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7일 금요일

기획회의의 단상

올해 문화예술교육주간의 주제는 "삶을 재생하다" 
물리적 거점의 중심부는 문화역서울284다. 
서울역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를 지인 몇명에게 물으면 두명 중 한명은 꼭 홈리스를 연상한다. 
터미널의 역할이며, 정주적 형태의 물리적 공간도 아니며, 최소한을 머물다 떠나는 곳이 서울역이다. 
어찌 보면 서울 또는 도시 삶의 이미지와 닮아있기도 하다. 
그런데 서울역 홈리스는 떠나지 않고 정주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서울역의 문화에서 묘하게 언밸런스하게 공간을 점유한다. 

오늘 기획회의에 참여하면서 가장 불편했던건,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야 하는 행사에서 
홈리스가 오면 어쩌지...그들이 오는건 싫어...라는 말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 가는 것이었다. 
그래 냄새나고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도 그들이 가까이 있는 것이 기쁘다는게 아니다. 
하지만 공공적 성격을 가진 행사...더구나 그 주요 거점이며 환경이 서울역이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회의에서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얘기했어야 하는 홈리스가 다가오면 어떻게 맞이할까...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다면 주최측에서는 어떤 장치로 그걸 해소해야 하는가로 부터 이야기가 출발하지 못했다. 회의의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가 중요하겠지만 홈리스는 불특정 다수 조차 되지 못했다는 건 집에 오는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누구는 되고...누구는 안되는...공공성. 앞날이 캄캄하다. 이 작은 규모의 집단에서도 이런데 우리사회는 어떨까 싶기도 하고...
결국 그렇게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게토는 홈리스가 만들어낸건 분명 아닐거다. 

90년대 중반 마로니에 공원에 작은 야외공연장이 있었다. (그 후에 SK가 이상하게 디자인 한 무대로 바뀐 후 댄스팀만 줄창왔다. 댄스팀이 나쁘단게 아니라 다양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공연도 꽤 자주 있었고, 그 공간을 어떻게 쓸것인가를 많은이들이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 갔었던 기억이 난다. 매번 그 공간에는 홈리스가 함께 있었다. 몇명은 눈살을 찌프리고 냄새난다고 피하기도 했지만 공존했다. 난 거의 매주 그 곳에 갔다. 공연을 기획해서 열기도 했다. 내가 기획한 공연이 없던 날 그냥 편안히 앉아서 기타 연주 리허설을 보고 있었다. 어떤 사회자가 나와서 말했다. 거의 매일 이곳에서 보던 홈리스를 보고는
"아저씨...오늘 시작을 알리는 멘트는 아저씨가 해주세요"
아저씨를 불러내자 많은이들이 박수를 쳤다. 그 아저씨가 무대로 올라왔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라고...?라고 한번 되묻고 행사 이름을 외웠다. 그리고 마이크를 잡고 힘차게 시작을 알렸다. 
난 대학로에서 본 거리공연 중에서 그날의 시작이 가장 기쁘고 좋았다.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이 홈리스를 대상으로 발레를 가르치고, 신문을 만들기도 했다. 문화예술교육의 이름으로 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당연한 권리라는 항변을 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정작 대중속에 섞이는 건 거론되는 것 조차 두려워하는 현실.

갈길이 참 멀구나...