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2일 월요일
'Que Sera Sera' in "The Man Who Knew Too Much"
히치콕 영화중에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에 나오는 도리스 데이.
이 영화를 못봤는데 한번 봐야겠다.
히치콕을 좋아하는데 왜 기회가 없었을까 싶기도 하고,
이 노래가 등장하는 씬이 갑자기 너무 궁금해졌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가사가 쥑인다.
루모레 RVMORE
"아주 건장한 남자가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정신을 집중하고 긴장한 채 울퉁불퉁한 바닥 위에 서 있다. 그는 뭔가 대기 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의 정체는 "루모레"로 밝혀지는데 무장한 남자, 즉 "후오모 아르마토"에 관해 이야기 해준다. 이 남자는 17세기 초 체자레 리파의 도상학의 상이한 판본에서, 그러니까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저술가와 조각가들이 "웅변가, 시인, 화가, 조각가 그리고 다른 연구들"에 유익하도록 고대신화의 보고를 모아둔 저 위대한 개요들 중의 하나에서 등장한다"때론 비밀이 거짓말을 생산한다. 거짓말의 완성은 풍부한 상상력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반면 상상력은 자신이 처해진 현실에 기반한다.
따라서 "실재하고 있는 현실 속의 나"에 대한 몰이해나 왜곡은 거짓말/비밀/루머의 씨앗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소설과 영화 모두가 좋았다.
난 어려서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성냥 황을 먹는 것이었는데, 모두가 의아해 한다.
어른들이 못먹게 하자 몰래 숨어서 훔쳐먹곤 했다.
팔각성냥은 나에겐 훌륭한 간식이었다.
소설은 1월부터 12월까지 하나씩 요리를 소개해 가며 티타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판타지다.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성냥을 넣은 요리를 먹고 몸에서 불이난다.
멕시코에는 성냥황을 넣은 요리가 있다는게 사실 더 흥미로왔다.
가끔 조카들에게 어머니께서 "너희 삼촌은 어려서 성냥황을 간식으로 먹었다"라고 말하시는데 킬킬대며 웃거나 믿지 않는 눈치다.
요리와 사랑의 비극이 담긴 에로틱 판타지.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읽어보고 싶다. 묘사가 탁월해서 엄청난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원작소설은 라우라 에스키벨이란 여인이 쓰고, 영화는 그녀의 남편이 감독이다.
2013년 7월 20일 토요일
설거지
설거지 후 그릇을 뒤집어 놓는다.
그릇을 말리기 위한거다.
바로 놓으면 어떤가.
오래걸리긴 하지만 여전히 마른다.
다만 오염된 물이라면 그릇엔 어떤 이물질이 남겠지.
뒤집든 바로 놓든 그릇은 마른다.
그게 설거지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큰 차이는 없다.
그릇을 말리기 위한거다.
바로 놓으면 어떤가.
오래걸리긴 하지만 여전히 마른다.
다만 오염된 물이라면 그릇엔 어떤 이물질이 남겠지.
뒤집든 바로 놓든 그릇은 마른다.
그게 설거지다.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큰 차이는 없다.
2013년 7월 19일 금요일
밥은?
혼자 산다는 말을 하면 기혼 성인 여자들의 많은 수가 밥은 어떻게 해먹는가를 궁금해 한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사실 굉장히 기분이 상한다.
노인이거나 장애를 가진 것도 아닌 성인이 된 사람이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인가 말이다.
내가 그래 보이냐고 대뜸 화를 버럭내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남자는 밥을 해 줘야 먹는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긴한데...
그건 당신의 문제다.
밥을 해 가져다 바치니까 밥을 구해먹어야 할 이유를 못찾는 것 뿐이다.
그렇게 길들여 놓고, 밥도 못찾아먹는다고 구박하는 것도 많이 봤다.
다 쥐어 박고 싶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사실 굉장히 기분이 상한다.
노인이거나 장애를 가진 것도 아닌 성인이 된 사람이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인가 말이다.
내가 그래 보이냐고 대뜸 화를 버럭내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남자는 밥을 해 줘야 먹는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긴한데...
그건 당신의 문제다.
밥을 해 가져다 바치니까 밥을 구해먹어야 할 이유를 못찾는 것 뿐이다.
그렇게 길들여 놓고, 밥도 못찾아먹는다고 구박하는 것도 많이 봤다.
다 쥐어 박고 싶다.
대응능력
소년은 길에서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딘가로 가던 중인가 돌아오는 중인가...
아마 겁을 잔뜩 집어 먹었을게다.
하늘에서는 웅웅 소리가 났다.
결정해야 했다.
가던 방향으로 계속 걸음을 옮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돌아설 용기는 없다.
앞으로 가는 것보다 돌아가야 하는 길에 느낄 상실감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몇 시간이고 그 자리에서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도 소년을 도와줄 사람은 없다.
2013년 7월 17일 수요일
우리옆집엔 공작새가 살아_본능액션동네
우락부락은 어린이도 어린이라지만, 아티스트에게 의미있는 프로젝트임에 분명하다.
어떤 기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방향에 대한 스스로의 점검차원에서 그렇다.
누군가에게 작업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회의가 밀려오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아티스트다.
본능액션 키넥트 프로젝트는 작곡가 김범기선생님이 캠프에서 쓰려고 프로그래밍한 작업이자 작품이다.
사실 키넥트를 이용한다는 건 그리 낯설고 먼 얘긴 아니다.
누가 어떻게 쓸것이냐에 달렸을 뿐이지.
캠프 전날까지 코딩하고 가져왔다면서 노트북을 꺼내놓고 어린이들하고 신나게 즐겼다.
테크놀로지의 환상적인 경험?
글쎄다.
이 작업은 그것 이상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작화의 과정에서 자기캐릭터가 분명해 지지 않으면 움직임은 의미가 휘발성을 갖고 만다.
살아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은 비트에 맞춰 춤을 추기 때문이다.
이 미묘한 차이가 예술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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