며 난리를 쳤단다. 졸지에 자신은 교사가 지정한 공식왕따가 되었고...그 이후 자신과 엮이면 피곤하다는 인식으로 고2가 되도록 혼자라고 말했다. 그도 학교를 그만두었다.
3.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는 청소년들도 많았다. 인문계학교가 아니라 상업고 학생들이었다. 상업계 학생들에게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왜 안좋은지를 담고 싶어했다. 제작지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는 관심이 높아졌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직접 나서서 했고, 교사가 약간의 도움을 줬다. 촬영에 협조하거나 인터뷰에 응했다. 사실상 도움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도움이다. 문제는 거기서 생겼다. 아이들이 영화를 완성했다. 감독시사를 할 때 나도 함께 있었다. 주장이나 이야기의 짜임새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할만큼 했다. 정작 상고학생들 스스로 상업계고등학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던거다. 재밌는 작품이었다. 완성작이 나오고 난 뒤 공식상영회에 제출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영화를 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학교에서 검열을 당했다. 이 장면은 학교의 이미지상 좋지 않으니 빼고, 어떤 인터뷰를 더 넣고...등등. 영화의 완성본은 학교 홍보처럼 되었다.
4.
대학생은 다를까? 이렇게 제도교육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대학에 온다.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 협업이 서툴기에 팀워크를 중심으로 과제를 내면 그 안에서 잡아먹을 듯 경쟁하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과제가 훌륭한 것을 잘 들여다 보면 한명이 한 경우가 더 많았다. 신중하게 검토해서 학점을 주어도 일단 학점 올려달라는 시도들을 했다. 저는 결석이 한번도 없고 과제도 다 냈는데 82점입니다. 그런데 00이의 경우는 결석을 두번이나 했는데도 85점이네요....이런 식이다. 그래서 자기도 85점으로 올려달라는거. 과제와 시험을 다시 들여다 보면 엄청난 차이가 보였지만, 내가 기가 막혀 하는건 그런게 아니다. 학점에 대한 근거는 이미 수업시간에 말해 주었기 때문에 더 설명할건 없지만, 과제나 시험에 대한 재 평가를 말하는것 보다 "나보다 쟤가 왜 더 성적이 좋은가요"를 궁금해 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졌다. 난 궁금해졌다. 왜들이럴까 싶어서 언젠가 진지하게 한 클래스에서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12년간 그렇게 해왔다는거다.

휴...

2014년 5월 2일 금요일

수미쌍관법

중학교 국어시간이었다. 누구의 시였는지 모르겠는데 선생님이 읊었다. 교과서를 들고 천천히 읽었다. 그 풍경을 잊을 순 없을것 같다. 아주 천천히 읽었다. 교실엔 아이들이 70여명이 앉아 있었고, 당시만해도 수업시간에 딴짓하는건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교사의 낭송을 듣기만 하고 있었다. 시를 다 읊고나서 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설명하다 그래서 이게 수미쌍관법이란거야...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교과서에 받아적기 시작했다. 맨 앞줄의 아이가 받아적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더니 깊에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 시가 말하고자 하는건 수미쌍관이 아니야. 그런데 너희들은 그것만 관심있구나"


2014년 4월 27일 일요일

시간에 대한 잡설

"시간"에 대한 객관적 정의는 없으나 조작적 정의나 약속의 개념이 있다. 시간에 대해 가장 오랜 관심을 가진 학문은 역시 천문학이지만, 아인슈타인 이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상대적 시간을 증명해내면서 (굳이 표현하자면)뒤틀렸다. 표준시간이란 그래서 천체를 중심으로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맞춰놓은 것이거나 약속의 개념이된다. 그 역사는 얼마나 되었을까가 궁금하다면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는건 분명하다. 봉건제 해체 이후 농민계급이었던 노동자에게 더 많은 생산을 요구하기 위해선, 더 효율적 관리 대상으로 시간개념이 확보되어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져야 했던 표준시각은 인간을 시스템으로 몰아갔다. 표준이 된 시간은 생활의 편리를 가져왔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생각한다면 참 무서운 결과를만들어낸다. 가장 비정상적인 생태계를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 170만년전 두발로 걷기 시작한 인류는 신화로 존재하는 아이테르를 바라보며 지구에 적응하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에너지원이 되는 태양을 중심으로 살아왔다.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자연의 시스템으로 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은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명의 핵심은 그 에너지를 어떻게 다루는가로 부터 출발했다고 본다. 문제는 소유다. 초기인류의 생존을 위한 투쟁적 관점이 아니라 소유를 위한 전쟁이 되었다 . 굳이 설명하자면 (토인비가 말한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시간을 누가 소유할 것인가의 개념이 되었단 뜻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의 시간을 소유하려고 한다. 그 시간은 생산량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이 체감하는 시간이란, 물리적 사건의 연속선의 한 지점이거나 독립적 물리량을 갖는 비연속적 객체라고 보기 보다는 재화와 교환되며 소비를 가능케하는 화폐와 유사하다. (물론 이 관점은 생산주체인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의 쓰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긴 싸움이 계속된다)  "나는 내 시간의 주인이다"라고 역설하는 자기계발서를 보면 한심한 이유기도 하다. 오히려 "나는 타인의 시간 노예다"로 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2014년 4월. 한국사회는 기능이 정지된 정부로 인해 무력감을 갖는다. 세월호의 침몰로 인해 시작된 무력감이다. 이 글은 세월이라는 시간개념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의 조각 중 하나다. 왜...라는 질문이 자꾸 생기지만 결국 기능상실의 가장 큰 원인은 모두가 타인시간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하는 거다. 매뉴얼이 없어서 문제라고 말할까봐 나는 더 무섭다. 매뉴얼은 이미 있다. 엉성한 것이 문제다. 그럼 완벽한 매뉴얼은 존재할까? 그건 사건이 잘 수습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지키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시키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간을 사는 것이 당연해진 사회에서 그 무엇도 각성할 수 없이 마비된 인격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2014년 4월 25일 금요일

뻘짓거리

1.
공무원 미친 뻘짓들은 대부분 잘해보려고 하려다 망하는 짓거리다. 장관님이 납신다고 귀뜸하여 못난 대중이 준비하고 맞이하게 만들라는 명령은 그들의 매뉴얼이다. 잘 모시려고 똥꾸멍 빨던 버릇 그대로 하다 세월호에서 죽은 한 고등학생의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에게 욕 쳐먹은거다. 

2.
어느날 회의에 갔는데 회의 중에 담당자가 사진을 찍었다. 뭐하는거냐고 묻자 오늘 먹은것도 영수증과 함께 사진으로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날 커피값은 대략 만원정도였다. 그냥 내가 낼테니 사진 찍지 말라고 말했다. 그런데 농담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녀는 결국 사진을 찍었다. 어딘가의 서류에 영수증과 더불어 내가 커피 마시며 회의하는 사진이 첨부되었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게 대한민국 정부 공무원의 발상이다. 물증 없으면 아무 일도 안했다는 생각하는 공무원의 발상은 세월호 상황실 앞에서 사진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게 즐거운 기념사진이었을거라고는 상상하지 않는다. 그냥 그게 공무원들 하는 짓들이고 그렇게 배워왔고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거라고 본다. 그들이 이 상황에서 유가족 놀리려고 한 게 아닐게다. 

3. 
뷰티풀 민트 라이프 콘서트가 취소통보를 받았다. 줄줄이 공무원들의 뻘짓들이 보도되고 비웃음을 사자 몸사리는 또 다른 공무원들이 우리는 추모하기 위해 공연을 취소해야 한다고 결정한거다. 엄청난 예산을 낭비하고, 그 동안 준비하던 사람들의 삶에 스트레스를 불어넣었다. 뷰티풀 민트 라이프가 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 과정이 정말 공무원 스럽다는 건 분명하다. 앞뒤가 없는 개뻘짓. 무조건 우리가 다치면 곤란하니 책임회피. 그들의 모토다. 어떻게 하면 일을 안할지 연구하는게 그들의 일이며, 시킨것만 하고 증거만 확보한다는 원칙은 하나도 변한게 없다. 

정치인과 공무원이 원생동물과 동급의 지능인것은 알고 있지만 품종상 인간의 껍질을 하고 있기에 일부러 그랬을리는 없다. 진짜 잘해보려고 하다 그런거다. 그게 문제란걸 그들만 모르고 세상은 다 안다. 제발 뻘짓 좀 그만하고 자기자리에서 일상을 잘 살아내자. 

2014년 4월 22일 화요일

나는 왜 교육자가 되었는가.

나는 왜 교육자가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처음에 시작할 때 난 분명히 잘난척을 하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20대에 사회의 변혁을 꿈꾸었지만 처절히...철저히...실패하고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가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막살고 싶어 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보상은 나를 향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욕망을 들여다 봤다. 
난 알아버린거다. 난 사람들 앞에서 "니네 수준은 나와 달라...그러니 나에게 배워"라고 말하고 싶었던거다. 
가장 잘난척을 잘해도 욕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직업은 교육자가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상담실에서 근무하면서도 항상 교육세팅을 만들어갔다. 

나는 왜 미디어교육자가 되었는가에 대한 두번째 질문.
그것도 대체로 단순한 욕망에서 출발했다. 
있어보였다. 
최신 미디어들은 항상 고가의 장비였고, 아무나 함부로 접근할 수 있는 건 잘난척을 팍팍 밀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첫번째 질문에 연장된 답이다. 잘난척을 배가시키기 위한 것이라고나 할까...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당시는 분명히 그랬다. 
어떤 삶의 철학도, 교육자가 되어 세상을 향한 어떤 변화를 말하고 싶은 마음도 사실은 거의 없었다. 
지금이야 깨달은 것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을 꺼내진 않지만...
내 시작은 분명히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