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2일 화요일
2013년 6월 23일 일요일
새로운 나의 모습을 하나 알았다.
남을 도와주거나 위해줄 때 아무 조건없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더구나 어떤 심적/물적 감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건 좋은 관계일때의 얘기다.
관계가 틀어지게 되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손익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걸 알게 된 이상 이젠 누굴 도와주거나, 베푸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신 티나게 도와주고 충분한 감사를 받으면 된다.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게 하던 도네이션을 우선 정리해야겠다.
가족, 일, 친구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관계가 댓가로 지불되지 않아야 한다.
나 쓸데없는 오지라퍼라는 것은 알곤 있었지만, 정말 어떤 땡큐도 바라지 않는다는 착각을 하고 살았었다.
오늘 큰 깨달음이 하나 있구나...
참 기쁘다.
더구나 어떤 심적/물적 감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건 좋은 관계일때의 얘기다.
관계가 틀어지게 되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손익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걸 알게 된 이상 이젠 누굴 도와주거나, 베푸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신 티나게 도와주고 충분한 감사를 받으면 된다.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게 하던 도네이션을 우선 정리해야겠다.
가족, 일, 친구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관계가 댓가로 지불되지 않아야 한다.
나 쓸데없는 오지라퍼라는 것은 알곤 있었지만, 정말 어떤 땡큐도 바라지 않는다는 착각을 하고 살았었다.
오늘 큰 깨달음이 하나 있구나...
참 기쁘다.
2013년 6월 5일 수요일
2013년 5월 27일 월요일
김주호 선생님과 맥주 두 잔에 대한 생각
김주호선생님을 만난건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생기고 난 후였다.
원장이라는 직책/직함의 무거움과는 좀 어울리지 않을 법한 화법을 구사했던 분이다.
외부에서 직원들을 우리식구라고 했다.
어떤 분이 진흥원 직원중에 김주호원장님의 직계가족이 있다고 말해서 파안대소했던 기억도 있다.
안에서야 어땠는지 모르지만, 외부에서는 그런 분이 좋은 리더처럼 보였던 건 사실이다.
나는 개인적인 친분이야 없었지만, 공식석상에서 만나게 되는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김주호선생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다를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분을 생각하면 맥주 두 잔이 생각난다.
어느날 뜬금없이 자기는 술을 입에도 대기 힘들다고 말했다.
무슨 맛으로 먹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술을 마시면 몸이 말을 안듣고 너무 힘이 든다는 거다.
애주가가 "난 술 안마시고도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라는 말을 듣는게 싫다고 했다.
그건 마치 술안마시는 널 동정해서 내가 안마셔주마...라는 태도라는 거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대답을 하고는 물었다.
"근데 원장님은 술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긴 하세요?"
궁금하다. 취했을 때 혀가 꼬이고 헛소리하는 것도 궁금하긴 하다...고 했다.
체내에서 알콜을 분해하는 효소를 술에 첨가해서 먹으면 간에 부담없이 알콜이 분해된다고 전했더니 그거 구하면 우선 자기에게 가져다 달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알겠어요. 손에 넣으면 실험체 1순위에 넣어드리죠. 흐흐"라고 난 말했다.
난 술마시는 게 많이 궁금하시구나...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다.
또 다른 어느날 무슨 워크숍이 있어서 참가했다가 저녁식사 후 차를 한잔 마셨다.
참가자들은 마지막날 저녁이라 음주가 시작되려던 시점이다.
슬쩍 빠져나와 커피숍에 갔다. 부담없는 식사자리라서도 그렇고 굳이 원장이 있어야 하는 자리가 아니기도 했을 것 같다.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술 얘기가 다시 나왔다.
맥주 두 잔 얘기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국사회의 음주문화가 얼마나 더럽고 치사한 서열의식으로 물들어 있는지 왜 모르겠는가.
음주가 힘을 과시하고 왜곡된 동료의식을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소외되고 있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 김주호선생님은 그런데는 이미 관심없어 보였다.
단,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생맥주를 시원하게 벌컥 벌컥 마시고 그냥 멀쩡한 정신으로 집에가고 다음날 무사히 출근할 수 만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딱 두잔만 마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잔...
왜 두 잔이었을까.
난 그냥 알것 같아서 더 묻지 않았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첫잔은 건배를 제안하고 벌컥 벌컥 마시고 내려놓은 잔이다.
그리고 큰소리로 "한잔 더"라고 말하고 두번째 잔을 시키고 싶은 마음.
그 말이 두 잔이라는 말로 나왔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시원하게 맥주 두 잔을 마시는 날이 오길 기다렸다.
26일. 김주호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갑작스런 부고에 놀라기도 했지만 아무 부담 없이 맥주 두 잔을 못한것이 서운하고 미안하다.
Rest in peace...
원장이라는 직책/직함의 무거움과는 좀 어울리지 않을 법한 화법을 구사했던 분이다.
외부에서 직원들을 우리식구라고 했다.
어떤 분이 진흥원 직원중에 김주호원장님의 직계가족이 있다고 말해서 파안대소했던 기억도 있다.
안에서야 어땠는지 모르지만, 외부에서는 그런 분이 좋은 리더처럼 보였던 건 사실이다.
나는 개인적인 친분이야 없었지만, 공식석상에서 만나게 되는 정도였다.
그런 이유로 김주호선생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다를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분을 생각하면 맥주 두 잔이 생각난다.
어느날 뜬금없이 자기는 술을 입에도 대기 힘들다고 말했다.
무슨 맛으로 먹는지도 모르겠거니와, 술을 마시면 몸이 말을 안듣고 너무 힘이 든다는 거다.
애주가가 "난 술 안마시고도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라는 말을 듣는게 싫다고 했다.
그건 마치 술안마시는 널 동정해서 내가 안마셔주마...라는 태도라는 거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대답을 하고는 물었다.
"근데 원장님은 술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긴 하세요?"
궁금하다. 취했을 때 혀가 꼬이고 헛소리하는 것도 궁금하긴 하다...고 했다.
체내에서 알콜을 분해하는 효소를 술에 첨가해서 먹으면 간에 부담없이 알콜이 분해된다고 전했더니 그거 구하면 우선 자기에게 가져다 달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알겠어요. 손에 넣으면 실험체 1순위에 넣어드리죠. 흐흐"라고 난 말했다.
난 술마시는 게 많이 궁금하시구나...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다.
또 다른 어느날 무슨 워크숍이 있어서 참가했다가 저녁식사 후 차를 한잔 마셨다.
참가자들은 마지막날 저녁이라 음주가 시작되려던 시점이다.
슬쩍 빠져나와 커피숍에 갔다. 부담없는 식사자리라서도 그렇고 굳이 원장이 있어야 하는 자리가 아니기도 했을 것 같다.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술 얘기가 다시 나왔다.
맥주 두 잔 얘기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국사회의 음주문화가 얼마나 더럽고 치사한 서열의식으로 물들어 있는지 왜 모르겠는가.
음주가 힘을 과시하고 왜곡된 동료의식을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소외되고 있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 김주호선생님은 그런데는 이미 관심없어 보였다.
단,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생맥주를 시원하게 벌컥 벌컥 마시고 그냥 멀쩡한 정신으로 집에가고 다음날 무사히 출근할 수 만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딱 두잔만 마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두잔...
왜 두 잔이었을까.
난 그냥 알것 같아서 더 묻지 않았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첫잔은 건배를 제안하고 벌컥 벌컥 마시고 내려놓은 잔이다.
그리고 큰소리로 "한잔 더"라고 말하고 두번째 잔을 시키고 싶은 마음.
그 말이 두 잔이라는 말로 나왔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시원하게 맥주 두 잔을 마시는 날이 오길 기다렸다.
26일. 김주호선생님이 돌아가셨다.
갑작스런 부고에 놀라기도 했지만 아무 부담 없이 맥주 두 잔을 못한것이 서운하고 미안하다.
Rest in peace...
2013년 5월 18일 토요일
5월 18일
80년 나는 국민학교 5학년이었다.
유독 신문을 많이 보시던 할아버지와 한방을 쓰면서 자연스레 신문을 많이 읽으며 자랐다.
그때는 신문은 한자도 많고 세로쓰기를 했을 때다.
기사가 워낙 어려운 말로 작성되다 보니 어린이인 내가 읽기는 무척 어려웠다.
그저 신문이 신기했다.
난 오타를 찾아내거나, 똑같은 글씨인데 조판에 따라 변형되어 보이거나 오래써서 닳아버린 식자판을 상상하는 좋았다.
뉴스에는 나쁜 놈들이 일으킨 폭동이 연일 보도 되었고 그렇게만 믿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봤던 80년 5월의 사진은,
무장한 군인이 피투성이가 된 비무장 상태의 한 청년을 때리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이 사진은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다.
언론이 무엇인지도 이 사진을 보는 순간 알았다.
내가 겪은 일이 아니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관망하는 내가 한심하다는 것도 알았다.
생각해 보면 80년 광주가 아니라, 88년 5월은 각성하여 다시 태어난 달이구나.
2013년 4월 22일 월요일
포스코의 윤리규범
‘업무에서 잘못한 직원은 용서할 수 있지만 윤리적 문제가 있는 직원과는 함께 갈 수 없다’
포스코의 윤리규범이다.
http://www.posco.co.kr/homepage/docs/kor3/html/company/ethics/s91a3000040c.jsp
지금까지 포스코가 이러 저런 이유로 기업윤리에 대한 자랑질이 우리사회에 먹혔다.
솔직히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다들 속아 준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에서 기업하면서 윤리라는 말이 얼마나 속된 표현인가.
포스코에너지 임원이 대한항공 승무원에게 라면을 세번이나 다시 끓이라고 시키고,
잡지로 얼굴을 때렸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 입국을 포기하거나 구속수사를 받아야 했다.
당근 포스코에너지 임원인 왕머시기는 출장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윤리적인가?
포스코에서 주장하는 업무를 잘못한 직원은 용서하고 윤리적 문제를 가진 직원은 함께 갈 수 없다고 천명(?)한 것이 사실이냔 말이다.
포스코에서 공식사과하고 진화하고 나섰다. 계열사라고 해도 왠지 연대 책임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다.
http://cl.ly/image/1I3U2O3x3j2e
다시 확인해 봤더니 결국 사직서 내고 지발로 나갔댄다.
내가 못찾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직원이 강제로라도 그 승무원에게 찾아가 사과했다는 말이 없다.
물의를 일으켰다.
보직해임과 인사위원회를 열어 해고를 결정할 것이다....라는 말이 반복된다.
가장 먼저해야할 일이 지켜지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는데 그들의 조치는 그저 쌩쑈로만 보이는건 당연하지 않을까한다.
포스코(또는 에너지)에게 실망했다는 수 많은 비아냥과 욕설은 그저 네티즌의 배설에 가깝다.
그건 며칠지나 사라지고 잊혀질 것 같다.
정작 비행기에서 라면을 세번이나 끓이다 잡지로 얼굴을 맞은 스튜어디스의 수치심은 어떻게 할거냐. 그게 윤리적경영이라는 포스코가 뻘 주장을 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이상 야릇한 임원구성기사를 본게 엊그제다. 이상 야릇한 인사와 이 사건이 무관해 보이진 않는다.
관련기사링크
한겨레 :
갑작스런 포스코 인사발표 뒷말 무성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77134.html
포스코가 라면사업?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839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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